책리뷰

도시의 발견 : 행복과 소통은 구조에 있을까?

네그나 2016. 11. 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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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발견 : 정석


지금 당신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겁니다.행복에는 개인적 여건과 경제적 상황이 영향을 끼칩니다. 무엇보다 이 어수선한 시국, 날마다 새로 업데이트되는 뉴스를 보고 있자면 ( 까도 까도 새로운 내용이 나오네?) 머리에 스팀이 차올라 행복하지 않습니다. ( 이게 나라냐?)  정치적 안정, 공정한 법과 질서가 행복감에 중요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책의 저자는 우리가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도시 때문일 수 있음을 말합니다. 도시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공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서울, 부산 도시 규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만 내가 사는 동, 읍,마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설사들은 아파트에 살면 행복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사람들의 관심은 개인공간에 그치는데 반해 공공공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합니다.



이 책은 말합니다. 행복한 삶은 위해서는 내가 사는 마을이 도시가 좋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도시에 대한 교양서적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도시가 되어야 됩니다. 무엇이 인간 중심인가? 걷는 사람, 보행자 중심입니다. 걷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이고 살고 싶은 도시라고 말합니다.



엘리베이터를 눌러 주는 사나이


책에 나온 중국 거주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가 흥미롭습니다. 중국에는 아직도 엘레베이터에 상주하면서 층 버튼을 일일이 눌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 중국에 갔다온 사람이 많이 말하는 사실)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아재 이상이라면 백화점에서 층버튼 눌러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겁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굳이 사람을 엘리베이터에 상주시킬 필요가 있을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자도 한심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얼마 뒤, 친구와 음주를 하고 난 뒤 엘리베이터에 타고 청년과 인사를 했습니다. 그 청년은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알아서 3층으로 눌렀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단순히 층 버턴을 눌러주는 역이 아닌 경비원 역할도 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내에서 아파트 경비원을 줄이고 CCTV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경비원을 해고 하고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의도입니다. CCTV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의도를 단념시킬지 몰라도,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결심한 사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범죄 예방에서 가장 좋은 효과를 보이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과 공간은 서로가 주시하고, 감시하므로 안전합니다.



엘리베이터 청년을 보고 생각난게 그림자 노동입니다. 중국인들은 식사를 하고 나서, 공항을 이용하고 나서 지저분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국인들은 그들의 예의 없음을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중국인들은 자기가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답니다. 어이없죠? 그런데 말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자 노동> 책의 저자는 자신이 먹은 스스로 치우는 셀프 서비스가 사회에 마냥 좋지만은 안다고 말합니다. 어지럽혀진 식탁을 누군가가 치우려면 사람을 고용해야 합니다. 지금은 많은 식당, 프랜차이즈에서 손님이 스스로 하게 만듭니다. 


"돈도 받지 않고 일해주는 고객들에게 일을 넘김으로써 막대한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자본가는 없을 것" "청년들이 사회에 나와 사람들과 대면(對面) 접촉하면서 처음으로 맡게 되는 초보적 일자리조차 줄면서 이들의 사회 적응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 대선이 트럼트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분석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기술적 진보가 노동자 계층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줬다는 내용입니다. 무인자동차, 자율운행차량이 사람들을 운수업에 종사하는 해고하고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리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저절로 늘어나게 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굉장히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IT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적 낙관주의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말하는 낙수론을 주장하는 사람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가 풍요로워 지고 사람들은 배워서 다른 직업 찾으면 될껄? 합니다. 그게 안 되면? 라고 물으면 얼버무리고 어물쩡 넘어갑니다.



비슷한 사고로 노키아 망해도 슈퍼셀, 로비오 같은 벤처기업이 등장하니 핀란드에게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한국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기술적 풍요에 배제된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비판적으로 봅니다. 기술 진보에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진지하게 보았을까요? 선거할 때만 한 번 생각하는 표 셔틀로 봤을까요?



