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았던 동네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일단 내가 기억을 하는 공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주택에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다 주택이지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주택보다는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겠지만.
기억하는 어린 시절 우리 집은 2층 주택이었고 1층은 상가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어머니가 1층에서 옷장사를 하셨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한 장면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머니가 가게로 들어온 손님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손님은 무심히 돌아서 나갔습니다. 손님이야 마음에 드는 옷이 없으면 그냥 나갈 수 있는데, 어린 마음에는 그 장면이 마음에 아팠나 봅니다.
2층에서 1층 계단으로 내려올 때, 난간을 붙잡으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어렴풋이 그때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조적으로 같이 놀던 이웃집 또래 아이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놀아 다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겁이 많았고 지금도 많습니다. 천성 혹은 적성이라고 해야 할까. 생활습관, 직업, 투자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크게 얻으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큰돈은 벌 수 없는 성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로또라도 연속으로 때려 맞지 않는 한.
그 주택은 광안리에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오션뷰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바다에는 가까웠던 거 같습니다. 조망권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없었고 그게 투자가 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광안리에 살고 있었다면 지금 좋았겠지만 세 들어 살던 집이어서 이사를 갔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아파트 생활입니다. 뒤돌아 보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주거 때문에 큰 고생은 안 했던 같습니다.
건축가 황두진이 제안한 무지개떡 건축은. 주상복합으로 저층에는 상가, 중층에는 주거, 고층에는 옥상정원으로 구성된 복합건축 개념입니다. 어릴 때 살았던 그 주택은 일터이자 주거시설이었습니다. 출퇴근하느라 고생하지도 않고 시간도 빼앗기지 않는 황두진이 말하는 직주 통합의 형태. 옛날에는 이런 식의 가게? 집이 참 많았습니다. 슈퍼, 음식점, 미장원 등. 다니던 미용실은 정면에 안방이었습니다. 문하나 열면 일터였죠. 지금은 보기가 어렵습니다. 상가와 주거는 철저하게 분리가 됩니다. 그리고 출퇴근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책은 주상복합의 무지개떡 건축의 답사기입니다. 많은 건축물이 나오며 지금도 주거와 상가의 용도로 이용 중입니다.많은 주상복합 건축을 소개하나. 딱 하나를 꼽아보면 사연 많은 사람 아니 건물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인공은 서울시 서대문구의 충정아파트로 히스토리가 눈길을 끕니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라 할 수 있는 충정아파트는 일본인 도요타 다네요가 설계를 하고 그의 이름을 따라서 도요타 아파트, 풍전 아파트라고 불렸습니다. 풍전이라고 하니까 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이 전국대회에서 최초로 만난 팀명이 풍전 고교였죠. 그냥 생각나서 써 봤습니다. :)
충정아파트가 오래전에 지어진 만큼 다사다난합니다. 1950년에는 인민군 재판소가 설치되어 지하실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격전지였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 이후로는 호텔이 되어서 유엔군이 이용했고, 1975년에는 서울은행 소유가 되면서 이후 소유가 주민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니 서울시가 2015년에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등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생길 테니 주민들의 반대는 당연한 것이겠죠. 역사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건 내 지갑이라.
충정아파트의 황두진 연재 글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21016008
충정아파트는 사진으로만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인상에 남기도 않는 그런 건물입니다. 그 초록색 페인트칠 아래에, 한국의 굴곡진 역사가 남겨져 있을 거라고 누가 알까요? 오다가다 보면 '낡은 건물이네. 부서야 겠네'라고만 생각을 하곘죠.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건물이 말을 안 하고 있어서 그렇지 많은 나이테를 두르고 있을 겁니다. 대만 가오슝에 갔을 때에도 낡디 낡은 집들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극히 한국적,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저거 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짓고 싶었지만 대만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책. 가장 도시적인 삶. 점점 사라져 가는 상가형 아파트에 기록,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건축물에 대한 단순 나열식이라 흥미가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답사의 한계 때문에 ( 서문에서도 저자가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 사례가 서울 위주인 건 아쉽습니다. 부산이라 다른 곳도 다루어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주상복합형 건축이 남겨진 게 없었을 수도 있겠죠. 부실 안전진단이 나오면 건물 부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나라라.
앞으로는 주상복합형 건물이라는 개념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상가, 상점이라는 게 매리트가 사라졌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동네에 빈 상가들이 눈에 띄게 보입니다. 오늘은 목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곳에 '권리금 없음'을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오프라인 경기가 그만큼 어렵구나. 경기 불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삶의 양식과 행동이 변한 게 더 큰 거 같습니다. 사람들이 동네 상가를 이용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대형마트 -> 지하주차장 -> 엘리베이터로 대표되는 현대적 생활방식이 동네 상가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걷지를 않으니까요. 저 중간단계 마저 삭제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당일배송 -> 집. 문열고 집 밖으로 나갈 필요 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도 아마존 효과라고 해서 온라인이 오프라인 상점을 다 죽인다고 합니다. 오프라인의 효과가 과거와 같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상가와 주거가 어우러진 공간을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연예인들이 건물이 샀네 마네 하지만. 보통 사람은 상가투자를 하면 절대 안 될 거라고. 거리에 늘어만 가는 임대 표시를 보고 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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