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다문화 톨레랑스 : 신뢰부족이 점수화를 낳지 않았을까?

네그나 2015. 9. 19. 10:30

아이를 미국에서 공부시킨 경험을 담은 책입니다. 블로그에서도 미국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한 책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다른 문화권이니 교육방식도 다릅니다.



지금은 시청하지 않는 프로그램이지만 비정상회담에서 미국대표로 출연중인 타일러가 한국과 미국의 교육에 대해서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입니다. 주별로 배우는 내용이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주에서는 진화론을 배우지만 다른주에서는 창조론을 배웁니다.


다문화 톨레랑스


저자도 플로리다에서 생활안 경험이라 다른 주와 차이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특이한 점은 학군이 좋은 백인학교, 학군이 좋지 않은 흑인학교, 이솔다문화 학교등 격어보았다는 겁니다.



바이링구얼(bilingual)은 창피하다?


대학원 수업에서는 석사학생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바이링구얼이라고 하면 좀 창피하죠.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자에게 대학원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바이링구얼이란 말은 정통 백인인 앵글로 미국인이 아니라는 말이잖아. 영어 못하는 유색인종 이민자를 에둘러 표현한거야.


한국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한국에서는 두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학원 광고 문구에 bilingual가 들어갈 정도입니다.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이중언어 구사자를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중언어 구사를 높게 쳐주는 분위기는 아닌거 같습니다. ( 외국어 능통자를 뽑으면서 형편없는 연봉을 제시하는 채용공고를 보면 그렇습니다. ) 이중언어에 대한 우대라기 보단 영어에 대한 우대입니다. 영어 중에서도 미국 영어입니다. 



미국 영어를 영어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재미 있는 사실 중 하나는  미국 영어에 표준어가 없습니다. (이것도 타일러가 강조를 하던 내용 ) 한국인들의 사고는 음식메뉴를 하나로 통일시키듯 단일적이라 다양함이 존재하는 배경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방제 국가와 단일국가, 위에서 부터 표준어를 하나하나 규정하는 나라와  통용되는 언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나라. 위에서 아래로 가는 나라와 아래에서 위로가는 나라. 



표준어가 있는 나라의 사고방식과 없는 나라의 사고방식은 무언가 다를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색으로 보는 빈부격차.  흙수저와 어두운 피부색



유행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회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헬조선은 갈수록 살기가 팍팍해지는 한반도를 지옥에 빗댄 표현입니다. 흙수저는 가난한 부모에서 자라났다는 뜻으로 은수저와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한국에서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심해져 격차사회로 진행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빈부격차가 나기는 하지만 한국은 다들 비슷합니다.  외형만을 보고 차이점을 한 눈에 짐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은 학군별로 학생들의 피부색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백인주거지와 흑인주거지가 나뉘어져 있고 피부의 색의 반영하게 되여 교육 격차가 발생합니다. 물론 백인 거주지는 좋고 흑인 거주지는 떨어집니다. 교육격차는 다시 빈부격차로 이어지고 흙수저는 되물림됩니다. 



저자의 아들이 엄마에게 백인 동생을 낳으라는 황당한 말을 합니다.( 혼혈 아동의 피부색을 다름을 보고 한 말이지만) 아이의 눈에도 피부색으로 인한 차이가 보이는 겁니다. 인종별로 사는 지역이 다르고 흰피부는 더 좋은 교육과 나은 환경을 제공받습니다. 백인은 교사로 흑인은 청소부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노란색 스쿨버스가 누군가에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상징이었습니다. 저도 스쿨버스에 대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 막연한 상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가정은 부모가 직접 차로 데려다 주고 가난한 사람들이 스쿨버스를 이용합니다. 밝은 피부색은 자가 등교, 어두운 피부색은 스쿨버스입니다. 한국에서 수저의 색(?)이 삶을 결정한다면 미국은 피부색이 그들의 미래 상당부분을 결정합니다.



이같은 환경을 두고 이런 말을 합니다.


흔히 백인 위주의 미국 사회에서 한국 아이들이 인종적, 언어적 약점에 당당히 맛서며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겠지만 아들과 조카를 포함해 유학이나 이민을 온 아이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쉽사리 극복하지 못한다.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주의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고 미국 사회에서 적응하면 할수록 더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이책에서 만큼은 우리 아이들이 그런 사회에서 당당히 인종주의를 극복했다고 거짓으로 쓰고 싶지 않다. (p.60)


지배받는 지배자에서 유학생들이 영어로 인한 열등감과 주류사회로 진출을 어려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음을 고백하는 인터뷰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먹는 방식의 차이. 분리와 공유



미국 초등학교에서 규칙에서 미국의 음식문화와 가치가 보입니다. 미국 초등학교 식당 규칙 중 하나는 어떤 음식도 나누어 먹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간식 하나를 먹으려고 하도 혼자서 먹으면 야박하다는 평가를 받기 좋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큰 샌드위치도 나누어 먹어서는 안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음식을 나누어 먹다가 공중위생이 위협받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 첫 번째, 다민족 다인종이 석여 사는 미국인 만큼 상대방의 음식문화를 통해서 타문화의 부정적인 편견을 방지하기 위한 두번째입니다.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나누어 먹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세가와 요헤이(양평이형) 대한록 탐방기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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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에는 큰 그릇에 나오는 요리를 각자 그릇에 나누어 담아 먹지요. 하지만 한국에서 친한 사람들은 그냥 한 그릇에 있는 음식을 같이 먹어요. 그야말로 '한솥밥을 먹는'거죠. 만약 '그건 좀....'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거기에 전혀 위화감이 없었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찌개 하나를 다 함께 먹는데 그것이 우정의 증표이기도 하군요.


