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제목부터 이상합니다. 서울 인구가 천만이 넘고 해외에서도 꽤 알려진 도시인데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글쓴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도시의 비효율, 비인간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런 저럼 짐작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숙해져서 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마을버스,
거리,울타리, 방, 새집증후군, 아파트, 모델하우스등 서울에 있는 여덟 가지 요소에 관한 고찰입니다. 이것들이 서울의 도시 다움을 방해하는 있다고 풀어놓습니다. '이런식으로 생각할 수 있구나. ' 느겼는데 당연한 현상에 의문을 제기할려면 다른 사고를 해야 합니다. 비교를 하는게
쉬울 수 있습니다.
뉴욕과 서울을 비교를 합니다. ‘또 뉴욕인가?’ '선진국 환경이 좋다는 것은 이제 그만 말 할 때도 되지 않았나?'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뉴욕과 한국의 차이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드라마가
< 섹스 앤 더 시티 >입니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변호사, 큐레이터,
홍보회사 사장, 등 중상류층 이상 전문직 종사자입니다.< 섹스 앤 더 시티 >에서 주인공들이 걷습니다. 우리식 기준으로 보면 브랜드 쇼핑에 탐닉하는 < 된장녀 > 들이지만 아무도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꿈구는 사랑의 조건도 자동차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들이 유혹하는 남자들도 자동차가 없습니다. 드라마가 6년에 걸쳐 방영되는 동안 등장하는 교통수간은 택시와 걷는 것뿐이었습니다. 걸으면서 수다를 즐기고 데이트를 합니다. 쇼핑백을 들고도 줄곧 걷습니다. 뉴욕에 대한 동경과 찬사로 가득찬 섹스 앤 더 시티는 걷는 다는 것이 도시생활의 필수요소이자 중요한 상징, 기쁨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걸어다닌다.
저자는 뉴욕에서는 모두가 걸어다닌다고 말합니다.걷기 좋게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뉴욕에서는 보도에 올라와 있는 자동차가 한 대가 없고 지하도나 육교같은 시설은 볼 수 없습니다. 어떤 곳이든 보행자가 걸어서 혹은 유모차를 밀면서 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걸어서 혹은 유모차를 밀면서 갈 수 있는 곳이 진정한 도시입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걷게 만들까?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아서 일까? 공원이 많아서 일까? 답은 예상과 달리 상점이었습니다. 진정 도시를 걷게 만드는 것은 상점이라고 말함니다. 거리에 빠짐없이 채워진 상점 쇼윈도는 도시 생활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상점의 거리의 활력이자 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이며 보안등이자. 거리의 청결함과 쾌적함을 감시하는 거리의 파수꾼입니다. 보행자들에게 볼거리와 잔재미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거대한 미술관이기도 합니다.
도시에 있는 상점은 진정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세계적 브랜드
화려한 매장에서부터 담배와 신문을 파는 작은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거리에 따라서 늘어진 상점들은 도시 문화의 필수
요소입니다. 또한 거리는 주차장을 갖춘 할인매장과 대결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걷게 되면 나누게 됩니다. 신문을 구입하고 빵가게 주인은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기에 동네빵집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수긍이 갑니다.
누가 도시를 만드는가?
2007년 서울시가 동대문 운동장을 밀어내고 그 곳에 디자인 센터를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동대문 시장 일대가 중국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국제공모를 통해서 설계를 담당할 건축가를 선정했습니다. 저자도 이 계획에 관여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외국인과 한국인이 도시를 보는 차이를 드러냅니다.
외국인 건축가는 동대문 지역의 복잡한 교통 사정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지하주차장을 만드는데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대문 주위에 지하철 노선이 4개나 지나가고 있어서 대중교통이 편리한데 굳이 지하주차장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넉넉한 주차 공간을 만들게 되면 더 많은 승용차를 부르고 다시 교통난을 가중시킬 게 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시는 건축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상인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지하주차장이 필수라고 맞서서면서 결국 주차장을 만드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반해 뉴욕의 메이시스 백화점은 맨하튼의 한 블록을 다 차지하는 거대한 건물이지만 단 한대의 자동차도 주차할 공간이 없다고 합니다. 미국 대부분의 백화점이 마찬가지이며, 특급 호텔에도 주차장이 없는 현실에 익숙한 건축가에게 이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놀랐는데. 백화점에 주차장이 없다고? )
에피소드 한가지 더. 동대문 운동장에 철거를 끝내고 공사가 시작될 무렵. 유물과 성곽이 발견되었습니다. 일제가 운동장을 짓기 위해서 성벽을 허물고 주위에 있는 야산을 뭉개서 평평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이 성벽을 보존하면서
만드는 것이 중요한 지침이었습니다. 건축가는 성벽복원으로 공원이 분리되면 공원 후미진 곳이 우범지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해결책으로 상점 거리를 제안했습니다. 일본 롯폰기처럼 한적하고 외진곳에 명품매장을 몰아넣는다면 상점자체가 보안등이자 파출소 같은 방범 시설이 될 것이며 볼거리가 있는 근사한 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자도 좋은 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무원은 얼굴이 굳어지면서 “상업시설은 안 됩니다. 서울시에서 하는 일에 상업시설이 넣는다면 이권이나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장사나 해먹는다는 오해의 소지가 생겨서 곤란합니다.”
