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야수와 사토리 사이에서. 코인에서 희망을 본다

네그나 2021. 5. 7. 22:02

돈 복사 시대의 야수의 등장

 

너도나도 투자를 하는 시대입니다. 증권사가 대호황이라 하고 다들 주식 계좌 하나 정도는 가지고 계시겠죠? 저도 국민주인 삼성전자 소액주주이고, 나스닥 투자자입니다. 투자에 문외한이던 제가 이러면 사실상 다 한다고 봐야. 주식은 항상 손실이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투자에 실패한다고 합니다. 한 유튜브 영상에서 증권사 관계자가 나와서 고객들의 80%가 손해를 봤다고 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작년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장이 좋았는데도요.

 

그렇지만 주식은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변동성이 큰 코인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식의 손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리먼 브러더스 시작으로 한 금융위기에 어떤 쓰나미가 닥쳤는지요. -20 ,-30으로 갈 때의 공포에 질리고 충격에 몸이 떨리던 그때를. 그 강도를 더한 코인판은 어떻게 견딜까? 무슨 멘탈로? 폭탄에 짊어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삶일텐데.

 

한 예로. 만든 사람들 조차. '장난으로 만들었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도지코인이 테슬라 CEO인 앨런 머스크의 발언 이후로 주목을 받아서 200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물론 코인답게 늘 올라가는 게 아니라 폭등, 폭락을 거듭합니다.

 

코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융정책 담당자들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바라 봅니다. 한국은행 총재도 코인은 아무런 내재가치가 없다고 말을 했고요. 실제로도 없어 보입니다. 게임 커뮤니티는 그래픽카드를 다 쓸어가서 부정적입니다. 전 별생각이 아니. 관심이 있지만 판에 뛰어들 용기가 없습니다. 나도 몇 십배, 몇 백배 파도를 타고 서핑을 하고 싶지만 천성이 쫄보라 뛰어들면 빠져 죽을 거 같습니다. 2008년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기억을 지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고 돈복사되는 코인판에 뛰어든 2030 신규 가입자만 159만 명이랍니다. 엄청나죠. 시대를 불문하고 투기판을 열렸습니다. 저 유명한 튤립 광풍, 뉴턴부터 시작해서 코인까지 도달했습니다. 사람들은 코인 투기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보면서 부정적으로 걱정하며 바라봅니다. 전 다르게 봅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봅니다. 투기판, 도박에 뛰어드는 사람에게 무슨 놈의 희망?

 

그들은 아직도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만은 계층 상승 사다리에 올라타려고 행동합니다. '그래 확률은 희박하지만 이걸 타자.' 다른 건 되나? 일을 해서 언제 격차를 따라잡지?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앨런 머스크 같은 거부가 되려는 게 아니라. 바람은 소박한 편이겠죠.

 

집 하나 사자. '로또 당첨되면 뭐할거냐?'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집 산다고 하더군요. 로또 당첨금 조차 집 한 채 가격이 안 나오게 되었습니다. 격세지감입니다. 당첨이 되기 엄청 어려운 1등. 대부분 사람이 볼 일 없는 1등 조차 인생이 역전되는 게 아니라 집 하나 살 정도가 되었습니다.

 

슈카 월드에서 대 투자 시대. 한국 사람들이 파랑새 찾기 게임에 뛰어들었다면서. 파랑새 찾기 게임에 실패를 하게 되면 여러분의 자식 세대는 무관심하게 변할 거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우리는 이 대투자 시대라고 쓰고 대야수(野獸) 시대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한 다리 건넌 사람이 전재산을 코인에 넣은 뒤. 돈을 벌어서 퇴직하고 건물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와 같은 성공을 하고 대부분은 실패를 하게 될겁니다. 합법적인 권장하는 투자판인 주식조차 대부분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주식판을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놓고 도박판인 코인은 더 많은 실패를 낳게 될 겁니다. 뛰어들 용기가 있다면 하면 됩니다. 권장할 수 없겠지만.

 

문제는 이 이후죠. 실패 그 이후.

 

무관심. 상승 욕망의 쇠퇴

 

이글은 2013년에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일본의 신인류인 사토리 세대의 등장에 관해서입니다.

 


 

일본에서 사토리(さとり) 세대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토리는 득도를 뜻하는데 이 들은 차나 명품 소비, 해외여행에 관심이 없고 출세하겠다는 의지도 없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차를 타지 않고, 브랜드 옷도 입으려 하지 않고, 스포츠도 안 한다. 술도 안 마시고, 여행도 안 간다. 연애는 담백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는 나서려 하지 않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초식계(연애나 섹스에 관심 없는 경향)에 낭비를 하지 않고 욕망하는 게 없는 게 특징입니다.

 

 

일본의 장기불황의 여파일까요? 이전에도 파나소닉 휴대전화 사업 축소, 일본 사회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일까?

