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밀정(★★★☆☆) :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란

네그나 2016. 9. 21. 23:25

추석 연휴에 본 영화는 한국형 좀비사태를 묘사한 부산행과, 1920년대 스파이 영화 < 밀정>입니다. 밀정이란 단어는 요즘에는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블로그를 하게 되면서 하는 행동 하나. 잘 모르는 단어나 나오게 되면 한 번 사전을 찾아본다.


밀정(密偵)

1.어떤 사실을 알아내기 위하여 남몰래 엿보거나 살핌
2.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예상한 대로 의미입니다. 지금은 스파이로 간단하게 퉁 쳐버리니까. 1920년대 일제 강점기를 표현하기에는 적합니다. 1923년, 실제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토대로 당시 의열단에 일어났던 사실들을 엮어 극화한 영화입니다.


스파이는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다루기 좋은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2차대전 부터 시작해서 냉전시대에는 극에 달했고, 우리에게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국정원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저기 북한 수뇌부에에 하나 이상 박아 놓았을겁니다. 물론 북한도 똑같은 일을 할테고. 색출하려고 기를 쓸테고.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송강호 분) 의열단을 뒤를 캐내기 위해서 접근하고, 의열단 리더인 김우진(공유 분)는 이정출을 포섭하기로 계획합니다. 송강호가 주연이라는 점을 비추볼 때 이정출이  그저 친일파로 끝나는 인물이 아닐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 영화 답게 밀정에는 배신하는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열단 통역이었던 이정출은 총독부 경찰로. 이정출과 대립하는 하시모토 역시 조선인에게 일본인이 되었고, 의열단 내부에서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믿음을 저버립니다. 그가 말한 순진한 사람 꼬셔서 폭탄 던져봐야 변하지 않는다는. 현대로 바꾸어 말하면 '너가 짱돌을 던져봐야 이 사회는 바뀌지 않아' 정도 될까요. 믿음을 일관되게 지키기 쉽지 않은 혼한스러운 시대입니다.


밀정 이정출 송강호

이정출이 조직을 배신하고 의열단에 마지못해 협력하게 되는 시점이 흥미롭습니다.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임에도 일본 정부에 헌신하는 인물입니다.시작부터 묘사되는 이정출은 위험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상사인 히가시가 조선인 출신 귀화인 하시모토를 총애하기 시작하자 믿음이 흔들립니다.


정채산(이병헌 분)이 이정출에게 있는 마음의 빛을 이용해서 포섭하고자 하는데. 총독부 내의 갈등이 있지 않았더라면 이정출이 응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정출은 포섭하기 위해서 김우진은 이유없이 잘 해주기 시작합니다.


이 점은 현대에도 비슷합니다. 스폰서 검사 사건을 보여주듯. 힘을 가진 자를 포섭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 해줄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직위와 권력이 있다면 잘 해줄 이유가 있습니다. 반대로 나에게 불필요한 호의를 제공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된다는 의미도 됩니다. 마음의 빚을 지지 않는게 최고입니다.


밀정은 스파이 영화로 보기에는 긴장감이 없고 건조한 편입니다. 극한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선택해야 하는 결정에서 나타나는 감정과 고민을 묘사하는데 주력합니다. 이정출 역시도 시작은 큰 뜻을 품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황속에서 인간적인 번민이 많이 보입니다.


예전에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독립운동가의 인간적인 면을 묘사하려고 하지만 후손들의 반대가 심해서 접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인간입니다.


큰 뜻을 품고 꺽어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도 물론 있었겠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에 괴로웠을 겁니다. 말그대로 그들이 느낀건 헬조선이었겠죠. 인간적인 갈등도 있었을테고, 성욕도 있겠고 청춘남녀들은 연예도 하고 싶었을겁니다.


밀정 한지만연계순은 실제로 대단한 인물


이정출의 시작은 숭고하지 않았을지 모르고 과정도 순탄지 않았지만 그래서 현실적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복합적임을 보여주고 번민속에서 행동도 빛이 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인물의 다면적인 모습을 보려고 시도하는 일은 사회가 다양한 관점을 포용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평전을 보면 그의 뛰어난 능력과 일화뿐만 아니라 치부와 인간적인 결점도 많이 묘사됩니다.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인물이었지만 그 역시도 불완전한 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국내에서라면? 아마 유치한 재벌 영웅 신화를 쓰려고 했을 겁니다. 북에서 완전한 인간 지도자를 묘사하려고 하는 것처럼.



 ■ 밀정에서 돋보이는 싸대기 씬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의열단을 놓친 하시모토가 부하를 벽에 세우고 싸대기를 때리는 씬입니다. 보는 사람이 심하다고 느낄 정도인데 연기지만 굴욕감이 저절로 들 거 같았습니다. 하시모토를 연기한 사람은 처음에는 일본인인가 생각했지만 엄태구라는 신인 배우입니다.


송강호로 대립으로 긴장감을 끌어 올려야 하는 인물입니다.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 되었을 때는 송강호와 연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부담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약간 과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명성이 높은 배우와 기싸움을 하는데 눌리지 않은것만으로 칭찬해 줘야 겠습니다.

밀정 엄태구 하시모토밀정에서 강력한 인상을 주는 하시모토를 연기한 엄태구


엄태구는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하면 악역을 연기 하는게 가장 좋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줍니다. 이중구를 연기한 박성웅도 신세계 하나로 떳으니까요.


이정출이 하시모토의 부하인 하일수(허성태 분)를 싸대기 때리는 장면은 원래 없었지만 허성태가 송강호에게 뺨을 때려달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 싸대기 씬도 결과적으로 아주 괜찮았습니다. 이정출과 하시모토가 대립을 한 상황에서 만만한 부하에게 화풀이 하면서 상황을 바꾸는 장면은 아주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허성태는 송강호에게 뺨을 맞아서 아주 행복했다고 합니다.


주연인 공유는 부산행에서 연기는 아니었다고 느꼈었는데 밀정에서는 분위기에 맞춰주는군요. 공유는 훤칠하고 잘생겨서 영화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청춘 드라마 영화라면 모르겠지만) 완얼이 아무곳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밀정은 영화자체가 아주 재미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물들 간의 대립을 보고 있으니 2시간 반이 후딱 지나가 버립니다. 잘 만들었다고 봐야하겠죠. 점수를 주자면 7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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