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창조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네그나 2013. 6. 4. 09:00


영화제작과 인공위성, 무모한 도전?



방송인 이경규는 개그맨 활동을 하면서도 영화제작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경규는 1992년에 주연과 감독을 맡은 복수혈전 을 내놓지만 실패하고 영화의 높은 벽을 실감합니다. 그 후 제작자로 방향을 변경바꿔 < 복면달호 >와 < 전국노래자랑> 제작했습니다. 이경규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 답하는 질문이 '왜 영화를 하는가?' 입니다. 질문의 의도는 이렇겠죠. '개그맨으로 입지를 굳히고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뭐하러 영화판에 뛰어드는가?'


이에 대해서 이경규는 개그맨은 직업이고 영화제작은 꿈이라고 말합니다. 이경규의 꿈인 영화제작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배인 개그맨 이윤석이 이경규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형님, 영화하지 마십시요. 왜 영화판에 가서 수모를 당합니까?'


이경규가 영화에 뛰어는 드는 이유는 복합적이겠죠. '영화로 통해서 인정받고 싶다.' 돈도 물론 중요할 테지만 영화로 돈벌겠다는 생각은 도박입니다. 성공을 하면 대박으로 돌아오지만 이것은 아주 낮은 확률일 뿐입니다. 여유자금을 영화에 투자할바에 빌딩 하나 사는게 현명한 투자일겁니다.


이경규의 영화제작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꿈을 위해서 돈을 날린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돈을 날리는 사람이 눈에 띄였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트 송호준은 개인 인공위성을 우주를 쏘아올렸습니다.

오마이 뉴스와 송호준의 인터뷰.  "1억원 모아 개인 인공위성 쏴올렸어요"




송호준은 2008년 부터 5년동안 준비해서 개인 인공위성을 날렸습니다.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내는데 사용된 금액은 1억원. 생각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서 놀랐는데 이 정도라면 대학에서도 충분히 해볼만하겠습니다.  송호준이 인터뷰중에 다음과 같을 말을 했습니다.


인공위성 발사에 드는 비용이 우리 돈으로 1억 원이 좀 넘어요. 그걸 몇 번 나눠서 '할부'로 냈는데 한 번에 2800만 원씩 프랑스 인공위성 발사 회사에 부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 돈이면 벤츠를 사고 물 콸콸 나오는 샤워기도 살텐데'


"저는 무엇인가에 미쳐있는 싸이코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재밌게 놀고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한국에는 도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잖아요. 굳이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도하는 무엇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요.



억압된 욕망


개인 인공위성를 날리는데 1억원 썻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인공위성이 우주에 영원히 떠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지구 주위를 돌다가 떨어져버릴텐데 1억을 쓰다니. 인터뷰에 나온 것 처럼 1억이면 고급차도 살 수 있고 샤워기가 나오는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1억을 썻다는 건 인공위성 발사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는 걸 뜻합니다. 자신은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고 평범한 아이였다고  말하지만 비용을 들여서 위성을 쏜 걸 보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습니다.


the enigma of my desire살바도르 발리. 나의 욕망의 수수께기(the enigma of my desire)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 '당신을 무엇을 욕망합니까? ' 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우리 사회는 욕망에도 표준이 있습니다. 학력은 대졸 이상, 차와 집도 어느 규격이 갖추어져있고, 좋아하는 것도 취미도 무난합니다.


한국인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를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게 남들이 보기에 사소하게 보일수록 더 합니다.

'그런 쓸 떼 없는 행동을 왜 하느냐?' 말 듣기 쉽상이므로 마음속에 묻어둡니다.


사회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안철수가 교수생활을 하면서 '젊은이들이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은데 사회의 거대한 힘이 누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대한 눌림이 각자의 욕망을 평평하게 표준적으로 만듭니다. 생긴것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른데 어떻게 욕망이 같을 수가 있을까 그건 거짓입니다.



창조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각자의 욕망을 숨기는데 익숙합니다. 이게 왜 문제일까? 요즘에 가장 많이 듣는단어가 창조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창조경제를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창조경제의 대표 사례로 강남스타일을 들고 있습니다. 창조라는 말, 혁신이라는 말이 유행할까? 기존의 방식으로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경제. 말은 좋은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창조라는 건 스스로 원해서 해야 됩니다. 위에서 이거 해라. 저가 해라 로 되는게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여지껏 성장을 한 방식은 국가에서 지시를 내려 정해주었습니다. 지시를 잘 종하고 근면성실하게 일해서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건 열심히 하면 됩니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은 무언가가 정해있으면 따라잡는 것은 잘 합니다.



'창조 경제 합시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연상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러번 소개했는데, 서양의 부모는 아이가 답을 스스로 찿도록 끈기 있게 기다려 주지만 한국의 부모는 답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을 한국의 엄마의 문제로 보면 안됩니다. 한국에서 교육의 대부분의 엄마에게 맡겨져 있고 아빠는 일이 치여 살거나 무관심합니다. 엄마는 한국사회의 비유이자 국가의 비유입니다. 한국사회가 가진 모습입니다. 아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지시하는 것 처럼 국가 지도자가 창조합시다. 창조합시다. 외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결되면 문제라고 여겨지도 않을 겁니다.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 하나. 한국 애니메이션이 90년까지 착실하게 커나다가 갑자기 꼬꾸라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영화 쥬라기 공원이 성공하자 언론들은 영화 하나가 현대자동차 몇 만대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컨텐츠 산업을 지원한다면서 돈이 들어왔는데 이것이 독이 되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영양제를 과다하게 투여해서 말라비틀어졌습니다. 문제푸는 아이를 내버려 두는 것처럼 그냥 지켜봤으면 더 좋았을겁니다.


고다드제작한 로켓과 함께 서있는 고다드


미국 로켓 과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로버트 고다드. 어린시절 부터 날아다는 모든 것들에 흥미를 느꼈고 세계 최초로 액체 로켓을 사용한 현대적인 개념의 로켓을 쏘아올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비웃음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사후에 로버트 고다드의 업적이 재평가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고다드 우주 비행센터를 만듭니다. 시작은 하늘로 날리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욕망을 실현시켜 주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아야 되겠죠.사회가 만들어 놓은 욕망이 아닌 자신이 정말 원하는 욕망입니다. 춤을 추고 싶다, 노래를 하고 싶다, 사진을 찍고 싶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 누구나 각자의 욕망이 있습니다. 위에서 지시를 하게 되면 특히 관료주의가 결합될 경우, 그럴 듯해 보이는 욕망으로 포장하기 쉽습니다. 



IT산업에서 볼 수 있는 리누스 토발즈, 스티브 잡스, 스티브 위즈니악, 마크 주커버그. 공통점. 허튼짓한겁니다. 이러 허튼짓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테고, 누군가는 개썰매를 끌테고, 누군가는 인공위성을 쏘겠죠.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걸어다가 실험을 하게 되면, 어는 순간 적절한 시기와 조건이 결합되고 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종국에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게됩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용하는 제품들이 그런식으로 만들어져왔습니다.



꿈을 세상밖으로 나가게 만드는지 마음속에 묻어두는지 생각을 해봐야겠죠. 창조는 지시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욕망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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