적은 적이 있습니다. 노력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겁니다. 욕망이 사라지면 현실에 만족을 합니다. 힘들게 돈을 더 벌 필요도 없습니다.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토리 세대의 등장으로 일본의 자동차 업계와 여행업계가 타격을 입습니다. 도요타는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예전에 일본의 젊은이들은 돈을 벌면 차부터 사고 봤지만 달라졌습니다. 차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드니 당연히 소비도 줄겠죠.

 

 

출처 경향신문

 

일본의 사례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은 우리나도 이렇게 될까?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뒤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조교제도 보이스피싱, 왕따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5년에서 10년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한국도 삼포세대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어떻게 변하게 될지가 궁금합니다.

 

 

지금은 소비도 왕성하고 스마트폰, 아웃도어 열풍이 일어나면 전국적으로 유행을 합니다. 미래에는 이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장점이라면 역동성인데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한 때, 인터넷에서 '우리 아마 안될 거야'라는 자조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게 자기 계발서가 유행하고 난 뒤 나왔습니다. 자기 계발서는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계속 통하지는 않습니다. 해봐도 크게 변하지 않으면 오히려 냉소가 나옵니다. 요즘 유행하는 코드는 힐링입니다. 방송, 책, 영화가 힐링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라고 말하기보다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거도 사회 분위기가 변하는 조짐이 아닐지.

 

 

한국도 만족 세대가 등장하게 되면 사회분위기가 많이 바뀔 겁니다. 욕망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을 겁니다. 이런 변화는 현재의 행동이 원인으로 작용을 한 것이겠죠. 한국이 욕망과 야성이 사라질지 두고 볼일입니다.



출처: https://negna.tistory.com/1518 [네그나의 두 번째 이야기]

 


 

이전 글에서 처럼 조짐이 있었죠. 자기 계발서의 유행에서 힐링으로. 한국처럼 무언가 유행을 하게 되면 우르르 따라가려는 것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무관심하지는 않은 겁니다.  슈카의 말처럼 파랑새 찾기 게임이 실패하게 되면. 아니 실패하게 되어 있죠.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시장은 어디에서든 언제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드디어 체념을 하게 될 겁니다.

 

무관심이라기보다. 드디어 상승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거라고 봅니다. 그것이 신분이든 계층이든 말입니다. 전쟁 이후 한국인을 지배하던 하나의 가치관이 쇠퇴하게 되겠죠. 나도 올라가고 싶다.

사토리 이후. 일본은 포기해서 행복하다는 세대가 등장합니다.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를 보면 극심한 격차사회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2010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 20대 남성 65.9%, 20대 여성 75.2%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답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없습니다. 인간이란 미래에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6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경기가 좋아졌을 텐데 조금 바뀌었을까? 일본 사회의 보수성을 보았을 때 많이 바뀌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비슷하게 미국의 사회현상이라고 할까요?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층의 히스패닉 가정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 봤더니 중산층 못지않았다고 해서 흥미로웠습니다. 객관적인 수치로만 보면 더 불행하게 느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교육에 관한 내용의 책이었는데. 그 가정들이 왜 자식들을 더 교육시키지 않고 대학에 보내지 않을까요? 남일이니까요. 건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별이고, 손에 잡을 수 없는 신포도입니다. 불가능한 희망임을 안다면 포기합니다.  인터넷에서 돌던 슬램덩크 안 선생님 짤처럼 포기하면 편합니다.

 

 

파랑새 찾기 게임이 실패하는 한국은 격차사회가 완성될 거라고 봅니다. 교육에 관한 열망에 줄어들 겁니다. 교육부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문제가 하나가 사라지겠죠. 소수이지만 일하면서 젊은 엄마들을 만나 봤는데요. 의외로 아이들을 죽자살자 교육시키지 않았습니다. 물론 시키기는 합니다. 자기도 겪어봤고 대학에 나온들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확률이 떨어지는 작은 희망( 교육을 통한 상승)에 기대하기 보다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도달할 수 없는 희망 찾기에 포기를 한다면 마침내 답을 찾은 거죠. 역설적으로 정말로 행복해질 거라고 봅니다. 비꼬는 것 없이요. 자신의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만족하는 삶 찾기에 나서겠죠. 현재 소확행이 트렌드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도 풍요로운 사회라 누릴 수 있는 건 풍족한 편입니다. 욕심만 버린다면요.

 

물론 잃는 것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더 정적이게 될 것이고, 유행에도 덜 민감해질 것입니다. 계층적으로 지리적으로 지금보다 더 뚜렸하고 구별이 될것입니다. 그것이 좋냐 나쁘냐는 제쳐두고. 상대적 박탈감이 덜 하고 정신건강에는 더 좋을 겁니다. 경제현상을 보면 포기 경제, 현재에 만족하는 경제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도 변하는 사회로 뜨는 산업과 지는 산업이 존재하겠지요.

 

20~30년이 지나서 현재와 스스로의 삶에서 만족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은 코인판에 뛰어드는 야수 같은 사람들은 그리워할지도 모릅니다. 파랑새를 찾지 않으려는 사람을 탓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는 파랑새를 찾아보려고 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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