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해무의 패착이라면

네그나 2014. 9. 26. 10:00

※ 주의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때 잘나갔지만 감척대상이 되어버린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식 분)은 조선족 밀항사업에 손을 댑니다. 어업 대신 선택한 밀항 사업이 틀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돌발사고로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그들의 운명도 변합니다. 해무는 2001년에 있었던 제7태창호 사건[각주:1]을 근거한 영화입니다.



제작을 맡은 봉준호는 " <해무>는 영화로 만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라고 말했는데 매력적인 소재임은 틀림 없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사건에 마주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변화는 보니 이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킵니다.


해무


한정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심리와 햄동은 평소와 다르다는게 실험으로도 증명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사례는 1971년에 필립 짐바르도 심리학 교수가 실시한 스탠포드 감옥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실험은 인간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실험 대장자 선발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들이었습니다.실험대상자들은 무작위로 교도관와 죄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맡은 역할은 잘 소화했습니다. 교도관을 맡은 사람들은 감옥을 통제하기 위해서 죄수를 학대하는 경향을 보였고 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무기력해져 갔습니다.  보통 사람들을 특정한 사람에 던져놓았을 뿐이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것입니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인 <지니어스>도 비슷한데 참가자들을 이기적으로 만든다는점에서 그렇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글을 참고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 그리고 상황의 힘



해무의 전진호도 감옥실험과 비슷합니다. 밀한 밀항자( 유나의 거리에 칠복이로 출연중인..)가 처우에 항의를 하자 선장인 철주(김윤석)은 "이 배에서는 나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느그들 아부지여!!!" 말하며 무자비하게 응징합니다. 밀항자를 통제하는 선원의 모습에서 죄수를 통제하는 교도관이 연상됩니다.



해무는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제작에 봉준호, 살인의 추억의 각본을 썼던 심상보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김윤석, 문성근, 김상호등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해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사고로 인해 각자의 욕망이 극대화되는 모습은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해무김윤석이 연기한 철주. 아내의 바람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배만 생각하는 생각한다.내가 배가 배가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


해무의 가장 아쉬운 점은 설정입니다. 해경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 밀항자를 어창에 넣지만 동식(박유천 분)이 숨겨주었던 홍매(한예리 분)을 제외한다면 그들은 가스 중독으로 모두 사망합니다. 해무의 결정적인 패착은 여기에 있습니다. 실화처럼 밀항자들을 다 죽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밀항자 몰살 사고 이후에는 선원들의 심리와 행동변화에 초점을 맞추지만 긴장감은 떨어지고 맥이 빠집니다. 사고 이후 선원들의 행동에는 고민과 번뇌가 부족합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지만 그들은 사건의 은폐를 위해 손쉽게 도살자가 되기로 선택합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시체를 소각하고 처리하는 일은 같은 유대인이 맡았습니다. 독일군도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들에게는 술을 무제한으로 공급했습니다. 제 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거죠.



밀항자 몇 명을 살려두고 이야기를 끌어나갔다면 긴장감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살아남은 밀항자들은 초보 밀항 사업자들을 불신 할테고 선원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었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사고가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더 흥미진진하지 했을겁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고민입니다. 원래 계획대로  뭍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영화적인 연출로 영원히 비밀을 지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자만이 비밀을 영원히 지킬 수 있다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입을 막자고 설득합니다. ( 육지로 나가서 그들이 이야기를 떠들면. 협박을 한다면?)  물론 그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아마도 동식과 완호가 반대를 하겠죠.



관장 완호(문성근 분)은 밀항자를 바다에 버린 행동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그는 죄책감에 정신줄을 놓아버립니다. 완호는 비밀을 지킬 수 없다며 선원들에게 자수 하자고 설득하는 설정이 더 나았을겁니다. 도저히 완호를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입막음을 위해 그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합니다.


