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다

네그나 2012. 12. 22. 08:30

빵 하나 훔쳤다는 이유로 19년을 복역한 장발장. 복역을 마치고 사회로  나오지만 받게 되는 것은 냉대뿐입니다.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힌 그는 갈 곳이 없습니다. 여기 저기 떠돌아다다가 만난 미리엘 신부가 따뜻하게 대해주지만  은식기를 훔쳐 달아납니다. 헌병에게 잡혀온 장발장을 보면서 마리엘 신부는 꾸짖기는 커녕, 자신이 선물로 준다고 맞다고 하며 은촛대까지 줍니다. 이 사건 이 후 장발장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장발장에서 마들렌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줄거리는 다 알만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 레미제라블 >이 영화로 개봉되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끊임 없이 회자되는 생명력이 긴 이야기입니다. 뮤지컬로 만들어져 25년 동안 흥행하고 있습니다. 뮤지컬에 큰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장기흥행을 한 다면 그 이유가 있겠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계속 전해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영화 시작부터 거친노동과 함께 자조적인 Look Down 이 흘러 나옵니다. '여기 온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뮤지컬 영화답게 거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흘러나옵니다. 대사는 아주 일부분만 나옵니다. 노래를 스튜디오에서 따로 녹음한 것이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되었습니다. 흥을 북돋아 주거나 긴장을 고조시키는 노래도 있지만 평범한 대사 마저 단조로운 노래로 나와서 지루한 느낌도 줍니다. 뮤지컬 방식이라면 할 말 없지만 2시간 4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자랑하니 보기 전에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화장실에 갔다 오는 게 좋을 겁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판틴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

 

최근에 개봉한 영화 호빗도 2시간 40분인데 상영 시간이 긴 영화는 오래 집중하고 있기 힘듭니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세를 이러 저리 바꾸고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영화 초반은 지루합니다. 뮤지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나갈까?’ 생각도 들겁니다. 실제로도 몇몇은 영화 상영 중간에 나가더군요.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참으면 후에 꽤 볼만해집니다. 혁명의 순간속에서 싹트는 사랑과 이루어 질 수 없는 짝사랑, 장발장에게 끝까지 따라다니는 운명과 같은 절망, 새로운 사회를 꿈구는 혁명 청년들. 극적인 이야기 구조가 다담겨 있습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에포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에포닌


장발장은 휴 잭맨, 자베르의 러셀 크로우가 맡았는데 남자 배우들은 크게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안듭니다. 특히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우는 장발장을 끝까지 쫓아가는 굳은 신념의 사나이라기 보다는 우수에 젖은 사나이 같은 느낌을 줍니다. 상대적으로 여자 배우인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 코제트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괜찮게 보였습니다. 뮤지컬을 보지 않아서 평가하는 힘든데 노래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라이브로 녹음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마리우스
마리우스. 혁명인가? 사랑인가?

 

 

 

 

앤 해서웨이-I Dreamed a Dream

 

 

 

 I Dreamed a Dream

 

 

세상은 7 : 3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인가?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미제라블. 예나 지금이나 비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토머스 맬서스이 쓴 <인구론> 과잉 인구가 낳은 악덕, 빈곤은 사회제도의 개혁으로도 고칠 수 없는 자연 법칙의 결과라고 적었습니다.

 


 

요즘 부쩍드는 생각도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균형은 정말 자연의 법칙인가?  세상의 20% 사람들이 부의 80%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경제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을 따서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파레토의 법칙은 세상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인구는 특정 지역에서 쏠려있습니다. 서울에 인구의 1/4이 몰려있고 부산, 대구, 인천으로 내려가면 작아집니다. 물론 인구 뿐만이 아니라 부유함도 도시,서울에 쏠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방문했는가를 나타낸 조회수별로 웹페이지 순위를 매겨보면 역시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점유율은 80퍼센트를 가깝습니다. 이버, 다음, 네이트 순으로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트래픽이건, 부건, 관심이건 특정 소수에게  몰아줍니다.

 

 

부는 쏠린다.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은 소득, 인구, 웹페이지 등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정한 소수에게 부를 비롯한 권력이 특정한 소수에게 쏠려있습니다. 이 현상이 계속 반복되는 것도 특징입니다. 세계를 놓고 보면 남반구보다 북반구에 부가 쏠려있습니다. 북반구에서도 선진국에 부가 쏠려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동유럽 보다 서유럽에 쏠여있습니다.우리나라를 보면 시골보다 도시에, 도시 중에서 서울에 부가 쏠려있습니다. 다시 서울을 확대 해보면 강남구처럼 잘 사는 구가 있습니다. 강남구에서도 쏠려 있는 동이 있겠고.눈송이를 확대하면 보이는 현상.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가 보입니다.

 


 

파레토의 법칙과 프랙탈 구조를 보다보면 빈부 격차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처럼 느껴지고 마치 운명처럼 보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맬서스가 거부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과거와 현재는 크게 다르지 않구나 느낍니다. 소설이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겠죠. 시대가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과연 미래에는 지금과 다를까?

 


 

왜 그들은 혁명을 꿈꿀까?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레미제라블>에 무엇을 보느냐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겁니다. 구원, 혹은 사랑을 보는 사람도 있을테고 혁명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겠죠. 비참한 세상에서 혁명의 기운이 싹 틉니다. 민중 속에 살며 혁명을 부르 짖는 청년들이 나옵니다. 신기한 현상 중  하나가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 말하는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잘 먹고 잘 살 것은 같은 환경에 놓여진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르크스를 후원한 앵겔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회주의에 심취한 사람들도 부유한 지식인들이 많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진 의문. 이들은 자신에게 커다란 이익이 되지 않음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가?  ‘이봐요. 당신들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어요.’ ‘왜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에 당신의 목숨을 바칩니까?’ ‘당신은 무엇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합니까?’ ‘왜?’

