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수단이 목적으로 변해 버릴 때.

네그나 2011. 4. 13. 00:30






카이스트로 에서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데 이어서 교수 마저 목숨을 끊임으로써 사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로 시끌시끌합니다.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조금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징벌적 등록금제와 영어강의를 문제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징벌적 등록금제도 문제가 많죠. 잘하면 장학금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과 '넌 다른 사람 보다 못 하니까 수업료를
더 내라' 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엄청나게 굴욕감을 느끼겠죠.  게다가 카이스트는 날고 긴다는 사람이 많은 대학 아닙니까. 수재 소리 들으면서 공부하다가, 경쟁에서 밀리고 그로 인해서 등로금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카이스트 정도의 대학을 갈려면 어느정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겠죠. 사교육 받지 않고 카이스트 간다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생각하기 힘듭니다. 즉 가정에서 재정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거죠. 등록금 부담이  문제 라기 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낸 것이 이런 사태를 야기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징벌적 등록금 문제보다 더 주목을 하는 것은 영어강의 입니다. 100%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가 교수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 준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영어강의를 하나 보았더니 카이스트가 국제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음이 기사가 왜 대학에서 영어강의 열풍이 불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대학교에서 이뤄지는 영어강의가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그 실효성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이렇게 영어강의를 경쟁하듯 늘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들은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는 취지라 주장하지만 실제론 대학평가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함이라는 지적이다.

대학교육협의회의 평가와 함께 현재 대표적으로 꼽히는 대학 평가는 더 타임스지와 QS(Quacquarelli Symonds)가 공동 진행하는 ‘세계대학평가’와 국내 A언론이 매년 발표하는 대학 평가가 있다. 이 두 기관에서 이뤄지는 평가 항목을 보면 영어 강의나 외국인 교수 비중이 활용되고 있어 대학들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상황. 교내 대외교류처장을 맡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대학평가순위에 따라 학교 이미지와 홍보효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서는 평가순위를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특히 A언론사에서 매년 실시하는 대학평가의 지표를 살펴본 결과 국제화 부문에서 영어강의 비중에 대한 가중치가 외국인 교수비율과 함께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들로서는 영어로 강의를 많이 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1994년부터 실시돼 온 A언론사의 대학평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평가와 함께 국내 가장 오래된 대학평가 중 하나로 꼽힌다. A언론사에서 평가항목에 ‘영어수업 비중’을 포함한 건 2006년부터다. 이는 대학들이 영어강좌를 개설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최근 잇딴 자살사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카이스트는 지난 해 A언론사의 대학평가 순위 중 영어강좌 비중 부문에서 전체 대학 중 1위를 차지했다. 일반 전공수업은 물론 일본어나 동양철학과 같이 굳이 영어로 강의를 할 필요성이 없는 과목들을 포함해 전 과목을 영어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를 일고 느끼는 것인데 대학평가라는게 얼마나 객관적이고 현실적일지 의문이 갑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대학을 평가하는 기관이 모든 대학을 다 방문할 수 없겠죠. 우리나라만 해도 대학 숫자가 엄청난데 전 세계로 따진다면 그 숫자는 더 엄청나겠죠. 대학을 평가하기 위해서  직접 방문을 한다면 지구촌 곳곳을 이동하는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 합니다. 그렇다면 서류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 즉 영어강의 비중이나 외국인 교수의 비율, 유학생, 논문을 가지고 평가를 하겠죠.



이 것만 가지고 대학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서류상에 나타나지 않는 잠재력은 평가할 수 없겠죠. 대학의 잠재력이나
열정, 학구열 같은 요소를 반영할 수 없을 겁니다. 마치 사람을 IQ로만 파악하는 것가 비슷하죠. 지능지수로만 사람을 평가한다면 아주 편향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죠.





