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판옵티콘과 역판옵티콘, 우리는 거울을 들어서 서로를 비춘다.

네그나 2011. 11. 25. 00:00



면접관이 면접 당하는 'SNS'세상


그 동안 구직자들은 입사 지원하는 회사에 약자의 입장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면접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참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등장은 힘의 균형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동안 회사밖을 나가거면 지원자가는 회사의 고객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걸 체감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불만이 있어도 어쩔꺼야 했겠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의 빠른 확산은 상황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는 풍경을 기이하게 만듭니다. 소셜네크워크에 올린 글을 회사의 인사담당자들이 뒤지면서
지원자를 평가합니다. 잘 포장된 자기소개서 보다 소셜네트워크에 있는 내용이 지원자를 파악하기 쉽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개인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방어책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을 지우거나 과거의 글을 없애버리는 일을 다른 기업에게 의뢰해서 자신을 숨깁니다. 면접을 보고 난 후 소감과 면접관, 회사에 대한 후기를 트워터,까페,블로그, 페이스북에 올리고 공유합니다. 면접관이 지원자를 심사하기도 하지만 지원자가 면접관을 심사하기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기묘한 광경입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크워크는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일방적으로 감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자신도 감시받아야 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누가 누구를 평가하는가?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같은 인기오디션을 보면 지원자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심사위원이 평가를 합니다. 마치 구직과정에서 면접관과 지원자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이 세계에서 권력을 쥔자는 심사워원입니다. 심사위원의 평가에 탈락이냐 아니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언뜻 보면 심사위원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죠. 심사위원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입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평가를 하느냐?' '왜 다른 지원자와 평가가 다르냐' '이건 독선적인 심사가 아니냐?' '이 심사위원은 공정하군.' '저 심사위원은 편파적이다. 자격이 없어 보인다.' 는 식으로 심사위원을 평가해서 점수를 줍니다.
심사위원이 점수를 주는 순간, 시청자도 점수를 줍니다.




시청자들의 평가는 피드백해서 심사위원에게 어떤식으로든지 영향을 줄 겁니다. 뉴스 기사의 댓글을 보던지 아니면 측근이나 관계자들에게 평가를 듣겠죠. 심사위원들은 지원자를 평가하고, 심사위원들은 시청자가 평가합니다.  면접관의 자세를 지적하는 구직자처럼 시청자들도 심사위원 태도를 지적합니다.



심사위원들이 일방적으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처지가 아닌거죠. MBC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초기에 생겨났을 때,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가수들을, 노래를 줄을 세우느냐?' 는 비판이었습니다. 그 비판들은 타당한데
적용이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사람들 입니다.



이들은 오디션 지원자들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를 했습니다. (그것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하던지 아니면 편집때문에 그렇든지, 소신 때문이든) 이유는 바로 서바이벌 이라는 프로그램이라는 때문이었습니다.




평가받는 관계를 역전시킨 나는 가수다




그것을 나는 가수다에서는 역전시켜 버렸습니다. 가수들을 올려놓고 대중들에게 평가를 매깁니다. 대중들의 칼 같은 평가에 1등 부터 7등까지 순위를 매깁니다.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를 보고 난 후 '음정이 불안하다' '가사가 틀렸다' '예전만큼 실력이 안나온다'는 식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들이 오디션 지원자들에게 가혹한 평가를 했던 것처럼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를 했던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에 나갈수 있을까요? 못 나갈겁니다. 자신이 했던 만큼 대중들에게 당할 테니까요. ( 대중들에게 평가받기 싫은 가수는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안나갔으면 합니다. 평가 받기 싫으면 남을 평가하지 말아야하죠.)



오디션 프로그램은 서로가 서로를 평가합니다. 지원자를 심사위원이, 심사위원을 시청자가 평가하죠.



판 옵티콘의 세계에서 역판옵티콘, 시놉티콘의 세계로 나아가다.




< 판옵티콘> 이란 유명한 단어가 있습니다. 판옵티콘이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합니다.판옵티콘의 구조는 독특해서 감시하는 사람은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반면, 감시당하는
사람은 감시하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저기 있는 것을 짐작만 할 뿐입니다.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청사진, (1791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정보기술이 판옵티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폐쇄 카메라, 신용카드와 같은 전자 결재나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정보의 수집과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한 모든 자료가
저장되는 데이터베이스가 마치 판옵티콘이 죄수들을 감시하고, 출산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도구로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판옵티콘은 정보기술로 구축된 감시체계의 결정판이라는 겁니다.



파놉티콘이 적용된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의 내부(쿠바)
정보기술의 발전은 사회를 판옵티콘과 같은 구조를 만들었다.





권력은 기업과 국가로 넘어가는 듯 했지만 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개인들도 감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은 마치  천개의 눈 과 천리안 처럼 사용됩니다. 감시당하던 사람이 감시를 하는 것을 역판티콘(Reverse panopticon) 이라고 합니다. 이제 소수의 감시자와 다수의 피감시자간의 경계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황이 조성된다.이러한 구조를 시놉티콘(Synopticon)이라고 합니다.





이제 인터넷은 판옵티콘과 역판옵티콘, 시놉티콘의 복합적인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형태죠. 우리는 늘 거울을 보면서 상대방과 자신을 비추게 볼 수 있게 버렸습니다. 이곳에서는 감시가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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