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세상은 합리로 이해할 수 없다

네그나 2020. 10. 3. 11:1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을 많이 들어 봤지만 어떤 영화는 몰랐습니다.  언뜻 봐서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제목입니다.  저처럼 무지한 자는 보고도 모르겠더라고요. 영화가 전개되면서부터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나가지 않습니다. 사이코패스의 살인극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일등공신은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살인마 안톤 쉬거입니다. 하정우도 그랬듯 배우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연쇄살인마만큼 좋은 역할이 없습니다. 무표정하게 기계처럼 벌레 잡듯이 사람을 죽여버립니다. 뚜렷한 동기나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입니다.

 

 

초자연적인 생명체

 

안톤 쉬거를 보면서 연상되는 인물은 터미네이터였습니다. 감정이 내보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여유 있게 걸어와서 유유히 살인을 저지릅니다. 전형적인 살인마 캐릭터입니다. 거의 무적에다 저항할 수 있는 수단도 없습니다. 고통도 느끼지 않고 묵묵히 견딥니다. 초자연적 물체처럼 그가 등장하는 거리나 건물에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있어도 곧 사라집니다. 안톤 쉬 거는 이 세계의 생명체가 아니듯 그려집니다.

 

터미네이터 후속작에서는 터미네이터는 안톤 쉬거처럼 만들어야 했다고 봅니다. 가장 최신작인 ( 그리고 졸작인 ) 다크 페이트까지 동일한 캐릭터를 반복해서 보여줘서 식상함만 줬습니다.

 

 

안톤 쉬거는 대화는 하지만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이 캐릭터의 백미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인장과의 대화입니다. 별 의미 없는 인사를 꼬투리 잡기 시작해서 상대를 압박하는 대화를 하는데 스스로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나는 합리적인데 너는 왜 비합리적이니?'

 

터미네이터는 감정을 배제한 캐리터를 연이어서 만들어서 실패했다고 봅니다. 전 인공지능의 핵심은 논리가 아닌 감정의 탄생이라고 봅니다. 기술의 진보는 기계에게 감정을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갈리게 될 겁니다. 안톤 쉬거도 감정이 없는 듯하죠. 사이코패스답게 지금 마주 보고 있는 상대의 감정이 어떤지는 잘 이해하는 듯 보입니다.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감정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대화도 이끌어서 나가야 합니다.

 

이어지는 살인극을 보며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특히나 안톤 쉬거는 어떻게 될지 점점 궁금해집니다. 이해할 수 없는 제목과 전개처럼 영화도 그렇게 끝이 납니다. '응?  도대체 이게 뭐지?'

 

 

 

합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묘사한 안톤 쉬거

 

안톤 쉬거는 이해할 수 없는 혼돈과 재난을 묘사한 캐릭터라는 설명을 보고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영화 제목의 의미는. 노인을 소외하고 배제시키는 사회를 비판하는 게 아니고 ( 이 영화는 사회 부조리를 묘사는 건가? 생각들 하겠죠?) 노인과 같이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임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세상은 합리로 설명할 수 없고 ( 정확히 말하자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 합리와 이성으로 예측할 수 없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재난인 코로나 19 역시 그렇지 않나요. 누가 이 일을 예상했을까요? 이 바이러스 때문에  나타는 연쇄 파급효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백만 명이 사망할 줄 몰랐을 것이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감염될 줄 예측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 사건으로 나타날 추가적인 파급은 어떻고요.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행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 질지 모릅니다. 아주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불행이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나쁜 결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혜롭고 경험이 많인 노인들도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험 많은 보안관 역시도 무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얼마 전 마트에서 먹고 마실 것 좀 사고 돌아가다 뒤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뒤 돌아보니 큰 매미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뒤집혀 있었습니다. 매미는 뒤집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순간 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매미는 아슬아슬하게 차에 짓밟히는 걸 피했습니다. '이야, 운이 좋은데. 살려줘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이어지는 자동차 뒷바퀴에 깔려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면서 짓 밟힌 매미가 생각이 났습니다.  안톤 쉬 거를 피하려는 모스처럼 필사적인 모습도 그렇고. 운전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살생을 했습니다. 만약 매미의 존재를 알고 측은지심이 있어 피해줄 수 있지만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운전할 때, 어떤 물체를 피하려다 더 큰 사고를 일으키는 사례는 많으니까요.

 

재난을 겪거나 불행한 사건에 연루되면 사들은 '왜?'라고 묻습니다.  이 영화가 그에 대한 대답인 거 같습니다. '그냥이야. 그냥'  연쇄살인마, 범죄, 코로나 같은 질병.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많습니다.

 

이 점도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매미가 스스로 왜 죽었는지 이해 못하듯이 우리들도 다른 이들에게 안톤 쉬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존재 자체 만으로도 그래요. 인간처럼 자원을 소비하고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없습니다. 동족인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언론이나 커뮤티티를 보면 쉽게 접하는 '국익을 위하여' 이는 분명 우리에게나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나쁜 점도 있습니다. 영향력이 강한 미국이나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혼돈과 재난의 반대편 끝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운이 존재할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대박이 나고,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대상과 집단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그 행운을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하려 할 테고 일정 부분은 가능하겠지만, 자연 ( 세상, 신이라고 말해야 하나 )은 말할 겁니다. 그냥이라고.

 

또, 그 행운조차도 씨줄과 날줄처럼 불행과 엮이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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