명분은 국제화를 내세우고 있습지만, 결국 순위권에 진입을 하기 위해서 영어강의를 한다는 건데요.
제 의견을 말하자면 뻘짓거리 하고 있는 걸로 보여집니다. 영어강의는 한국 특유의 사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허세와 체면문화 입니다. 내실을 중요시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더 중요시
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식을 쌓기 위함입니다.  지식을 쌓고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새로운
생각과 사상을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영어는 단지 그 도구 일뿐이죠. 영어로 강의를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언어와 문자는 지식을 전수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지식을 추구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도구를 잘 쓸까?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생각을 하고 있죠.



조금 다른 예 이겠지만요. '100% 영어강의를 하니까 이제 우리 대학도 국제적이야' 라고 생각을 하는 것과  DSLR
사고 나서 마치 사진전문가가 된 것인마냥 거들먹 거리는 사람과 비슷해 보입니다. 카메라 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비싼 카메라를 들면 사람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봐주겠지' 생각을 하고 비슷합니다. 특히 한국은 이쪽으로 좀 심합니다. 남에게 보이는 위한
자동차, 결혼식, 패션이 허세가 심합니다. 대학 이라는 집단 조차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사용하면 됩니다. 한국말로 해도 될 껄 굳이 영어로 할 필요는 없죠. 최신지식를 얻기 위해서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카이스트 정도의 학생이라면 영어로
된 원서와 논문은 무리 없이 볼 수 있겠죠.그 정도만 되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굳이 전교 학생들이 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뽑내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카이스트 영어강의를 듣고 떠오른게 LG의 영어공용화 정책입니다. 지금은 퇴진한 남용이 LG CEO로 있을 때 영어공용화를 전사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카이스트 처럼 글로벌 기업을 추구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이론상으로 전 구성원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 글로벌한 조직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현실에서는 문제점이 더 컷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니 소통에 소극적이 됩니다. 영어로 회의를 진행한 뒤, 한국인 끼리 따로 만나서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합니다.결국 의사소통에 비효율성 문제로 LG는 영어공용화 정책을 폐지 합니다.




LG가 스마트폰 시장의 느린 대응은 저 영어공용화 정책이 한 몫 했을 겁니다.
지금의 스마트폰 시장은 변화가 빠르고 극심한 상태 입니다. 전 구성원이 활발하게 소통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서 얼마나 좋은 의견이 나오겠습니까. 좋은 아이디어나 전략이 있어도 영어로 표현해야 하니 그냥
넘어가겠죠. 괜히 나섰다가 부족한 영어실력이 드러나서 망신 당할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없는 거죠.




LG를 보면 쉬운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렬고 했습니다. 형식에 집착해서 내용을 못 보았죠.
물론 영어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지금 세상에 영어를 모르면 그것도 문제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영어를 유창하고
완벽하게 구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마 LG는 기업이라서 문제가 빨리 드러납니다. 의사소통의 문제점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그로인해 시장점유율이 떨어집니다. 경영진에서는 무엇이 문제인가 찿아보고 대책을 내놓습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처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지 않죠. 카이스트 처럼 극닥적인 문제가 보이지 않는 한  하던대로
하게 될겁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거죠.




해외의 유명대학이 영어로 강의를 하는 것은 당연하죠. 보통 유명대학이라고 하면 미국의 명문대 인데요. 그들의
언어가 영어니까 영어로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니 당연히 표준언어가 필요하죠. 그게 영어 입니다. 중국이 향후 미국과 대등한 위치로 가게 된다고 하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대학에 갈겁니다.





중국의 대학들이 영어로 수업을 하게 될까요? 하기는 하겠지만 카이스트 처럼 영어로만 해라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서양인들이 중국어를 배울려고 하겠죠. 상품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는 앞으로는 중국의 시대이니 중국어를 배워라고 말을 합니다. 실제로 자식들에게는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떄가 되면 중국어에 영어까지 배워야 할까요? 영어 배우고 중국어 배우면 연구는 언제 하며, 논문은 언제 쓸까요? 언어 배우는 데 시간만 다 보내겠죠. 언어만
배우면 저절로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르나요? 그런 아니죠.





