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 김대식을 알게 된 것은 인공지능 때문이었습니다. 구글 같은 IT기업이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놀라운 정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부분적으로, 완벽하게 넘어서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진지하게 논의 해보는 시대입니다.
기계와 경쟁에서 인간을 위한 일자리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질문이 평범한 사람에게 더 와닿기는 합니다. 한 예를 들자면 무인자동차가 대중화 될 미래에 운송업에 종사하겠다는 건 타자치는 일을 일컬었던 '타이피스트'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될겁니다.그렇다고 인간이 자동차 키를 기계에게 완전히 넘겨주지 않겠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는 직업이 대우가 좋을리 없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장래희망에서 운송업을 제외시켜야 합니다.
재미있는건 이런 걱정은 평범한 사람들은 하지 않습니다.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당장 실현되지는 않으니.) 오히려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적은 고소득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제2의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을 사람들을 걱정합니다.
김대식을 글과 사고를 보면 인문학적인 소양이 보입니다. 뇌를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과 나를 알기 위함이니 자연스레 관심이 그리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이지만 뇌과학에 대한 건 많지 않습니다. '인간은 왜 그럴까?' 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보입니다.
여기서 쓴 글도 책과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책을 보고 연상되는 걸 쓴 것일뿐입니다.
■ 생각 수술이 가능하다면 일어날 일은?
인터넷을 개발해 유명해짐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는 인간을 기억을 지우고 복제할 수복원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300억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르파가 왜 이런 기술에 투자를 할까? 방위기술과 무관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전쟁터에서 뇌 손상을 통해 기억상실에 시달리기도 하고 전투현장의 경험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현대 뇌과학은 신경세포와 세포들 사이에 시냅스의 전기적 신호로 만들어진 시공간적 패턴을 통해 기억이 만들어진다고 가정합니다. 신경세포들의 전기적 패턴을 지우거나 방해하면 기억을 지울 수 있고 패턴을 재생하면 기록을 복원하는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기술이 구현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겠죠. 전쟁 경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세월호 침몰이나 자연재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 살인과 강간 같은 범죄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술은 한 방향으로 작용하는게 아니므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억의 삭제와 복원이 된다면 주입도 가능하므로 권력 집단의 통치기술로도 작용할 수 있겠죠. 현대 매스미디어도 일정부분 이런 역할을 하고 있으니. 뉴스라는 건 사실만을 전하지는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누군간의 편집된 관점이 들어가 있으니 대중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려고 합니다. 세뇌와 주입 같은 설정은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소설과 영화에 흔하니 새로울게 없습니다.
문득 생각난 것. 기억의 입출력이 자유롭다면 다른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클리앙'이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랜섬웨어가 유포되어 큰 피해가 일어났습니다. 단순히 웹페이지를 보기만 해도 감염이 된다는 사실과 사진, 문서를 인질로 붙잡고 돈을 요구하는 정교한 기술에 크게 놀랐습니다. 혁신입니다. ( 혁신이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뇌에도 랜섬웨어를 주입할 수 있지 않을까? 기억을 암호화시키고 완전히 풀려면 돈을 요구하는 겁니다. 어린 시절 추억, 연인, 가족을 기억을 인질로 붙잡으면 범죄자들에게 괜찮은 돈벌이가 될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술이 사용되는 시대가 되면 어느 기억이 내가 진짜로 경험했던 일인지 조차도 헷갈리고 정체성이 흔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란 존재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게 아니라 재구성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사실과 얼마나 일치할까요? 친구와 대화 도중에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는 전혀 그런 일을 한 기억이 없는데 친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를 합니다. 그 정도 일이라면 나도 기억할법도 한데 전혀 안납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아주 큰 인상을 받은 일조차 사실과 다르다면 어떨까 케네디 암살 장면과 911테러를 시청한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아주 자세하게 기억합니다. 큰 충격을 준 사건이라 사람들인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 교수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911테러 당시 자신의 상황을 자세하게 서술하도록 했습니다. 몇년이 지난 후, 다시 기억해 보라고 했을 때 결과는 어땟을까? 응답자 상당수는 자신의 기억을 각색했습니다. 911테러 같은 큰 사건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됩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했다고 해서 곧 기억의 정확성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에서는 사무라이 살인 사건을 두고 진술하는 사람들이 말이 제각각 다릅니다. 같은 사건인데 진술이 다를 수 있는가? 하나의 사실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하는 특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범죄 현장의 증언을 너무 믿어서 안되는 이유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비디오 테이프도 하드디스크도 아닙니다. 기억은 항상 재구성됩니다. 내가 기억하는 기억은 몇 퍼센트나 정확할까? 기억의 몇 퍼센트가 오염되고 왜곡 되었을까?