해무완호(문성근)와 동식(박유천)이 다른 선원과 갈등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제목이 해무. 바다위에 끼는 안개입니다. 해무가 제목으로 사용될 만큼 영화적인 장치로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안개는 다양한 연출이 가능합니다. 안개가 자욱한 공간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곳마저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바꿉니다. 스위스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 어린 시절 경험한 안개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학교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중략)  그런데 문득 자욱한 안개속에서 내가 드러나는 체험을 했다.


모든것은 그 순간에 일어났다. 나는 나 자신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안개속에서) 모든 것이 변했고


나는 나 자신이 된 것이다.



시애틀 안개시애틀 거리에 낀 안개. 안개는 비현실적은 공간으로 변하게 만든다.



안개를 사용한 연출로 호평을 받은 게임이 코나미의 <사일런트 힐>입니다. 사일런트 힐 게임 내에서는 안개가 자욱한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사실 거리를 안개로 가린 연출은 하드웨어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성능으로 인해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임시방편책인 안개로 배경을 가린것입니다. 안개는 공포감과 신비감을 높이는데 일조를 했고 사일런트 힐에서 안개는 트레이트 마크가 되었습니다. 


사일런트 힐안개가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는 게임 사일런트 힐


안개는 일상적인 자아가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가 나오게 만듭니다. 영화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해무가 몰려오자  그들에게서 새로운 자아가 나타납니다. 선장인 철주는 인명 사고가 없었다는 듯 행동하고 경구(유승목 분) 돈만 밝히며 창욱(이희준 분)은 발정난 개처럼 행동합니다.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동식(박유천 분) 밖에 없습니다. 



선원들의 욕망에 충실한 행동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중간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안개를 사용한 연출. 무의식과 자아 표출같은 연출을 기대했는데 그런것도 없습니다. 해무는 그저 배경으로 끝납니다.



밀항, 돈, 성욕, 배 욕망을 가득 실은 배의 이름이 전진호라는 것도 특이합니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 태창호 대신 다른 이름을 써야 했을텐데 왜 하필 전진호 였일까? 각본을 쓸 때 배 이름을 고심하며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려 했을겁니다. 전진은 힘찬 이미지이지만 다르게 보면 파국으로 나아가는 부정적인 묘사도 가능합니다.



배우들은 맡은 역할을 잘 소화했습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징글징긍한 연기는 김윤석외에 생각하기 어렵지만 황해, 화이, 해무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신섬함이 떨어집니다. 물아일체(?)가 되어 허탈한 표정을 짓는 철주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 깊었습니다. 창욱을 연기하는 이희준을 보면서 유나의 거리의 창만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는 창만이 할딱할딱 거리는 연상되어 피식했습니다.

하지만 창욱은 불쌍하게도 결국 못하죠.슬퍼2 손도 한 번 제대로 못 잡아 보고...



해무창욱에게서 창만이 연상되었다. 극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해무에서 놀랐던 것은 동식을 연기한 박유천이었습니다. 아이돌이나 아이돌 출신이 연기하는 걸 반대하지는 않지만 맞는 연기력을 갖추어야 됩니다. 올해 월드컵에서 이영표 축구해설이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다. " 말을 남겼습니다.



해무동식을 연기한 박유천. 의외로 연기를 잘 해서 깜놀


누구라도 배우가 될 수 있지만 영화(특히 상업영화)에 출연 하려면 일정 수준의 연기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화는 증명하는 자리 자리이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경험 하려는 아이돌 출신을 좋지 않게 보는데 박유천이 의외로 잘했습니다. 극에 무리없이 녹아들 정도입니다.



해무 (2014)

Haemoo 
7.2
감독
심성보
출연
김윤석, 박유천, 한예리, 문성근, 김상호
정보
드라마 | 한국 | 111 분 | 201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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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도 좋고 소재도 좋았지만 맥이 빠졌습니다. 해무의 제작비도 100억이나 들여서 부족할게 없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저예산으로 만들기 좋은 내용인데 왜 이렇게 큰 비용이 들어갔는지도 의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해변에서 끝마치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홍매를 만나는 씬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해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잘 만들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해무의 평점은 7점입니다.

  1. 국내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조선족과 중국인 60명중 25명이 질식사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바다에 던저버린 사건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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