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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연설의 진실 : 과거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죽일 수 있다면?

네그나 2015. 10. 29. 10:21

과장된 제스처와 사람을 매혹시키는 연설. 히틀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히틀러가 사망한지도 이미 반 세기가 넘었으나 끊임없이 회자됩니다. [각주:1] 히틀러를 보고 있자면 큰 명성을 얻는 방법은 거대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히틀러는 특이하게도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바이에른군에 입대하여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그 후 독일 총통의 자리에 까지 오릅니다.그가 권력을 잡은 배경에는 1차 대전 전후의 독일의 혼란스러움과 대공황 등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히틀러가 가진 비장의 무기는 대중을 사로잡는 입말, 대중 연설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말재주 재능을 타고난 듯 보입니다. 청소년기 히틀러에게는 아우구스트 쿠비체크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히틀러의 말재주에 경탄을 보냈습니다. 히틀러가 말하는 내용은 잘 몰랐지 그의 말은 진심으로 우러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1차 대전 후 교육계발  부대원으로 복무할 때에는 정열에 찬 강의로 수강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각주:2]



1919년 10월 히틀러가 뮌헨의 맥주홀에서 100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한 첫 번째 연설로 역사는 바뀝니다. 아마도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보잘것 없는 사내가 권력을 잡고 세계사에 큰 회오리를 일으킬지는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겁니다.



<히틀러 연설의 진실> 뭔헨 맥주홀 연설부터 제국 지하 방공호에서 한 최후의 연설까지 가장 많이 쓰인 단어를 찾고 연설의 변화양상을 분석합니다.





대중을 사로잡은 히틀러 연설의 비결




대중을 사로잡았던 만큼 히틀러는 연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1. 히틀러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문자가 아니라 음성을 통해야 한다고 확신


2.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


히틀러는 민중의 압도적 다수가 여성적인 성향과 태도를 보이며 냉정한 숙고보다는 호리려 감정적인 지각으로 자신을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대중은 그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굽히고 들어가서 청하는 것보다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내리며 그들을 지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감성은 현대정치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미 대선에서 엘 고어가 부시에게 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엘 고어 분석을 중시하고 사실과 이성에 호소하는 전략이었지만 부시는 대중에게 감성으로 다가 갔습니다.



3. 요점을 간추려서 반복


대중의 수용능력은 매우 한정적이고 이해력이 낮으며 그 만큼 잘 잊어 버린다. 따라서 가장 단순한 개념을 천 번 반복할 때 대중은 그 개념을 기억할 수 있다.


대중에 대한 이 태도는 현대 미디어도 견지하고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독자와 시청자를 중학생 수준으로 상정하고 만듭니다.개념을 반복 주입한다. 현대 마케팅에서도 아주 흔합니다. 저녁에 홈플러스를 갔는데 매장에서 로고송이 나왔습니다. '홈플러스' 라며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주입합니다.



4. 청중을 반응을 보고 피드백


연설가는 청중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강연을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다. 반면 수신자의 반응에 대응하는 것은 문필가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히틀러는 연설을 할 때, 연설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쓰는 것이 아닌 몇 개의 키워드를 구성하는 정도였습니다. 히틀러의 연설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마이크입니다. 마이크는 대규모 장소에서도 구석구석까지 음성이 도달하게 만들어서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시대가 라디오와 마이크로 대표되는 말의 시대가 아닌 문필의 시대였다면 역사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5. 연설은 타이밍. 이성의 아침보다 감성의 저녁에



히틀러는 시간대에 다른 청중의 반응을 알고 있었습니다. "같은 강연, 같은 연설자,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오전 10시에 하는 연설과 오후 3시에 하는 연설, 저녁에 하는 연설의 효과는 다르다. 히틀러가 오전 10시에 연설을 했을 때 결과는 참담했다. 아침에 청중은 뜨거워지지 않았고 분위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늦은 밤에 쓴 글을 다음 날 보면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를 거는 시간도 밤입니다.(술의 힘을 빌려긴 해겠지만)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인 작업을 해야할 때는 밤에 할 것.



6. 프로파간다로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


귀스타브 르봉은 사물의 본질적인 부분을 전혀 바꾸지 않고 이름만 바꿔도 새로운 무엇인가 생긴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히틀러는 효율적으로 프로파간다를 펼치면 천국을 지옥이라 믿게 만들고, 반대로 지옥을 천국이라 만들 수도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나치당에서는 ‘기업가’를 ‘종업원의 지도자’로, ‘독재’를 ‘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로, ‘전쟁 준비’를 ‘평화 확보’로 바꿔 부르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현대 정치에서 많이 보입니다. '노동의 유연화'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주장이 있지만 넘어가고. 이런 단어를 만들어 쓰는지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해고를 쉽게 하도록 만들겠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중에게 부정적인 인식에 일으키는 것이 아니까. 유연화: 부드럽고 연하게 하다는 뜻으로 단어만 놓고 보면 어떤 부정적인 느낌도 감지할 수 없습니다. 해고의 빈번화 이런식으로 말 안합니다.



정부, 경제단체, 지식인들이 만들어 내는 단어를 처음 들어서 괜찮은 느낌이 든다면 그 의도를 한 번 의심 해봐야 합니다.



