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과 PC방 사이에서
세대를 구분하는 경계선 작용할 수 있는게 오락실과 PC방입니다.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으며 추억을 쌓은 세대와 키보드와 마우스를 붙잡고 시간을 보낸 세대는 노인과 청년 정도의 간격은 아니겠지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오락실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사용해 보았을 겁니다. 카세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를 거쳐서 아이패드로 동영상 감상하고,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삐삐. 휴대폰, 스마트폰까지. 국적이 다른 부모의 자식이 이중 언어를 구사하듯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쪽에 발을 디뎠습니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오락실에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기사 링크 "그 많던 오락실·만화방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09년 3877개이던 오락실은 지난해말 450개로 89%(3427개)나 급감했습니다. 오락실을 생태계의 종으로 본다면 멸종 위기종입니다.
오락실의 멸종시킨 원인은 저렴하게 게임과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PC방 등장입니다. 커피 전문점도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거나 잠깐 동안 시간을 때워야 할 때 오락실만큼 좋은 장소 없었습니다. 오락실 게임은 가겹게 즐기기 좋았고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버스 정류소나 지하철 역 부근과 같은 접근하기 쉬운 장소에 위치했고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09년을 기점을 오락실 수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지금은 그 자리를 커피 전문점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고 손 안에 컴퓨터인 스마트폰과 태블렛이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웹서핑과 모바일 게임을 즐기면 그 장소가 바로 PC방과 오락실이 됩니다.
오락실이라는 숲이 사라지니 그와 관련된 문화도 사라졌습니다. 동전교환기를 사용하는 모습, 예약을 위해 동전을 올려놓는 모습, 격투게임에서 중간에 난입해서 상대를 집으로 돌려보는 모습이라던가 초절정 고수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 오락실에 온 걸 들켜서 어머니에게 맞으며 집으로 가는 모습. 오락실을 무대로 삥뜯는 자와 당하는 자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전화를 걸기 위해서 교환에 연결해야 했다는 말을 신기하게 듣듯이 오락실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모를겁니다.
그 많던 핀볼은 어디로 갔을까?
오락실이 사라지는 것도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그 많던 오락실은 어디로 갔나?'는 '그 많던 핀볼은 어디로 갔나'의 문장으로 바꿔도 됩니다.( 핀볼은 미국의 사례입니다. 한국에서는 핀볼이 그리 인기를 끌지 않았습니다.) PC방이 오락실을 퇴출시키고 있는 모습은 비디오 게임 산업이 핀복을 퇴출시킨 사례와 비슷합니다.
비디오 게임 산업이라는 파괴자는 초기에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초기의 오락실 비디오 게임들과 가정용 게임들이 핀볼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조잡하고 단순하고 비쌋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잠재력은 게임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고 매해 마다 엄청나게 개선되었습니다.
1978년 타이토가 만든 스페이스 인베이터(Space Invaders)의 등장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에서는 100엔짜리 동전이 동이 나서 사회 문제가 될 지경이었고 향후 몇 년동안 2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게임의 발전은 가속화 되었고 모든 측면에서 정교함과 혁신이 더 해졌습니다. 밸리와 미드웨어를 포함한 선도적인 핀볼기 제조업체들은 비디오 게임들이 오락실을 접수하는 상황에서도 경쟁 제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핀볼 디자이너 로저 샤프는 1977년에 "비디오 게임은 결코 핀볼을 죽을 수 없을 것이다"고 썼습니다. 1
An electronic pinball machine (Theatre of Magic), released 1995
1922년에 미국인은 핀볼기에 25억 달러를 넣었습니다. 영화관에 지불한 금액의 절밚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핀볼기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장으로 종말을 맞게 됩니다. 1993년에 핀볼기 제조업체등른 130,000대를 팔았지만 1998년에는 15,000대까지 떨어졌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연간 10,000대 미만 밖에 팔리지 않았습니다. 가정용 콘솔 혁신의 불길은 핀볼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고 업체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핀볼은 불과 몇 년만에 파멸을 맞았습니다. 현재 스턴핀볼(Stern Ponball)만이 유일하게 남아 소수의 핀볼기를 생산하며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2
핀볼이 비디오 게임에 잡아먹이는 모습은 반복적으로 보이는 현상입니다. 필름이 디지털 카메라에게 디지털 카메라가 폰카메라에게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변할 때마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패배자는 쓸쓸히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을 붙잡는 사람들
주위를 살펴 보면 오락실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만화방도 사라졌고, 도서대여점도 사라졌고, 사진관도 사라졌습니다. 서점도 이제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철 친구들과 자주 가던 분식점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사 한 토막이 나올 때에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했던 시절을 "그땐 그랬지'라고 회상하거나 '응답하라'와 같은 드마라가 박제된 과거를 꺼낼 때 관심을 보이겠지요.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턴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에 핀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든 베이비 부머들이 핀볼기를 사다가 집 지하실이나 주차장에 설치해두고 오락실에서 핀볼을 하던 시절을 그리워 하며 이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핀볼이 폐허속에서 부활했습니다. 스턴에 따르면 이 부분의 시장은 연간 3,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수단으로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물건 만큼 좋은것 없겠지요.
오락실에 들락거리던 사람이 그 환경을 재현하기도 합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크리스 쿨러러스(Chris Kooluris)는 32,000달러(한화로 3200만원)들여서 자신의 침심을 오락실로 꾸몄습니다. 오락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과 자동판매기,포스터로 방안을 꾸몄습니다. 크리스는 방을 오락실로 꾸민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약혼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 덕후와 살 수는 없어? ) 그는 사랑을 잃은 대가로 추억을 얻었습니다. (좋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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