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 유현준


 

 

 

알쓸신잡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유현준의 저서입니다.  방송에서 보았던 가장 인상 깊은 것 내용이라면. 무겁고 높은 건물과 권력의 상관관계입니다. 권력자들은 위력을 뽐내고 과시하기 위해서 돈이나 권력으로 운동에너지인 노동력을 통해서 위치 에너지로 바꾼다. 피라미드를 1로 보면 만리장성은 2.3, 세계 무역 센터는 7.4, 부르즈 할리파는 3, 롯데타워는 2.6입니다. 알고 있지만 논리가 있고 그럴듯한 해석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 건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공간에 대한 해석을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교양으로 알기도 좋은건 덤입니다. 여태껏 읽었던 건축 교양도서들은 공통점을 꼽아 보자면. 하나 같이 인간 중심을 강조하더군요. 도시와 건축에서 인간이 배제된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1인 가구가 사는 도시

 

 

 

현재,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늘어날 겁니다. 1인 가구는 혼자서 살 게 될 텐데요. 아마 대부분이 원룸이겠죠. 서울의 집값이 비싼 걸 실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원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방을 보니.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싱크대가 있고 왼쪽에는 화장실입니다. 방은 침대 때문인지 그렇게 넓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원룸마저 매우 비쌌다는 사실. 친구의 경제력을 보면 돈을 더 지불하고 더 비싼 집으로 가도 되었지만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도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혼자 사는게 문제라기보다는 고시원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주거환경이 문제이겠죠. 화재가 일어나면 참사가 반복되기도 하고. 1인 가구는 방이 좁아 사람을 초대하기도 어려우니 카페 같은 공용공간이 활성화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좁은 공간에 지내더라도 뉴욕 사람들은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공원과 공원 사이의 거리라고 합니다. 서울은 뉴욕과 비교해서 공원들이 너무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랬던 거 같기는 합니다. 서울에서 있을 때 선유도 공원을 비롯해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걸어서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했습니다. 공원과 공원이 섬처럼 단절되어 있어 보였습니다.

 

 

 

 

 

 

자율운행 자동차가 나온다면 소유의 종말이 일어날까?

 

 

공간을 소비하는데 지불하는 비용이 있습니다. 다들 아는 내용이지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음료를 섭취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카페가 주는 공간과 분위기를 소비하는 겁니다. 경제력에 따라서 지불하는 대상과 가격도 달라집니다. 경제력이 있는 성인이라는 자가주택. 자동차를 가진 직장인은 월 30만 원, 카페는 5,000원, pc방과 편의점은 1,000원 내외. 비용 대비 공간을 빌리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PC방, 카페, 노래방, 모텔 순입니다. 우리는 사적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소년은 편의점과 PC방으로, 대학생은 카페와 모텔로 직장은 차를 구입합니다.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자율운행 자동차가 나온다면 사람들이 더 이상 차를 소유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때가 현실이 되면 필요할 때만 차를 빌려서 쓰면 된다는 예상입니다. 자율운행차가 등장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편하게 빌릴 수 있겠지만 차량 소유의 욕망이 떨어지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동차의 소유는 신분과 경제력이 상징입니다. 공작의 꼬리처럼 이성에게 구애를 할 때 차만큼 좋은게 없어 보이겠죠. 이 보다 공간에 대한 소유 욕망 아닐까요. 차에, 운전석에 앉게 되면 내가 그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율운행차가 등장하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자 하는 욕구는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봐서 소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모르기는 합니다. 차대신 무언가 다른 공간을 소비하는 존재가 나올지도요.

 

 

 

 

 

 

도시를 아름답게 빛내는 건 무엇일까?

 

 

여기서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겁니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랜드마크일 수도,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역사유적일 수도, 부르즈 할리파처럼 초고층 건물일 수도 있습니다. 전 딱 하나라고 봅니다. 우리 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점들. 상점은 소비자와 판매자 혹은 생산자가 물건과 서비스를 교역하는 공간이지만 부가적으로 거리를 아름답게 또는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주위에 상점이 없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성처럼 둘러싼 담장은 주민들에게는 고립되고 안전한 공간일지 몰라도 외부에서 보면 참으로 재미없는 공간입니다. 똑같은 풍경의 담장을 따라 걸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유현준의 말처럼 걷는 게 재미있으려면 걷는 동안 지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루하지 않으려면 새로움을 계속 느껴져야 합니다.

 

 

 

 

 

TV가 여러가지 채널이 있어서 재미있듯이 그보다 채널이 더 많은 유튜브는 더 재미있습니다. 여러 상점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다양한 채널이 있는 TV입니다. 그런데 거리 풍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걷는 걸 배제하는 것으로요. 대형 쇼핑몰의 등장은 그런 변화를 부채질합니다.

 

 

 

 

하나의 출입구가 있는 원스톱 쇼핑몰은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공간입니다. 현대 생활은 걸을 필요가 없는 구조입니다. 아파트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쇼핑몰에 가는 생활. 자동차 위주의 생활양식은 자동차 회사와 유통회사의 이익이 되는 구조입니다. 