공무원 이런 반응은 당연합니다. 이런 결정을 하면 시민단체의 비난과 오해를 살 우려가 다분합니다. 공무원은 규정에 맞게 일처리를 하는게 중요합니다. 임의로 처리했다가 그 뒤에 따라오는 후유증을 걱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공무원이 후유증을 걱정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대규모 개발이 관에 의해서 주도되는 방식입니다. 정부주도로 이루어지다 보니 특혜. 유착 의혹이 끊임없이 따라다닙니다. 이로 인해 공무원의 사고는 경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들이 져야합니다. 또 그런 시도를 한다고 해서 아주 큰 보상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은 정부주도로 개발하기 때문에 늘 이런 문제가 따라다닙니다. 이것은 개발을 해야 했고 선진국을 따라 잡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가 그대로 이어져서 무엇이든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하면 자신들이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질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기 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설계하고 나머지가 따라오는 식입니다. 정통부 설립이나 ICT 컨트롤 타워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끌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은 차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저자가 뉴요커 흉내를 내보겠다고 서울에서 걷기를 시도했지만 이내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은 걷기가 너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도에 악어처럼 올라와 있는 차입니다. 사람들은 이 악어를 피해서 도로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담배꽁초 하나 버리면 공무원이 단속을 하고 벌금을 물리지만 자동차는 인도에 올라와 버젓이 주차하는데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녹색교통운동에 따르면 서울시보도에는 백미터 당 4대 이상의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고, 이를 면적으로 따지면 서울시 보도의 23.7 퍼센트라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도의 주인공들은 이리저리 피해서 걸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의 거리가 걷는 이를 얼마나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지. 사람들이 별 일이 없어도 차를 타고 다닌다고 말합니다. 왜냐고 물으니.
“걷게 되면 왠지 사람이 초라해져서...”사람들은 초라해지지 않을려고 차를 타고 다니고 그럴 수록 걷는 환경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인도에 악어들은 더 많이 올라오겠죠. 어느 거리를 가던가에 도로변은 햇볕을 쬐고 있는 악어들로 가득합니다.
경례를 사람에게 하는가? 물건에게 하는가?
차에 대한 에피소드. 관공서나 학교 정문에 있는 수위는 자동차에 인사로 거수경례를 합니다. 하지만 걸어오는 노교수에게는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왜 차에만 경례를 할까? 그들은 이렇게 추측합니다. 우리의 가마 문화와 연관이
있지않을까? 중국에서는 아직도 승용차를 가마차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옛날 옛적에 고관대작이나 탈 수 있었던 가마의 상징과 권위가
고스란히 이어받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바로 현대판 가마입니다. 신분상승을 원하는 사람들은 걷기 보다 차를 타고 다닙니다. 차를 타게되면 더 대우받고 소외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걷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돈 벌면 차부터 구합니다.
서울의 도로는 너무 넓거나 좁습니다. 강남대로는 보행신도가 한 번에 건널 수 없을 정도이다. 인도는 텅텅비워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항공사진 작가 얀 베르트랑은 서울은 자동차에 의해서 살해된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걷기란 고행입니다.고행을 하려거든 인도에 가지 말고 서울에서 걷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아파트다. 아파트는 한국이다.
현대 한국의 핵심 키워드는 아파트입니다. 가장 현대적인 주거인 아파트가 서울에서는 한국 도시 최대의 불행이라고 진단합니다. 아파트가 주거라기 보다 재산증식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서 아파트는 자신의 취향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게 됩니다. 시장이라는 괴물은 아파트에게 도시에서 상상할 수 없는 특권을 바랍니다. 모든 세대가 남향일 것을 요구하고, 울창한 자연에
둘러있기를 원하며 방음벽으로 도로와 차단돼 고요한 환경이기를 원합니다. 도시의 문화적,경제적 혜택을 모두 누르면서도 도시의 번잡함은 멀리하겠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건축과 학생들에게 건축설계 과제를 내주면. 첫 시간부터 좌절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그려온 것은 전부 아파트 평면도이기 때문입니다. 좀 다르게 해보라도 주문하지만 학생들은 과제가 끝나가는 동안에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들이 살아본 집은 아파트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자신이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이사한 집도 전부 아파트뿐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에게 주택을 설계하라고 하는 것은 달나라에 집을 설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기본인 것 처럼, 건축 경험이나 공간의 경험은 좋은 설계의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의 아파트는 독창적이지만 창의력을 초기부터 제한합니다.
남향신화 모두가 남쪽을 바라본다.