중국요리를 먹으러 가도 "네 짬뽕 좀 먹어도 돼?" "볶음밥 맛있다. 먹어봐"라고 하면서 서로 나누어 먹어요. 부정적으로 본다면 남의 음식까지 탐내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거죠. 그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가에 따라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대한 록 탐방기, P.136>



한국인에게 식구(食口) "함께 밥을 먹는 사람" 이라는 단어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음식이외에도 무언가를 나눌려고 합니다. 미국은 회식이 없고 직장은 철저히 일만 하는 공간이라고 하죠. 모두 다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문화가 없습니다. 반면 한국은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듯, 직장에서 업무 뿐만 하니라 하니라 공동체 의식이나, 유대감을 나누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부터 자기 음식을 철저히 가려서 먹는 문화는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며 간섭을 하지 않는 문화가 되었고 서로 나누어 먹으며 동질감을 느끼는 한국의 식문화는 공적과 사적 영역이 겹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한국 수치화, 점수화는 사회적 신뢰 부족 때문이 아닐까?


어느 사회에서는 교육과 공부는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기서도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보입니다. 한국인들은 공부가 시험점수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점수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조카가 하는 말입니다.


미국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하라는 거 그냥 착실하게 따라가고 기본 개념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 같아요. 함정에 빠뜨리려고 일부러 꼬아 내는 문제가 없어요. 한국 시험 문제는 기본 개념을 알아도 실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수도 없이 비슷한 문제를 풀고 또 풀어요. 긴장을 끈을 놓을 수가 없어요. 문제도 꼬여 있고 사람 속도 꼬여 있는거 같아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의 말


보편적인 미국인의 생각은 모르겠어. 백인이 주류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은 다문화, 다인종 국가여서 보편적인 미국인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숫자로만 학생을 평가할 수 없다는 건 내 생각이고, 우리 부모님 생각이고, 내 친구들의 생각이야. 성적은 숫자야.


중국이나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참 숫자를 좋아하는 거 같아. 아마 어떤 대학이 숫자를 대단하게 생각한다면 입학 브로셔에 그렇게 써 놓겠지.





한국의 교육이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특징을 파악하고 해당 시점을 가진 작품명을 외우게 하는 것은 한국의 평가가 신뢰도와 객관성에 많은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는 관직에 인재를 등용하는 방식으로 과거 시험제도를 활용했다.


업무특성과 개인의 업무추진 능력에 알맞게 배치한다기 보다 시험성적으로 요직으로 분배하는 과거제도를 객관적이로 합리적인 제도라고 여겼다. 생각해 보면 시험성적이 높은 사람은 시험 준비를 많이 했거나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일 뿐 관직에 적합하다는 증거로는부족하다. 어쩌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관직에 나아가기 보다 학자가 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런 과거제도가 동북아시아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관직을 얻고 노른자위로 요직을 차지 하기 위해서 돼지 저금통에 한 푼, 두 푼 동전을 채워나가는 은행 저금식 교육방식과 맞아 떨어진다.

점수로 떨어지는 시험문제가 적합하고 토론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지는 셈이다. 시험 출제제와 평가자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출제하여 신뢰도 시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p.116)



점수로 줄세기에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하는게 한국에서 왜 그리도 어려울까?



사회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한국이 저신뢰 사회임을 보여주는게 가족과 친척, 회사 동료와 같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는 대체로 높지만 공무원, 전문가, 교수, 법률가 등 공공 분야 종사자와 특정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습니다.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니 한국에서 제일 중시되는 건 공정성입니다. 문제를 점점 꼬아내고 응시자는 실수를 하지 않는게 최고의 덕목이 됩니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평가하는 방식에 사람들이 신뢰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 경우 공정성, 특혜, 인맥, 배경 시비가 따라 붙습니다.




설령 평가방식을 다양화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기를 요구합니다. 대입은 점수로 줄세우는게 낫다고 말하거나 사법 시험 존치 요구가 그것입니다. 사법시험 존치 요구가 나오는게 무엇을 뜻할까요? 평가는 점수로 평가하는게 제일 낫다는 사고입니다.



사회적 신뢰 부족으로 점수로 평가하면 또 좋은 소리 안 합니다. 왜 우리는 아이폰을 같은 걸 못 만들까 한탄할 때 이런식으로 말합니다. "사람을 점수로만 평가를 하니까 모양이지." 그렇다고 줄 세우기를 안하겠다고 하면 평가하는 사회와 사람을 못 믿습니다. 신뢰의 부족은 점수화를 낳습니다.



한국에서 극복되어야 할 가치관이 점수화, 수치화입니다.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양성이 부족한 단일한 한국 사회의 특성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류는 있다. 외국어는 영어다. 표준어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며 그걸 벗어나서는 안된다. ( 쓸려다 말았는데 네이티브 발음과, 노래에서 원키에 대한 집착도 하나만 인정하는 사고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사고가 있어야 하겠지만 쉽지는 않겠지요. 저부터도 '나는 다문화와 나와 다른 사람을 쉽게 포용할 것인가?'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다문화 톨레랑스

저자
조형숙 지음
출판사
나노미디어 | 2015-06-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다문화·다인종 사회 미국의 교육’이라는 스펙트럼으로 대한민국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책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문화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았지만. 제 블로그에 쓴 내용만으로 한국과

이 책은 미국의 교육차이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비교 참 좋아하는 듯) 다문화에서 경험한 차이가 주된 내용입니다. 경험을 쉽게 풀어서 미국 유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어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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