 

 

 

 

 

상점은 어디까지 영리 활동을 위한 공간이지만 이득을 주는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족시키야 하기 때문에 상점은 외관, 내부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상점은 저녁이나 야간에도 환한 빛을 비추기 때문에 치안에도 이득이 됩니다. 무엇보다 상점의 존재 의의는 목적성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수시로 이동을 합니다. 이 또한 방범에 유리합니다. 아파트 한쪽에는 상점이 없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공간을 보면 여기는 죽은 거리구나 하는 게 느껴집니다. 죽은 거리는 또 걷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듭니다.

 

 

 

대만 용호탑. 이국적이기는 했지만 단조로운 풍경에 곧 지루해졌다.

 

 

 

대만 여행에 갔을 때, 용호 탑으로 잘 알려진 렌츠탄 풍경구에 갔습니다. 시민들이 이용하는 커다란 연못이 있는 공간인데 사실 곧 지루해졌습니다. 공원 주위에는 변변찮은 상점이 없었거든요. 상점이 없는 주택가는 역시 걷는 재미가 없습니다. 유현준이 유적과 성곽 주변에 상점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은 사람을 제외하면 올 필요가 없는 공간이라고 했는데. 동감했습니다.

 

 

 

그런데 거리에서 상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 공룡 유통기업인 아마존은 '소매업의 종말'을 불러온다는 평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니 점점 밖으로 나가서 물건을 살 일이 없어지고, 매업의 폐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물건 사고 장 보는 게 편해지고 점점 흔한 일이 되어갑니다. 아니 일상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옆집만 하더라도 쿠팡에서 참 많이 사더군요.

 

 

 

 

빈 상가와 늘어나는 임대 표시는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발길이 뜸해짐은 물론이고 그걸 바라보는 사람마저도 불경기임을 체감해 씁쓸함을 느끼게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만 이런가 아니겠죠. 어딜 거나 공실과 임대가 많던데요

 

 

 

상점의 단점이라면 한국의 크고 요란하고 난잡한 한국식 간판들이라고 할까요? 눈에 띄게 목소릴 높여야 하니 다들 크고 요란한 간판을 거는데 미관상으로 참 별로입니다. 누군가 이 현상을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에다가 한국식 간판을 입힌 모습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운치를 깨는 참 보기 싫은 광경입니다. 또 웃긴 게요. 평소에는 이런 모습이 싫다가도 한적한 시골 같은데 가 있으면 도시의 네온사인이 주는 강렬한 자극이 그립습니다. 미관상 단점이 있다 한들 거리에서 상점이 있음으로 해서 장점이 가져다주는 더 많다고 봅니다.

 

 

 

 

서울의 무슨 길, 무슨로, 골목길. 다 뜬 이유가 뭐겠습니까? 결국 상점이죠. 거리를 아름답게, 활기차게, 지저분하게, 시끄럽게, 특색 있게 만드는 건 상점입니다.

 

 

 

 

 

더 좋은 도시를 위한 하나.

 

 

 

 

재미있게도 디지털 경제가 되어 가는 시점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인기입니다. 카페에서 책 읽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참 특이한 바라본 모습이라면 외국인들은 해변에서 햇빛을 쬐면서 독서에 열중하더군요. 한국, 한국인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듭니다. 섣부른 미래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책 읽기, 종이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도시를 위한 유현준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마을 도서관을 만들자.' 대형 도서관이 아닌 작은 도서관을 시내에 여기저기 많이 만드는 겁니다. 시내 곳곳에 작은 마을 도서관을 만들면. 걸어서 쉽게 이동할 수 있기에 자주 가게 될 겁니다. 도서관은 목적성이 있는 공간이기에 사람들의 움직임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마을과 동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전 서점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서점을 지키는 게 고유의 문화의 지키는 듯 말하고, 그걸 받아들여 국회에서는 책통법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참 웃깁니다. 내가 기억하는 서점은 문화 소비와 교양 함량보다는 문제집을 샀던 공간입니다. 아. 물론 문화생활도 하기는 했습니다. 소설책을 사기도 했고, 만화책을 사기도 했고요. 잡지는 많이 샀었습니다. 게임잡지 참 많이 샀었는데요.

 

 

 

쇠락해 가는 서점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과 달리 비디오 가게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영화는 시간을 때우는 좋은 오락이자 예술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으로 비디오 가게를 몰락하자 그들을 지키자고 하던가요? 비디오 가게가 사라지면 문화적 소외가 일어나는 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람직한 도서관인 동래읍성도서관. 북카페가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 있었다.

 

 

 

위 문단과 대치되는  거리에서 상점이 사라지는걸 안타까워하는 감정과 다르기는 합니다. 전 어린 시절 추억이 많았던, 친구들과 놀았고 동생과 놀았던, 학교를 땡땡이치고 갔던 오락실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이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시대의 변화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지는 오락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요.

 

 

 

 

한정된 자원을 서점을 지원하기보다는 공공도서관을 확충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늘리는 게 더 좋은 도시를 만드는 방향이 아닐까요?

반응형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