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8일 한국에 아이폰이 출시된 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이폰이 끼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통신사의수익감소를 막기 위해서 와이파이가 제거되었고 유료인 3G 서비스를 이용하기를 강요했습니다. . 인터넷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연결이 되었고 요금이 청구되었습니다. 단순 실수로 요금이 청구되된 요금. 공중전화로 따지면 낙전이라고 볼 수 있는 거저먹을 있는 요금도 상당했을 겁니다. 아이폰 이후에는 족쇄가 풀려 와이파이 탑재가 기본이 되었습니다
데이터 통신이 활성화되었고 이제는 음성보다 데이터 통신을 더 많이 사용하는 시대입니다. 매니아들만의 기기였던 스마트폰이 주류로 부상했고 불과 4년만에 피쳐폰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앱스토어를 통한 새로운 시장과 기회가 생겼고 모바일 게임과 같은 콘텐츠 시장이 열렸습니다. 한국의 통신환경은 아이폰 도입함으로써 변화게 되었고 큰 변화를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아이폰에 대한 반응은 두가지로 나타났었습니다. 간절하게 바라거나 두려워했습니다. 간절하게 바랬던 사람은 얼리아답터를 비롯한 일반 소비자들이었습니다. 아이폰이 기득권을 깨뜨리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주기를 바랬습니다. 아이폰을 두려워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두려워 했을까?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음의 예를 봐도 아이폰을 두려워한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에게 "아이폰 도입을 유보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고, SK텔레콤은 그에따라
아이폰 도입을 미룬 것으로 드러났다.[12] 통신사들도 아이폰 출시로 인한 데이터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이러한 스마트폰의
출시를 최대한 막으려 한 것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3] 훗날 이석채 KT 회장은 사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혁신의 아이폰을 도입했지만, 우리는 두 재벌회사가 그렇게 강력한 차단에 나설지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대한민국 재벌이
아이폰 도입을 막았음을 밝히기도 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통신사와 제조사들이 아이폰 처럼 막을려고 했던 것처럼, 소련이 막을려고 했던 상품이 있습니다. 바로 청바지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청바지를 왜 막는단 말인가? 소련은 무엇이 두려워 청바지를 막으려고 했을까?
청바지 이미지를 입다.
니얼 퍼거슨의 < 시빌라이제이션 >에서 청바지에 대한 일화가 나옵니다.청바지는 원래 광부와 카우보이들이 입는 실용적인 바지였습니다. 블루진은 생산비가 저렴하고 세탁하기 쉽고 잘 찢어지지 않으며 입기에 편안합니다. 하지만 청바지만 입기에 편안한 것도 아닙니다. 처질이 전시에 입었던걸로 유명한 영국의 오버롤 작업복도 편안합니다. 교도소 수감자들에게도 지급된 청바지가 어떻게 전세계에 퍼지게 되었을까?
청바지에 이미지를 입힌 것은 영화와 마케팅이었습니다. 위험한 질주에서 말론 브란도는 청바지에 가죽 자켓을 입었습니다.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은 역시 청바지를 입고 나왔고 엘비스 프레슬리 까지 이어집니다. 미국의 마케팅은 말보로에 의해서 한층 부채질됩니다. '말보로 맨'이라는 남성상은 청바지의 인기를 부채질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카우보이의 모습은 1954년 마케팅 전문가 리오 버넷의 작품이었습니다.
1955 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반항은 청바지에 연결된다.
이렇게만 적으면 청바지가 마냥 인기가 좋았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청바지는 불온의 상징으로 여겨지도 했습니다. 1830년대 모르몬교 지도자 브리검 영은 청바지를 간음용 바지라고 비난했습니다. 청바지가 성적 자극을 일으킨다는 평판을 확립했을 때 1944년 라이프지가 청바지 차람의 일류 여대 웨슬리 여학생 두명의 사진을 실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청바지가 비난을 받다가 인정을 받는 과정은 비키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비슷합니다.
비키니는 1946년 파리의 기술자 루이 레아가 발명했습니다. 마셜 제도의 북부에 있는 환초 비키니 환초(비키니 섬, 코코넛의 땅이라는 뜻)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핵실험을 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이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루이 레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비키니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비키이의 파격적인 디자인에 사람들의 경악합니다. 로마 교황청은 비키니를 '부도덕한 옷'이라고 비난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착용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비키니가 대중화된 지금에 와서 보면 우스운 일로 보입니다. 미니스커트가 등장했을 때의 소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출의 역사는 저항과 극복의 역사입니다.