친구의 기억이 옳을까? 내 기억이 옳을까? 여전히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 지워야 할 트라우마와 기억되야 할 트라우마
세월호 사건 1년만에 돌고래호 침몰 사고로 18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반복되는 사고마다 등장하는 단어가 '안전불감증'입니다. 안전불감증은 굉장히 진부한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기업가나 학자들이 남발하는 '혁신'이란 말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것처럼. 이제는 안전불감증의 불감증을 말해야 할 거 같습니다.
세월호에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사람들은 다시 악몽이 되풀이 되겠지요. . 책에서는 유대인 수용소를 경험한 유대계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가 등장합니다. 화학자로 살던 프리모 레비는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을 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치로 이송되었고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나치 수용소 체험을 담은 <이것이 인간인기?>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래였습니다.
수용소에서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 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適者)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기를 기록한 이것이 인간인가? 그곳에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좋은 사람들은 가라 앉아 침묵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비교하기가 그리 적절하지는 않지만 서바이벌 게임쇼인 <지니어스>를 보면 그런생각을 했습니다. 지니어스는 한 회에 한 명이 무조건 탈락하고 배신이 용인되는 쇼입니다. 지니어스 특징이라면 다른 프로그램보다 인간이 가진 이기심을 더욱 자극합니다. 지니어스를 지력 대결로 여기기도 하지만 저는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 본능, 살고자 하는 욕망과 이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한국에서 구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출연자들이 욕을 먹으니까...)
방송이니 그렇지 실제로 데스메치를 적용한다면? 탈락자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버린다고 하면 인간이 가진 이기심이 극한으로 표출되었을 겁니다. 자신있게 나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런 가정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유대인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좋은 사람들은 가라 앉아 버렸다는 증언이 그것입니다. 그곳에서 적자는 이기주의자였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부딪히면 부정하는 예도 있습니다. 저자가 친했던 알베르토는 결국 수용소에 죽게 됩니다. 종전후 가족들을 만나 그 사실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한사코 알베르토가 살아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알베르토는 결코 돌아오지 않았고 프리모 레비는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알베르토 가족앞에 다시 설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생존가능성을 두고 논했지만 사실 다 알고 있었겠죠. 아이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었다는 거. 하지만 가족들은 인정할 수 없었을 겁니다. 주위에서 "당신의 아이는 익사했거나 저체온증으로 이미 죽었습니다.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란 그런거 같습니다. 너무 큰 충격과 절망 앞에서는 거짓된 희망이라도 붙잡아야 바로 설 수 있는거 같습니다. 누군든 그러지 않을까요.그것 조차 없다면 완전히 무너져 버릴테니까.
프리모 레비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우슈비츠의 그 지옥같은 곳에서 살아남았던 사람임에도 생애 내내 이어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뇌는 단 한번의 순간으로 영원한 지배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 그 기억은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아우슈비츠라는 감옥을 벗어났지만 트라우마라는 감옥은 끝까지 따라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극복하는게 중요하겠지요. 슬픔과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겁니다. 하지만 사회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빨리 잊어버립니다. 한국인들의 빠른 망각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되풀이 되는 사고는 계속 기억하기를 요구합니다. 개인은 트라우마를 잊어 버려야 하겠지만 사회는 기억해야 합니다. 집단의 망각된 기억은 같은 일은 반복하게 할 뿐입니다. 반복되는 일에 누군가는 상처받고 다시 트라우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겠죠.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문화 톨레랑스 : 신뢰부족이 점수화를 낳지 않았을까? (4) | 2015.09.19 |
---|---|
지배받는 지배자 : 왜 한국인들이 미국 학위에 목을 매는가? (3) | 2015.08.29 |
빅데이터로 보는 인문학 : 800만권의 책에서 보이는 것은? (0) | 201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