우리는 농경을 기반으로 5천년을 살아왔습니다. 집안에 기본적으로 해가 잘드는 마당이 필요합니다. 냉난방 시설이 없으므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남향은 자연의 혜택을 누른느 방법입니다. 이 뿌리깊은 낭향 선호는 아파트에서도 위력을 발휘됩니다. 농경사회의 공간구조가 아파트라는 압축적인 현대식 건축에도 녹아들어있습니다.
서울의 중요한 건물은 남향입니다. 청와대, 대법원, 남쪽이 산으로 막혀있는 예술의 전당도 남향입니다. 반면 백악관은 북향입니다.유럽의 성당들은 서향입니다. 도시 건축에서 고려해야 할 조건은 지형, 주변건물들의 상황이나 교통의 흐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게 만드는 방향, 주변녹지 방향등 아주 많습니다. 이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남향만 고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북향이라고 빛이 안 드는 것도 아닙니다. 해가 나는 시간에 집에 거의 머물지 않는 사람들 조차 남향을 외치니다. 영혼없이 한 곳을 바라보며 줄지어 행진하는 좀비를 꼭 닯은 서울의 아파트를 전세대 남향.
( 여기서 감탄. 줄지어 있는 아파트를 보고 좀비로 비유을 했을까?)
아파트 남향 고집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모든 건물을 남쪽으로 배치하게 되면 동간 거리 확보에 문제가 생기고, 남향이라는 조건에 희생되는 것은 외부공간. 건물의 차별성이 없어졌으므로 단지마다 조경에 힘씁니다. 하지만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으므로 비틀거립니다.
아파트의 판상이 늘어져 있어 군대 막사같이 보입니다. 프랑스 여성이 한국아파트를 관찰하고 쓴 < 아파트 공화국 > 이라는 책에 이런 에피스도가 있습니다. 서울 지도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본 동료가 하는 말 '한국의 군대 막사는 규모가 대단하군'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좀비라는 지적은 불쾌할 것입니다. 바람직한 형태는 어디인가? 서울 가로수길에서 가능성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가로수길의 거리는 남향이지만 어느 건물도 남향이 아닙니다. 거리는 하루 종일 빛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건물이 해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집이 비어있는 시간 동안 거리에 햇빛을 양보하는 것일뿌이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하나를 바라보는 한국
아파트를 보면 한국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남향이라는 한 곳을 바라보고 자신의 취향 대신 다른 사람들의 취향에 의존합니다. 판단도 그렇게 합니다. 노스페이스가 유행하면 노스페이스를 입어야 합니다. 한 외국계 임원이 한국인 직원들과 등산을 가서 놀랐다고 하는 칼럼을 보았습니다. 자기 혼자 청바지를 입고 왔고 다른 사람들은 등산복을 차려입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 그들은 등산복을 왜 구입했을까? 정말 자신들이 필요로 해서 구입을 했을까?
노스페이스를 입은 학생들. 모두가 하나를 지향한다.
노스페이스, 뤼이뷔통. DSLR, 아파트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좋아서 사치하는게 아닙니다. 타인의 취향에 맞춰서
사치합니다. 좀 많이 나가면 이건 농경 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말콤 글래드웰은 농경 문화속에서 산 아시아인들의 근면 성실함을 찬양합니다. 아침 일찍 부터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아시아인이라는 것 입니다. 근면성실함 때문에 경제발전도 했습니다. 장점만 있을까? 농경 문화는 집단 협력체제입니다. 혼자서 쌀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협력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튀는 사람은 배척받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쌀농사를 망치면 어떻게 되지?
건축설계 과제를 내놓고 좌절했다고 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고, 모두가 비슷한 교육을 받아왔고, 모두가 비슷한 취향이면서 비슷한 건물인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속에 살면서 창의적으로 사고하라고 주문합니다.'아니,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게 이상것 아닌가? 웃긴 것은 이런 환경속에서도 창의적인 사람이 나옵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안 나온다는 사실보다 나온다는 사실이 더 신기합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 너무 빠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쟁 후 한국이 근대화된지 50년 밖에 안됩니다.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기가 너무 버겁습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속도에 차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로 전근대, 후근대 징후들이 공존합니다. 영문학자 도정일은 한국인은 의식과 태도는 분열되어 있으며, 이를 두 개의 다른
시간대를 가리키는 시계에 비유했습니다.
한국인은 두 개의 다른 시계를 차고 있다. 하나는 전근대에 멈추어진 왕조의 시계이고.다른 하나는 무섭게 내달리는 현대의 시계다. 어떤 떄는 왕조의 시계에 맞춰 행동하고 어떤 때는 현대의 시계에 맞춰 행동한다. 도정일< 대담 > 휴머니스크
두개의 시계가 한국 곳곳에서 보입니다. 정치, 문화, 산업. 공간.
<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는 건축과 공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문화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부터 의문이었지만 읽고 나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닌 이유. 걷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걸어야 도시가 탄생됩니다. 서울이 안고 있는 문제는 도시가 도시답지 않기 때문입니다. 걷는 다는 것은 인간중심이라는 뜻인데 서울은 아직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경험과 지식. 글재주. 유머가 대단합니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면서 공간과 문화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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