대학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건데요. 이런 점에서 일본은 시사점이 크죠. 2008년
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가 좋은 사례 입니다.  “영어로 된 물리용어는 안다. 그러나 영어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리는 할 수 있다.” 이 말이 핵심입니다. 일본은 영어를 못하지만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이 많죠. 유창한 영어를 연습하고 매끄러운 영어 문장 쓰기를 노력하는 시간에 창의적인 생각과 사고를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지가 아니라 무슨 생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주목을 해야 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인  전 소니컴퓨터언터테인먼트  CEO였던 쿠타라기 켄 을 볼 때 느낀게 있습니다.  쿠타라기 켄은 발표할 때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습니다.





플스3 발표 할 때 지금도 기억나는데요. 특유의 일본식 영어로 '프레이 스테이션 콘트로라'라면서 허접한 발음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발음이 형편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 모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무엇을 발표하는지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유창한 영어야 거지들이나 슬럼가 사람도 하겠죠.  반기문 유엔총장도 영어발음은 좋지 않죠.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 무엇을 말하느냐? 입니다.





아이슈타인 스위스의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에 응시하였으나 낙방을 한 사례는 유명하죠.아이슈타인의 뛰어난 수학 성적을 눈여겨본 학장의 배려로 1년간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나서 결국 연방공과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아이슈타인의 삶을 보면 본인의 뛰어난 능력도 있었지만 운도 좋았습니다.
아이슈타인을 알아본 환경이 있었으니까요. 사람은 능력만 가지고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은 미국식 개인주의
사고가 만연해서 '나는 할 수 있다'라던가 능력만 있으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상이 만연한데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슈타인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어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수학만 좋아하고 언어를 배우기 싫어해다면요.
지식을 연마할 기회와  새로운 기회를 붙잡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제 친구만 하더라도 로봇을 좋아해서 직접 만들기고 했는데 영어는 무지하게 싫어했습니다. 영어로 된 책과 사이트를 즐겨갈 정도 였지만 시험을 위한 영어는 질색을 했죠. 그리고 보니 카이스트에 있던 로봇신동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영어 열풍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한국에서는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구별짓기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명문은 국제적 감각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과 우위에 있기 위함이고 과시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이게 한국에서 부는 영어열풍의 이유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영어를 사랑해서 그러지는 않겠죠.




영어 공용화는 비효율적 입니다.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영어로 강의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영어강의를 하지만요. 차라리 그 시간과 자원을 연구에 투자해서 노벨상이나 새로운 발견을 하는게 경쟁력 강화겠죠. 아니면 창업을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부와 기회를 창출하게 만들던지요. 영어만 배운다고 해서 지식이 저절로 쌓이고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도 않을테고요.




개인의 입장으로 저렇게 빡세게 공부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그 노력으로 의대진학을 하는데 더 낫지 않을까요?  공부량과 노력은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보상은 작죠.  지금 쪼면 조금 성과는 나올지도 모릅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공계 기피는 더 심해지겠죠. 공부할 것도 많은데 영어까지 잘 해야 하니 차라리 진로를 변경하는게 낫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국민들의 영어 교육은 과잉상태라고 봅니다. TV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짐으로써
20조를 낭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영어 사용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에게 모두들 영어를 교육하는 것도 음식을 그냥
버리는 것과 같은 낭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정확히 말하면, 언론이나 정부) 강박적으로 글로벌화, 국제화를 추구합니다. 이 역시 과시와
허세 입니다.  그럴 필요성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국민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사용을 하는게  적당한 겁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게 됩니다. 아주 평범한 진리죠. 영어를 사용하는게 국제화가 아니라 세계들의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 수 있는 게 국제화 입니다.




영어는 그저 도구일 뿐인데 목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단과 목적을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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