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거림

스티븐 킹이 말하는 공포장르에서 세 개의 단계

네그나 2019. 6. 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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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 우리는 왜 호러 장르에 열광하는가?를 읽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돈을 내고 공포심을 느끼려 하는지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공포와 불안을 극복한 뒤 쾌감으로 알고 있지만 공포영화 잘 안 보고 위험한 짓 안 한느 저 같은 쫄보에게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잘 안 보지만 그래도 공포게임은 종종 합니다. 근데 요즘은 그래픽이 실사를 방불케 할 만큼 훌륭하고 몰입도가 높은 게임이 많아서 영화만큼 무섭습니다. 때문에 너무 무서운 게임은 안 합니다. 결국 잘 안 한다는 말입니다.

 

스티븐 킹에 따르면, (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정립했든) 세 계의 단계로 존재하고 각 단계는 앞 선 단계보다 정교함이 약간식 떨어집니다.

1. 가장 정교한 감정은 테러 ( Terror ). 이야기 속에서 적나라하게 역겨운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음. 독자의 마음속에서 불려 나오는 기분 나쁜 예감. "조금 늦지 않았다면 문 앞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2. 테러 밑에 놓이는 두려운 감정 호러 ( Horror ). 테러보다 약간 절 정교한 감정. 호러는 마음속에서만 호소하는 감정이 아니고 육체적인 공표 요소를 직접 보여줘 육체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음.

 

EC 코믹스의 전형적인 호러 예. 불륜 관계에 있는 남녀가 얼간이 남편을 차로 납치하고 남자 쪽이 남편을 의 두 눈 사이에 총각을 받는다. 그들은 시체 다리에 시멘트 덩어리를 묶어 난 편을 다리 아래 강물 속으로 던져 버린다.

이 삼주 뒤. 우리의 주인공, 살아 있는 시체가 물고기에게 뜯기고 부패한 모습으로 강물에서 솟아 나온다. 그는 아내와 그녀의 친구를 쫓아 휘청휘청  걷는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대사 한 토막. "나 가고 있는 중이야, 마리. 하지만 천천히 가야 해.... 왜냐하면 내 몸에서 작은 조각들이 자꾸만 떨어져 내리거든..."

스티븐 게 결코 잊지 못하는 대사라고 하는데. 인상적이기는 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공포 괴담이 이런 식이 많죠. 상상력을 자극하는.

 

3. 세 번째는 혐오 단계 (revulsion) : 영화 <에일리언>에서 사람을 가슴을 뚫고 나오는 새끼 괴물 장면이 딱 들어맞는 듯.

 

 

 

 

요점은 맨 위에 테러. 그 밑에 호러. 가장 아래에는 혐오감이라는 메스꺼운 반작용.

 

어린 시절 들었던 공포 괴담. 시체 안치실에 갇힌 사람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체를 먹어 없애 버렸다는 건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어릴 때는 그 이야기가 왜 무섭게 느껴졌는지? 지금 보면 유치한데 말이죠.

 

비가 쏟아지는 폭우를 피하기 위해 외딴 산장에 놀러 간 일행이. 전시되어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본 후 잠들었는데. 다음날 산장에는 창문만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건 테러 겠군요. 마음속 깊이 불려 오는 기분 나쁘고 뒤통수를 맞는 듯한.

 

동양의 공포는 테러에 서양은 고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혐오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동양의 공포는 피가 난무하고 살점이 뜯기는 장면보다는 마음속, 심연 깊은 곳에의 기분 나쁜 감정을 건드리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동양의 공포를 싫어합니다. 동양, 한국인의 정체성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고.

 

공포의 3단계. 테러가 정교한 단계라고 해서 더 우월한 건 아닌 모양입니다. 스티븐 킹은 더 낫다는 구실로 한 가지 편애하는 걸 피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해보니 그렇습니다. 테러가 가장 정교한 감정이라서 해서 주야장천 쓰면 효과가 있을까? 재능 있는 작가나 감독은 각 단계의 감정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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