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한 젊은이들 : 포기하니 행복하다

네그나 2016. 9.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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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뉴욕타임스 도쿄지국장 마틴 파클러는 일본의 세대 격차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게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 대다수가 비정규적 노동자로 불안전한 생활을 함에도 일본이란 사회에 별다른 불만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이 왜 저항하지 않는가?' 에 대한 저자의 답은 '일본 젊은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여다 보며 왜 절망속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탐구한 책입니다. 젊은이론은 기성새대가 논하기 쉬운데 그들과 같은 나이대의 젊은이가 논하는 젊은이론입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젊은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기성세대가 젊은이를 바라보는 시선 두 개로 나누어집니다. 버릇없다. 나약하다. 며 자신들과 젊은 시절과 비교해서 요즘 세대는 형편없다고 보는 사고입니다.  다른 하나는 겉으로만  보자면  '이해력이 좋은 어른'입니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이해하는 듯 행동하며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희망으로 말하며 추켜세웁니다. 말차제는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젊은이 희망을 내세우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편리한 협력자. 즉 구슬리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제국 시대에는 젊은이는 국가를 향해서 목숨을 바칠 것으로 기대했고 전후에는 부흥을 담당해야 할 산업전사를 역할을 하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권리나 기회도 주지 않고 '젊은이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지 않을까? 왜 젊은이만 노력해야 할까? 늙은이는 노력을 안해도 될까?


어른들이 못마땅한 존재로 비춰지든 구슬려야 할 존재이든 기성세대의 젊은이론은 사실 어른들의 자기 찾기 과정이라고 말하는게 흥미롭습니다. '일본인들이 약해졌다' (우리로 낯설지 않은 요즘 애들은) 말은 자기가 젊은이가 아니라고 밝히고 그와 동시에 발칙하고 이질적인 젊은이를 다른 세계에 둠으로서 자신은 성실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젊은이론은 중장년층의 자기 긍정이자 자아 찾기의 일종입니다.


이렇게만 써 놓으면 어른들을 삐딱하게 보는 듯 합니다. 과거를 되집어 보면 그들도 현재의 젊은이와 별 다른 점이 없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는 셈입니다.


과거는 좋았다? 정말 그럴까?


취업이 어렵고 고용상황도 불안정하고 결혼율, 출산율 다 떨어지며 청년들에게 한국은 쉽지 않습니다.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단어가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것만 시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반대의 시선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취직 걱정도 없었고 (공무원, 선생도 하고 싶다면 그냥 되었고) 안정적으로 살았고 집 장만도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가 마냥 좋았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과거로 돌아가면 정말 좋을까?



일본은 패전 직후 부흥을 위해 자신들의 생애를 걸었고, 이들의 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시대의 운이었지 일본은 역사상 유래 없는 풍요를 누렸습니다. 이 말은 한국에 그대로 대입시켜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사실 이 책의 많은 상황이 한국에 대입해도 낯설지가 않습니다. 한국의 정치, 경제 등 많은 부분을 일본의 모방했으니까.



과거가 마냥 좋았을까?  기성세대가 과거와 비교해 현재 상황을 폄하하는 만큼 지금 세대가 과거를 미화하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모습만 보고 취업 걱정만 하지 않는 것만 보면 그럴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주 5일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아닌 직장이 많다지만 옛날에는 근로시간이 더 했습니다. 노동환경도 더 안 좋았습니다. 전태일이 무엇하러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겠습니까? 일요일에도 쉬지 않게 만들었던 열악한 환경때문이었습니다.



당장 군대만 해도 36개월입니다. 그 지긋지긋한 곳을 36개월 동안 짱박혀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직하지 않습니까?  서민들이 '남자가 군대갔다와야 사람된다'고 세뇌 받고 때 있는 계층에서 편법으로 면제받는 일 역시 그 때가 더 했을 겁니다. 인권의식 따위는 없으니 두들겨 패고 맞는게 일상이었고, 억울한 죽음을 사고로 위장되었을 겁니다. 군대 부조리를 밝히는 걸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



과거로 되돌아가면 갈수록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제한됩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조근 더 이른 시기인듯) 머리를 염색한 연예인들이 방송 출연을 못했습니다. 연예인이 이럴지언데 일반인들은 말해도 무엇하겠나요?


