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야후 국내 철수, 야후도 걸린 오이디푸스 딜레마.

네그나 2012. 10. 20. 10:05

 

야후 15년만에 국내시장에서 철수

 

 

야후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97년에 서비스를 시작한뒤 15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야후코리아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오버추어가 계약에 실패하자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모양입니다.

 

 

인터넷붐이 일어났던 90년대 후반~2000년초만 하더라도 야후가 대세였습니다. 국내시장은 패권은 야후가 3년, 다음이 3년을 가졌었고 이후로 네이버입니다. 과거의  패턴이라면 네이버 이후로 무언가 나와야 했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바일 붐을 타고 카카오톡이 나온 정도. 네이버에 맞설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검색시장은 네이버, 다음, 네이트  빅3와 구글이 주도하겠습니다. 말이 빅3지. 네이버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에 이르니 1강 2약 구도입니다. 알타비스타, 파란,엠파스,라이코스,등 그 동안 많은 검색엔진이 나타났지만 15년이 지나자 3~4개로 압축되었습니다.

 

 

 

이제 검색 엔진은 성숙기에 들어가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어떤 산업이든간에 시간이 지나게 되면 소수의 몇 개 기업으로 정리되게 됩니다. 지금 뜨거운 모바일 시장도 그렇게 될 겁니다. 또 진입장벽이 생깁니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검색 엔진도 반도체 산업과  비슷합니다.

 

 

구글이 공개한 데이터센터를 보면 방대한 규모에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구글이 검색엔진으로 성장하자 마이크로소프트도 구글을 따라잡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 엔진에 개발에 1억 5천만 달러를 투입했는데도(지금은 비용이 더 높아졌겠죠.) 구글을 못 따라 잡았습니다.

 

 

 

검색엔진에 새로 진입 하고자 하는 기업은 투자금을 계산해보고 진출을 포기 할겁니다. 서버, 데이터센터,인력,기술 개발, 시간등 너무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구글은 경쟁자가 성장할 때 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

습니다. 투자한다고 해서 따라잡는 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한 컨설턴트가 휴대폰 시장에서 뒤쳐졌다가 다시 살아난 기업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노키아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더군요. LG가 휴대폰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 빨리 경쟁력을 회복해야 할 이유도 되겠죠.인터넷 이라는 전쟁터가 무서운 건 바로 이 사실. 한 번 뒤쳐졌다가 다시 부활한 사례는 없습니다. 뒤쳐지는 그 순간이 바로 끝입니다.

 

 

 

야후도 걸린 오이디푸스 딜레마.

 

 

 

노키아가 시장점유율이 떨어지자 마산에 있는 노키아 공장이 인원감축을 실시했습니다. 75%가 명예퇴직했습니다. 노키아 처럼 야후의 국내시장 철수는 본사의 경쟁력 하락과 관계가 있습니다. 야후는 자신들이 있게 한 검색을 소홀히 하고 미디어 기업이 될려고 하다가 뒤쳐졌습니다. 야후가 검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야후는 구글 출신의 마리사 메이어를 CEO로 영입하고 부활을 모색중입니다. 

 

 

 

야후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이전 글에 코닥의 파산은 파산이 오이디푸스 신화와 비슷하다고 적었습니다. 코닥 파산. 오이디푸스가 되어버린 디지털 카메라  자신의 아들에게 장차 죽음을 당할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는 오이디푸스를 버립니다.

 

 

예언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코닥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최초로 만들어낸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결국 죽습니다. 사실 코닥도 알고 있었습니다. 코닥 사내에서도 디지털 카메라로 이행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올라오기도 했고, 경영자도 결국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코닥도 오이디푸스처럼 예언을 실현하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마치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듯 말이죠.

 

 

야후가 추락하게 된데에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글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것 처럼 구글의 창업자들은 처음에 기업을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을 팔려고 했습니다. 그 대상 중에는 야후도 있었습니다.