 

 


이와 비슷한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 캐릭터가 있습니다. < 매트릭스 레볼류션 >에서 스미스가 네오에게 묻습니다. ‘대체 너 왜 그러는데?’ 왜 의미없고 부질없는 저항을 계속하는거야?  컴퓨터처럼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설정상으로도 프로그램이지만) 스미스는 인간인 네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매트릭스 레볼루션
의미없는 저항을 하는 이유가 뭐야?

 

 

 

스미스 :


왜 이러는 건가

대체 왜?

이유가 뭐야?

왜 포기 않지?

왜 계속 싸우냐고?

자신까지 희생하며 뭘 지키겠다는 거야?

그게 뭐야? 뭔진 알고 있나?

자유, 진실?

평화 혹은 사랑?

다 환상이고 망상이야.

의미 없는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시키려는 나약한 몸부림이지!

모두 조작된거야, 매트릭스처럼

물론 사랑 놀음은 인간 전유물이지만

이젠 너도 깨달아야 돼

넌 못 이겨

헛수고 하지마


왜, 대체 왜 포기 않나?


네오 : 그게 내 선택이야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당신들은 왜 혁명을 꿈꿉니까? 무엇을 위해서?

 

 

 

혁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매트릭스 레볼루션
시스템은 아주 견고하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함성은 묻힙니다. 민중은 이들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결국 실패합니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에 대한 민중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대부분은 체제에 순응했습니다.혁명가를 꿈꾸고 사고하는 행동하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정치혁명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도전이 그렇습니다. 기존 질서는 견고합니다.바르케이트 너머에 새로운 세상에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순응합니다. 설령 도전을 해본다고한다 하더라도 바르케이트가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것을 알게되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포기하고 순응합니다. 어차피 변하지 않을 세상이라면 적응하는게 합리적인 선택일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지만 대부분이 실패해서 사라집니다. 벤처 기업의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소수는 새로운 역사를 씁니다. 함성이 씨앗을 피우고 꽃이 되기에는 많은 시간일 걸립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야 새로운 질서가 나타납니다. 역사가의 눈에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긴 시간입니다.

 


 

새로운 혁명,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상,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상품,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면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선 투표를 보면서 든 의문 중 하나.  '소수의 의지로 시대에 흐르는 흐름을 얼마나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소수의 몇명, 소수의 집단이 사회의 분위기와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의지와 신념으로 어디까지 변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프랑스혁명을 시도했으나 나폴레옹이 즉위하고 다시 왕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금방 오지 않습니다. 물론 시민들의 삶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혁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명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혁명이라는 단어도 만들어지지 않았겠죠. 혁명은 결국 실패합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자베르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우. 집념보다는 우수가 보인다. 혁명은 결국 실패한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 희망을 노래하는 레미제라블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 레미제라블 >은 지루함만 조금 참으면 볼 만합니다. ‘ 역시 나와 뮤지컬은 맞지가 않나? 그냥 나갈까?’ ‘나는 고급 취향이 아닌가봐 -_-’ 생각했지만 참고 마지막까지 본 보람이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지금 현실과 비교해 보기도 하도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듭니다.

 

영화 < 레미제라블 >은 뮤지컬을 영화로 옮겼다는 점은 좋았지만 영화만의 특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일상적인 대사

마저 노래로 표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뮤지컬 방식이라고 할 말은 없지만 이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집니다.보다 더 영화적인 느낌을 살렸다면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뮤지컬을 모르느 사람이 봐도 볼 만합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제가 보기에 대부분은 < 레미제라블 > 을 재미없다고 평가할 것 같습니다. 대중점수는 7.5~8로 보고. 저는 8.5 점 줍니다. 영화 한 편 값으로 뮤지컬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영화관 아니라면 이런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고 집에서 보기보다 극장에서 보는게 더 나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 다시 깨닫는 사실. 레미제라블 같이 생명력이 긴 이야기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이유는 직접 확인해보세요.

 

 


레미제라블 (2012)

Les Miserables 
8.4
감독
톰 후퍼
출연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정보
드라마, 뮤지컬 | 영국 | 158 분 | 2012-12-18
글쓴이 평점  

 

 

< 레미제라블>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노래합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도 버리지 않습니다. 장발장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때 미리엘 신부가 손을 내밀어주고, 다시 장발장은 코제트에게 손을 내밀어 줍니다. 투철한 신념과 의지 하나로 살아왔던 자베트마저 장발장이 내민 손에 자아가 붕괴됩니다. 혁명이 실패하고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더 이상 희망을 노래할 수 없는 순간 다시 한 번 희망의 노래가 펼쳐집니다.

 

 

<  Valjean's Death & Finale >


 

절망적인 상황 속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이것이 인간을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있게 만든 원동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올 수 도  있는 희망, 내일은 오늘 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거죠. 그 근거도 없고 말도 안되는 감정이 인간을 이토록 오랫 동안 살 수 있도록 만들었을겁니다.

 

 

 

레미제라블에 대해서는 다음글이 아주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code=89755&nid=2775216 영화를 보기 전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이야기의 힘은 대단합니다.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프랑스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알 수 있죠.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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