야간통행 허용 스탬프야간의 이동도 합법이 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내 머리, 옷 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야간 통금은 82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혼이 낙인이 되고, 딸 이라는 이유로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기회란 게 있다는 걸 생각하지도 못하고 설령 이 현실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라도 그냥 그렇게 사는 겁니다. 그 시절에 살던 사람들이 지금은 경제 성장기이니 천국이야. 헤븐조선이라고 했을까요? 그들도 술잔 기울이면서 더러운 세상이라며 그 시대를 불평했을 걸요.



PC와 스마트폰 다 없고 무엇보다 가장 싫은 건 인터넷이 없습니다. 오락을 제공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수강신청, 입사지원, 행정처리를 일일이 해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고 정보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이 없으니 일상 생활에서는 얼마까지 알아봤냐는 말을 더 많이 들었겠죠. 사회가 더 불투명하고 폐쇄적입니다.



취업걱정 없고 안정적이니 과거가 좋아보인다는 건 단면만 보는 겁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과거로 돌아가면 박탈당합니다. 사회가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분명히 신분상승, 계층상승의 기회는 과거가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 한들 과거로 돌아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걸 감수할 수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군요. 하지만 과거를 감수하겠다면 지금도 가능할 겁니다.


그럭저럭 행복한 계급 사회로의 진입


저가가 보기에는 일본 사회는 절망적으로 변해가는데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초식남이 등장하고 이루지 못할 목표를 매달리지 않고 소비를 절제하는 사토리 세대의 등장은 이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정신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격차사회입니다. 신분의 벽이 있어서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은 도시에서 마음대로 거주할 수 없습니다. 농민공이라 불리는 도시 노동자가 있지만 그들은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는 농민공은 생각은 어떨까? 


어느 조사에 따르면 그들은 86%에 가까운 생활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농민공보다 도시 지역의 사람들이 생활 만족도 낮습니다. 농민공의 도시 생활이 농촌보다 더 나아서 일수도 있고, 우리가 빌게이츠를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생각하듯 도시 지역의 화려한 삶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느껴셔 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만약 일본이 격차가 고정된 계급사회, 신분제 사회로 들어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닐까? 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중국의 농민공 처럼 되었다는 걸 보여주는게 아니냐는 겁니다. 이 질문은 한국에게도 유효합니다.


일본의 젊은이들 사고와 행동으로 일본사회를 바라 보았을 때와 한국 사회를 보았을 때 어떻게 보일까?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직까지는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는 듯 보입니다. 여전히 불만이 많고 한국은 분노하는 듯 보입니다. 그 분노가 사회에 변화를 이끌것인가? 긍정적일까?


분노가 혐오로 전이되는 듯 모습이 보입니다. 일본의 재특화나 넷우익이 설치는 모습은 일베의 등장과 다크호스로 떠오른 메갈리아를 보면 그렇습니다. 이들의 공통 분모는 좌절과 패배입니다. 얼빠진 진보언론과 인사들은 그 분노로 사회가 바뀌는 걸 기대하는 모양새도 보입니다. 그들은 머리속은 여전히 혁명시대(전공투나 68혁명)일테니 무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가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면? 그 때는 다 내려놓고 현실적인 행복을 추구하는게 맞을지도 모릅니다.어쩌겠나요.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나라도 변하야지. 정신 승리라도 해야지. 젊은이들이 행복해지기로 결심했을 때는 과거와는 많이 다를 겁니다. 저항하지 않는 젊은이를 보고 말 잘듣는다며 기특해 할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청춘의 야성을 논하는 때가 오게 될겁니다.


불가능한 목표를 포기하고 현실에 만족하는 삶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면되다'를 종교 경전 외우듯 말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약간의 포기도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란 무엇하나를 양보하거나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서 행복하다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포기가 자발적이냐 강요선 선택이냐가 문제일겁니다.


이 책이 발간한 시점인 2011년으로 현재 일본의 상황은 5년전보다는 개선된 듯 보입니다. 우리와 달리 취업도 수월한 듯 하고. 그렇다면  일본의 젊은이들의 사고가 변하고 있을까? 현실에  불만족을 느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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