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프로젝트의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감상했습니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나, 출시 초기 엉망진창 퀄리티로 나온 게임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꽤나 호평입니다. 게임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전체적인 평은 수작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애니에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배척을 하는 건 아닌데 그렇게 되더군요. 엣지러너는 성인이 봐도 괜찮은 애니입니다. 표현 수위조차 성인물이기는 합니다. 엣지 러너가 특별한 건 없습니다. 스토리 전개도 다르지 않고요. 일본식 만화 전개를 따르는 구조이고, 일본이 정말 좋아하는 소재인듯한 제어할 수 없는 폭주. 사이버 사이코가 등장하고요. 주인공은 지키려고(마모루😃) 합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흡입력 있게 풀어냈습니다.
평가 기준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의 시선을 계속 붙잡아 둘 것'입니다. 극장이 아닌 집에서는 나의 감상을 방해하는 존재들이 많습니다. 타인의 전화 같은 외부 조건. 지루함으로 흥미를 곧 잃어버리게 만드는 소재 그냥 꺼버리게 만듭니다. 엣지러너는 그 모든 걸 뚫고서 끝까지 감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작진의 의도가 저에게 잘 전달되었습니다. 넷플릭스 작품 중에는 오징어 게임, 수리남 정도가 있네요. 흠잡을 게 없는 명작이라고 평할 수 없지만 끝날 때까지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평가를 내립니다.
유명하다는 사이버 펑크 세계관은 잘 모르지만 여하튼 굉장히 암울합니다. 이 세계의 나이트 시티라는 공간은 꿈과 희망이라는 게 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극심한 빈부격차, 사람의 생명조차 계약 조건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지는 모든 게 상품화된 세계입니다. 가장 놀라운 건 죽음이라는 게 일상에 스며들어 있어 그게 놀랄 일이 아닌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터져나가도 저 사건이 뉴스가 될까? 의문이 듭니다.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건 주인공 데이비드뿐만이 아니고, 멤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이 비명횡사를 하더라도 올 것이 왔다는 태도입니다. '나도 곧 저렇게 되겠지.' 체념적인 모습마저 보인달까? 그렇기에 '어떻게 죽음으로 기억에 남고자 하는지'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끝내주는 엣지러너였지' 라면 계속 존재할 수 있으니까?
나이트 시티는 죄악의 도시 같습니다. 시작부터 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데, 강렬한 폭력과 성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넷플릭스가 좋은 점이 과감한 표현이 가능해서가 아닐까요. 전에도 쓴 적 있지만 담배 피우는 모습을 모자이크 하는 행태도 굉장히 싫어합니다. 유럽의 명화 테러한다는 집단처럼 작품을 망치는 것처럼 보여서요.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특별하다고 되니 이는 데이비드이지만. 그가 딛고 있는 대지는 말이죠. 죄악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트 시티에 선한 자가 있을까? 아들 데이비드를 향한 애틋함이 보이는 엄마도. 자식 교육을 위해서 불법적인 일에 가담을 합니다.
총에 손에 쥐기조차 꺼려했던 데이비드는 역시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일상화를 받아들입니다. 겁도 없이 까불어 대는 신참의 죽음도 자극을 일으키지 않고요. 기계화되어가면서 인간성을 잃어가지만 조그만 불빛이 있다면. 자신과 비슷한 아들이 있는 평범한 어머니를 죽인 일입니다. 데이비드도 죄악에 물들었고 벗아날 수 없습니다. 선하게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니,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도 배신하는 것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나이트 시티에서 누구도 믿지 말라는 키위 말은 스스로가 증명을 합니다.
중간에 데이비드와 루시가 나이트 시티에서 나와 사막 같은 공간으로 가는데, 루시가 나이트 시트를 보면서 말을 하죠. 빛의 감옥 같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빛의 지옥 아닐까요? 아귀들이 끊임없인 다투는 빛의 공간. 반면에 수많은 별을 감상하는 사막이나 특별한 데이트를 하는 달은 빛보다는 어둠입니다. 물론 빛도 있기는 하지만 어둠이 더 커 보입니다. 어둠이 조금 더 편안하게 보이는 공간입니다. 루시는 빛을 벗어나 어둠으로 가려고 합니다.
엣지러너가 해피엔딩이 될 거라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미친 세계에서 행복을 남겨두지 않았겠지만 거의 다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암울한 세계에 맞게 결국 파국으로 향하는 내용입니다. 메인도 그렇고 데이비드도 보고 있자면 이카로스가 생각이 납니다. 높게 날기 위해서 태양에 다가가다 결국 추락했다는 그 사람 말입니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태워질 거라는 걸 알면서 높이 날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바람대로 아라카라 꼭대기에 올라가고 루시도 구하고, 그 대가로 추락을 합니다. 불나방 같은 삶을 살았지만 루시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그 기간 동안은 그에게 삶의 최고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오글거리게 표현을 하자면 너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였다.
엣지러너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 건 캐릭터입니다. 아직 게임을 해보지 않았지만 전 게임보다는 애니 캐릭터 더가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루시는 보면. 왠지 모르겠어요.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나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이 났어요. 루시는 잘 뽑은 캐릭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듯 레베카도 애틋함이 있고요. 겉모습은 로리틱해서 별로인데, 내용을 보고 나면 참 애틋함이 남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들도 어디서 본 듯하지만 잘 녹였습니다.
달을 배경으로 한 연출도 좋았고요. 실제로 달에서 지구를 보면 저렇게 크게 나오지는 않지만 초월적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잘 살렸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음악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4VJGNNSQnw&t=247s
Cyberpunk: Edgerunners | I Really Want to Stay At Your House by Rosa Walton | Netflix
애니 시청을 하지 않고 들었다면 '괜찮은 곡이네.'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음악을 듣는 순간. 데이비드와 루시가 했던 일들이 펼쳐져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게임에도 나왔던 곡이라고 하던데, 스토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점 아닐까. 이 음악과 함께 펼 져지는 마지막은 평범한 클리쉐일수도 있지만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일견 루시가 부르는 듯한 곡은 여운을 진하게 남깁니다.
음. 분명히 문명이 진보하고 기술일 발전하면 우리가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애니에서는 의료와 구조행위가 민영화된 야만적인 모습으로 표현이 되고 있지만. 신체를 기계로 바꾸는 일조차 간단하게 만드는 사회라면 그 혜택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갈 겁니다. 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질병, 노화마저도 극복이 될 테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항상 바라보는 건 암울하게 묘사된 디스토피아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 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통해서 현재가 있게 만드는 자극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고통과 불안이 우리를 현재에 있게 하는 걸 지도 모르죠.
엣지러너가 명작은 아니겠지만 오랜만에 아련함이 남는 애니였습니다. 비에 젖는 느낌인데, 그렇게 나쁘지 않은 느낌 같다고 할까. 이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런데 감수성이 풍부했던 10대, 20대에 봤다면 그 느낌이 더 달랐겠구나. 확실히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는 할 수 있다면 많은 자극을 받는 게 좋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데이비드의 인간성처럼 사람의 감수성이 사라지거든요.
오늘 뉴스를 보니까. 영화배우 이성민이 인터뷰를 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예전과 같은 호기심도 감수성이 없다는 겁니다. 예술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인간의 생물학적인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감수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분발해서 더 많은 고양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이든, 음악이든, 애니이든, 게임이든, 미술이든 뭐든 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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