히틀러의 연설의 비결의 공통점. 그가 대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보입니다.  어리석은 대중을 강인한 지도자가 나서서 강력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사고입니다.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통제되지 않는 대중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고 대중을 통제해야 한다고 설파하는데 히틀러는 이에 공감했습니다.



바이에른 경찰 보고서에는 히틀러가 연설자로서 탁월한 것 같지 않다고 적었습니다. 히틀러의 연설은 이성적으로 큰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의 연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히틀러가 쓰는 비유는 대중의 이해력에 맞춰 투박했기 때문입니다.




의외의 사실. 히틀러는 연설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파울 데프린트라는 오페라 가수에게 발성법과 제스처를 교정받았습니다. 데프린트의 6개월간의 발성 교육 히틀러는 연설을 더욱 가다듬을 수 있었고

매우 만족했습니다. 히틀러는 연설의 천재로 이미지 메이킹 되었으므로 교정 받는다는 사실은 극비였습니다. 데프린트 역시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일지를 발견하고 역사학자 넘겨줘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 힘을 잃어가는 연설. 마법은 지속되지 않는다.



히틀러하면 연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 사람들의 히틀러의 연설를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다 좋아 했을까?  라디오,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까지 활용한 히틀러의 연설은 효과를 계속 지속시키지 못했습니다.


정권을 잡은 지 1년 반만에 사람들은 싫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가 대중을 더 연구했다면 대중의 한 가지 특징을 알았을 겁니다. 현대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들이 알고 있듯 대중은 실증을 빨리 낸다는 사실입니다. 나치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이미지와 달리 독일 대중 모두가 히틀러에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총통의 연설 청취가 의무화되고, 사람들이 그저 관리대상이 되었을 때 연설에 대한 거부감은 늘어만 갔습니다. 전황이 악화되면서 대중 연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그렇지만 그럴수록 연설수는 줄어만 갔습니다. 아마도 암살에 대한 두려움도 한 몫 했을 겁니다. 권력을 잡게한 교묘한 수사도 국민들의 의구심을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연설의 힘이라는 것도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청중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었을 때 효과를 내는 것일 뿐입니다. 그가 입으로 한 마법은 그에게 권력을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12시가 넘어가면 사라지는 신데렐라 마법처럼 잠깐 동안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대중 선동술은 지금도 계속된다.



책에 나온 사례는 과거의 일입니다. 히틀러 연설 술수는 지금도 사용됩니다. 미국 대선후보로 나서려 하는 도널트 트럼프는 막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민자를 적대시하는 태도는 유대인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히틀러의 연설과 근본적으로 다를바 없습니다. 우리대 그들의 이분법은 국내정치에서 아주 잘 보입니다. 



히틀러의 연설 내용도 전략적으로 조절했습니다. 중반 쯤에 유대인 언급 빈도수가 줄어듭니다. 2차 대전 발발 직전에는 대내외적으로 평화적인 제스처를 취함으로서 주변국에 호평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도널드 트럼프의 영리한 포지션취하고 있습니다. 어그로를 끌어서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만약 대선 후보로 출마한다면 태도를 일부분 수정할 겁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안될 듯..)



히틀러 연설의 특징을 보면 한국도 대중 선동술이 잘 먹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강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과 권력에 순종적인 한국 문화와 태도는 대중선동에 효과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히틀러의 연설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50년이나 100년전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인간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과거처럼 광기의 소용돌이 휩쌓이지 않으리란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죽일 수 있었다면, 당신은 선택은?



NYT 매거진에서 트위터에 이런 질문을 올렸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아기 히틀러를 죽일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죽이겠다고 말한 사람은 지금 악행으로 해서라도 더 큰 불행을 미연에 막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제기하는 질문입니다. 여기에는 깔고 있는 전제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죽는다면 불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개인이 바꾼다는 것.



영아기의 히틀러영아기의 히틀러.



죽이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은 미래의 일을 미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거나, 불행을 막자고 작은 악행을 저지를 수 없다는 쪽이겠지만 이런 생각도 있을 겁니다. 설령 히틀러가 죽거나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을 것이다.  저는 이쪽입니다.


히틀러가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그 상황이라면 무슨 일이 반드시 터졌을 겁니다. 물론 지금과는 다소 다른 양상일겁니다. 비극의 크기의 작아질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물론 더 커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소용돌이로 빨려가는 큰 흐름은 막지 못 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 혼돈의 과정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했고, 무대 전면에 등장했을 뿐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1. MBC 서프라이즈의 단골 소재. [본문으로]
  2. 강의를 끝낸 뮐러 교수는 방을 나가려다 어떤 한 남자가 몇 사람에게 둘러싸여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남자는 “기묘하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계속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흥분하고 있었던 것은 이 남자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이 흥분하면 할수록 그에 맞추어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져서 나는 기묘한 인상을 받았다.” 뮐러 교수는 다음 날 즉시 마이어 대위에게 말했다. “자네 부대에 말재주를 휘두르는 천부적인 테너가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일단 활기를 띠면 말이 끊이지 않는 듯하더군.” 그 사람이 히틀러였다. 뮐러 교수의 기억에 따르면 이때 히틀러의 풍모는 “창백하고 여윈 얼굴에 머리를 한 다발 늘어뜨리고 있어서 군인 같아 보이지가 않고 콧수염은 짧았으며 이상스럽게 큼직한 물빛 눈동자는 심상찮은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3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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