청바지의 인기는 점점 상승해 상류층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청바지는 노동자와 죄수의 엉덩이 보호대로 시작해서 노동이라는 이미지였지만, 전쟁중에는 방위 산업 노동자들의 필수품으로, 전후에는 폭주족들의 유니폼이 되었습니다. 아이비리그 학생들에게 전파되었고,1960년대에는 보헤미안 작가, 포크 카굿, 팝그룹으로 마침내 리처드 닉슨으로 이후 모든 공식적인 나들이 의상이 되었습니다. 청바지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인기였습니다.
청바지를 막아야했다. 그리고 아이폰을 막아야 했다.
전세계 모든 젊은이들처럼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십대들도 청바지를 입고 싶어했습니다. 청바지는 제국주의적인 이미지였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웃긴일입니다. 청바지는 광부 노동자들에게 출발했습니다. 청바지는 만들기가 쉽고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잘만한다면 청바지는 소련 노동자들의 미덕을 상징처럼 만들 수 있 있었습니다. 청바지는 노동을 상징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전통에 대한 반항으로 상징됩니다.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은 항상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습니다. 2006년 벨라루스에서 벌어진 독재정권에 대항한 시위대가 모두 청바지를 입은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소련은 왜 청바지를 막아야했을까? 청바지는 단순히 청바지가 아니라 체제에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청바지의 도입은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청바지는 필요에 의해서 소비되기 보다 기호에 반응합니다.플라넬 바지보다 청바지를 버트 맥거랙보다 믹 재거를 선호하는 기호에 반응해서 입니다. 시장은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는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합니다. 이것은 생산과 분배를 지시하는 소련체제를 전복시킬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소련입장에서 청바지는 사악한 바이러스이므로 막아야 했습니다. 당국에 피해서 청바지 밀수를 했습니다. 청바지를 향한 열망은 극도로 강해져 소련 사법당국은 진 범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습니다.
1986년 프랑스 좌익 철학자이자 한 때 체 게바라의 동지였던 레지스 드브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록음악, 비디오, 블루진, 패스트 푸드, 뉴스 채널, 텔레비젼 위성에는 붉은 군대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이
있다.
아이폰도 누군가에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는 체제의 위협으로 여겨집니다.거세된 와이파이를 부활시키 수익을 줄이게 만듭니다. 단말기에 대한 주도권도 통신사에서 휴대폰 제조사도 넘어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손에 쥐었던 것을 모두 가져가 버리테니 두려움을 느꼇을 것입니다. 아이폰은 막아야만했습니다. 결국은 실패했지만... 청바지가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아이폰도 저항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아이폰은 통신사와 제조사의 벽을 부술 망치였습니다.
창의와 저항의 상징이 된 청바지
넥타이는 청바지보다 우월하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회사는 놀이터다'는 통신 회사 광고 문구가 교과서에 실렸다고 합니다. 넥타이가 규율을 상징한다면 청바지는 자유를 상징합니다. IT 유명인사를 보면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검정색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었던 스티브 잡스이겠죠.
스티브 잡스하면 생각나는 청바지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기술혁신으로 기존의 것을 도태시키고 변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파괴가 일어남과 동시에 창조가 일어납니다. 창조적 파괴는 경제의 동력이 됩니다. 창조적 파괴는 시대를 앞서간 단어로 과거보다 지금이, IT기업에게 더 맞습니다. IT기업들은 새로운 기술 개발로 기존의 무엇인가를 쓸모없도록 만듭니다. 스마트폰 열풍으로피쳐폰, MP3플레이어, 전자사전, 게임기, 디지털 카메라, 내비게이션이 소용돌이 휘말린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커다란 성공일 수록 커다란 파괴가 일어납니다.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는 사람들과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있는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최근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가 창조경제입니다. 창조경제를 외치는 사람들은 넥타이를 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제, 태안 사설 해병태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실종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해병대 캠프를 보내는기저에는 이런 생각이 있을 겁니다. 해병대 캠프에 참가해서 고생을 극복하게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고생도 스스로 원해서 고생을 해야 합니다. 원해서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사람은 즐겁겠지만 시켜서 하는 사람에게는 괴로운 일입니다. 누군가가 시키는 고생은 의미없는 에너지 소모일 뿐입니다.
이 사고가 한국을 잘 보여주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창조를 멋지게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입으라고 하지만 사회는 넥타이를 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해병대 캠프에서 무언가를 배워라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잘 순응하라는 뜻입니다. 저기서는 왜? 라는 질문을 할 수 없습니다. 넥타이를 매서 아이폰과 같은 물건이 나올 수 있을까? 한국은 청바지를 입힐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청바지를 입는 다는 것은 기존 질서의 저항, 반항을 권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탐탁치 않을 겁니다. 한국은 질서를 깰 준비가 되었을까?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을겁니다. 창조 경제라는 말이 실체없이 공허하게 떠도는 이유도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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