 

 

구글의 검색엔진을 시험 해 본 야후는 훌륭한 검색엔진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야후의 창업자인 제리 양은 이것은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구글의 검색엔진을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야후의 전략과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야후가 더 많은 수익을 올릴려면 사람들이 오래 머물려야 했습니다. 구글 검색을 사용하게 되면 사용자들이 야후를 떠나게 될테고 이것은 수익감소로 이어집니다. 야후 입장에서는 정확한 검색결과를 제공하는 구글 글 검색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야후의 결정으로 인해 페이지와 브린은 별 소득없이 스탠퍼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후의 결정이 오히려 구글에게는 행운이 되었습니다. 구글은 벤처자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오늘에 이릅니다. 야후는 신탁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직접적인 예언은 아니더라도 미래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간접적으로나마 보았습니다. 누군가 보다 더 정확한 검색엔진을 사용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내부에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을까?

 

 

코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알고 있어도 변하기 힘듭니다. 지금 수익을 잘 내고 있는데 괜한 짓 하는거 아닌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패권 교체는 이렇게 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구태여 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있는 것, 지키는 거나 잘 하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진게 없는 사람들은 지킬게 없으므로 이것 저것 시도해

봅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시도가 통하게 되면 게임의 규칙을 다시 쓰게 됩니다. 

 

신탁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신탁이 떨어졌을 때 과연 몇 명이나 변할까요?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려고 할 때 인기제품인 아이팟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이 남의 손에 죽느니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결정이었고 아이폰은 대성공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업은 보기 힘듭니다. 거의 대부분이 못합니다.

 

 

하지만 애플 역시 계속 웃고 있을 수는 없을겁니다. 애플은 아주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지킬게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킬게 많아지면 애플도 오이디푸스 딜레마에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신탁을 보았을 때,  애플 역시 야후나 코닥처럼 행동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애플에게 파괴 적인 결과를 보일 수 있는 기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죽을지 모르는 것을 내부에서 혹은 외부에서 가지고 온다면?  애플이 신탁을 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애플의 미래가 바뀌게 될 겁니다.

 

 

 

 

아이디어, 포르노, 911테러가 구글을 있게 했다.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섹스와 폭탄, 그리고 햄버거가 현대 문명 발전의 동력이 됐다는 주장입니다. 군사 기술이 포르노 산업에 사용되었습니다. 잠수함에 사용되었던 기술이 맥도널드 같으 패스트

푸드 기업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3개의 키워드로 현대 문명을 설명한 것처럼 구글을 발전 동력을 3개의 키워드로 보겠습니다.

 

 

1. 아이디어

 

 

그리스의 여신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것 처럼 구글도 하나의 단순한 생각에서 태어났습니다. 검색결과에 평판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생각은 레이 페이지 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코넬 대학의 조너선 클라인버그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글이 최초가 아니라는 거죠. 특히 클라인버그는 페이지와 브린보다 1년앞선 1997년 5월에 그들의 논문과 거이 동일한 아이디어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링크가 많이 걸린 페이지 일 수록 더 신뢰할 수 있는 페이지라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구글의 시작입니다.물론 이 아이디어가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게 된데에는 호의적인 투자자와 실리콘 밸리, 스탠퍼드, 미국과 같은 배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구글의 처음 시작은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흔하게 듣는 말이지만 사람과 지식이 중요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로 하나로 세상이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one simple idea

one simple idea

 

 

3. 911테러.

 

구글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득을 보았습니다. 구글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킨 날.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테러였습니다. 911테러로 인해 구글의 명성은 공고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뉴욕에 가해진 공습에 관해서 뉴스를 찿아 보기 위해서 애를 썻습니다.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정보였지만 접속이 폭주하자 많은 사이트들이 접속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9월 11일날 뉴스와 정보에 대한 링크를 제공할 수 있었던 사이트는 오직 구글 뿐이었습니다. 구글은 자신들이 공고함을 보여주었고 구글의 명성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911테러

구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인 2001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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