테크기업들이 인문학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주 재미있는데, 인문학, 인간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을 점점 중심에서 배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석어놓는 구조, 무지개 떡 건축


건축가 황두진은 우리의 도시 건물을 '시루떡 건물'과 '무지개 떡'으로 구분합니다. 저층부터 고층까지 건물 전체를 한가지 용도로 지은 건물은 건물이고 층층이 다양한 용도로 구분하면 무지개 떡 건물입니다. 무지개떡 건물이 많아져야 도시가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상업용도로 건물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이 뜸해지게 되고 거리의 활기도 떨어집니다. 보행자가 없으니 범죄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집니다.


하나의 건물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모습을 무지개 떢이라고 본다면 도시 전제로 보면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주거용, 상업용 용도별로 구분지었던게 부작용이 발생하듯이 다양한 사람들은 섞어 놓아야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임대주택도 섞어 놓으려고 하지만 쉽지만은 않죠. 여지껏 한국은 계층간의 차이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점점 분리되는 경향이 보여 더 어렵게 만듭니다.



광화문에서 주말마다 촛불시위가 일어납니다. 생각을 해보니까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습니다. 광화문 광장도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살고 있는 부산에는 생각나는 곳이 없습니다. 그나마 부산역 광장이 있었지만 이곳에 조형물이 새로 생겼습니다. 일본여행 갔다 오면서 봤을 때는 예쁘네 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다시 보니 사람들이 모이는 걸 방지하는 구조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 시청 앞도 그렇고요. 통제를 쉽게 하고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농담 삼아서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산 구석 밑에 있는 게 아닌 백악관처럼 도심 한 가운데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물론 이렇게 해도 소통이 안하는 사람은 귀를 막을 겁니다. 소통을 위한 구조도 생각해 봄 합니다. 정부기관도 도심에 자연스럽게 석이도록 해야지 따로 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발견


소통을 위한 구조


도시 계획과 구조에 대한 내용이지만 다른 식으로 적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IT 서비스를 보고 있자면 도시 계획 이를 추구하는 사상과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비스는 네이버는 한국의 도시구조와 그대로 닮았습니다. 아파트와 한공간에서 모든 걸 해결합니다. 차로 지하주차장까지 와서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까지 가는 모습은 네이버에서만 놀게 만드는 구조와 비슷해 보입니다.



카카오톡이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원래 카카오톡은 전화번호부 기반이었지만 페이스북처럼 관계가 있음직한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개인공간을 침범한것 처럼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은 사람을 왜 멋대로 이어 주냐는 겁니다.



트위터는 누구나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는 트위터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합니다. 트위터는 극단적이고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들,  정치과잉, 사상가들이 많아서 보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듭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떠나가고 극단주의자들이 점점 득세합니다.



트위터의 위기는 이들이 내 집앞에 ( 하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얼쩡거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트위터가 살아 남으려면 관계 맺기가 아닌 관계 없음과 끊기가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꾼다고 칭송받았던 트워터가 이제는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5년후에 트워터가 사라진다고 해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커뮤니티도 다양한 성별, 나이, 계층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활기찹니다. 커뮤니티 운영 방침에는 정치글을 허용하느냐 마느냐가 있습니다. 정치글은 인기가 있는 주제가 아니죠. 청치 논쟁은 목소리 큰 사람과 무리가 주도하기가 쉽고 그들의 행동이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결정해 버립니다.



한 가지 방안으로 주거용과 상업용을 나누듯이 정치글을 위한 공간을 분리시켜 놓는 것입니다. 커뮤니티에서 정치글을 분리시켜 버리면 그 공간은 죽어 버립니다. 굳이 정치글을 볼려고 찾아 가는 사람은 많지가 않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광장에서 떠들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커뮤니티 구조도 어떤 방식을 하느냐에 따라서 소통을 차단하느냐 열어놓느냐 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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