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설국열차 : 괴물에 의지하고 괴물에 대항하다

네그나 2013. 8. 7. 09:00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최신작 설국열차를 보았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CW-7라는 물질을 살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지구공학 기술의 일종이겠죠. 지구 온난화 문제는 해결 되었다고 말하는 뉴스 앵커의 말이 무색하게 급작스러운 빙하기가 닥칩니다. 대부분은 추위에 쓰러지고, 달리는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인류입니다.



새로운 빙하기, 열차에 탄 사람들만 살아남은 설정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합니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열차에 살고 있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배에 타거나 우주선을 이용하거나 지하에서 산다는 설정이었다면 식상했을겁니다. 열차라는 설정이 흥미로운 것은 그 특징때문입니다. 열차는 한 방향으로 밖에 움직일 수  없고 정해진 궤도를 돌아야 하며 순환합니다. 열차내에 있는 사람도 일직선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열차나 사람에게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따져본다면 말이 안되는 설정입니다. 선로를 보수해야 열차가 원할히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설국 열차 커티스커티스 역의 크리스 에반스. 설국 열차를 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열차내에서는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억압받는 꼬리칸 사람들이 있고 풍요롭고 여유있는 생활을 하는 머리칸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식물칸, 교육칸, 환락칸(이라고 해야겠죠.) 다양한 칸이 보이고 앞으로 갈 수록 화려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열차는 계층 피라미드 구조를 옆으로 세워서 늘어뜨린 모양새입니다.꼬리칸과 머리칸은 계급사회의 은유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억압에 참다 못한 꼬리칸 사람들은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주도하에 폭동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열차 앞으로 전진해 지배자인 월포드(에드 해리스)를 끌어내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열차가 끊임없이 달리 것처럼 이들도 앞으로 전진합니다. 영화의 예고편만 보면 긴박하게 전진하는 장면만 나올것 처럼 보이지만 액션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영화를 가볍게 감상하려 했던 사람이라면 당황할겁니다.


설국 열차 윌리엄작지만 중요한 역의 윌리엄.


설국열차의 아쉬운 점부터 말해보면,  설국 열차의 제작비는 450억, 한국 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를 투입했습니다. 한국최고라고 하지만 헐리우드 기준으로는 저예산입니다. 기차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나 부족해 보입니다. 만화 원작은 천칸이 넘는 설정이라고 하는데 하나의 세계를 묘사하기에는 크기가 작아보입니다. 칸에서 칸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매끄럽지 않고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예산 영화와 같은 느낌이 보입니다.



설국 열차는 영화보다 드라마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열차 내부에서 진행되고 다양한 모습, 사람들을 긴 호흡으로 보여줄 수 있을겁니다. 물론, 이렇게 할려면 제작비가 문제이기는 합니다. 미드 스케일이 아니라면 불가능하겠죠. 남궁민수(송강호)는 의미있는 역할이지만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 보여줄 모습이 없습니다. 송강호는 한국어로 대사를 하는데 대부분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질적인 느낌을 줍니다.


설국 열차 남궁민수 송강호남궁민수역의 송강호.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역할이다.


송강호로서도 남궁민수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송강호는 한국 관객을 배려한 캐스팅으로 보입니다. 한국 영화임에도 자막을 봐야 하는데 익숙한 배우마저 없다면 흥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국 영화의 가장 큰 단점, 인상적인 음악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몇몇 이미지가 남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음악이 없습니다. 설국 열차에 음악이 있어나? 싶을 정도입니다.


설국 열차 메이슨 총리메이슨 총리역의 틸타 스윈튼. 영화를 살린 매력적인 캐릭터



설국열차의 좋은 점. 캐릭터들이 잘 살아있습니다. 설국 열차를 본 사람이라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로 메이슨 총리역할을 한 틸다 스위튼을 꼽을겁니다. 열차내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열차의 지배자인 윌포드(에드 해리스)는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에드 해리스는 그윽하게 눈빛만 쏴줘도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주연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제이미벨, 존 허트도 나름의 역할을 합니다.



영화 설정도 그렇지만 이야기를 직구 스타일로 풀어놓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의미가 있지만 어렵지 않고 적당하게 대중적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좋고 싫음이 갈릴 수 있습니다. '이게 뭐냐?' 말 하는 사람 있는 반면에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설국열차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명작까지는 아니라고 보지만 영화관에서는 충분히 볼만히다고 생각합니다. 설국 열차의 평점은 8점입니다.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글쓴이 평점  



설국 열차 관람객수가 400만을 넘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감상한 뒤 아주 큰 흥행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흥행이 안 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미스터 고가 그렇게 망할줄 몰랐고 설국 열차가 흥행 신기록을 세울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대중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 역시 어렵습니다. 읽어내는 소질이 없다는 사실도 다시 깨닫고요.





아래 부터는 스포일러(누설)가 나오니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건너뛰기 바랍니다.















자연은 야만이고 문명은 질서다



설국 열차를 보면 거대한 동굴이 떠오릅니다. 자연상태에서 추위가 닥치면 어떻게 해야할까? 추위를 피할 동굴이 찿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서 살아있는 동굴, 열차에 의지합니다. 이제 인류의  생존은 열차가 원활하게 작동하느냐 끊임없이 달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영국의 학자 토마스 홉스는 < 리바이어던>을 통해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자유의지가 없는 충동적인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언제라도 더 많이 얻어나기 위해서 투쟁상태로 변합니다. 최악으로 가면,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삶이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입니다. 이것은 혼돈이고 야만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문명을 일으키면 혼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안녕과 평화를 얻기 위해서 인간은 계약을 합니다. 자신들의 모든 권리를 신 리바이어선에게 위임합니다. '리바이어선'이라는 이름은 원래 구약에 나오는 바다 괴물로  토마스 홉스는 국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리바이어선(정부, 지도자)의 귄위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야만에서 벗아나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수입니다.


Leviathan



인간이 혼돈을 벗어나기 위해서 괴물인 리바이어선을 만든 것처럼 열차도 그렇습니다. 동굴 밖, 열차밖은 야만상태입니다. 얼어죽을 수 밖에 없는 혼돈입니다. 반면에 열차 내부는 문명이자 질서입니다. 메이슨이 "모자는 머리에 쓰고, 신발은 발에 신어야 한다." 고 말하는 것처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 복종을 요구받습니다. 아이들과 머리칸 사람들은 윌포드와 엔진을 찬양합니다. 끊임없이 박동하는 심장인 엔진이 그들을 있게 문명상태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괴물로부터 보호를 받아서 야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인간은 괴물에 의지하고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괴물이 추위와 싸워서 안락한 상태를 만들어 주지만 대가도 요구합니다. 영화 초반 머리칸 사람들이 꼬리칸 사람들의 아이들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데리고 갑니다. '저 아이들을 왜 데려갈까?'  후반에 밝혀지는 사실은 아이들은 열차 엔진을 정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엔진 내부가 너무 좁아 덩치가 작은 아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리바이어선. 열차괴물을 먹여살리기 위한 제물처럼 보입니다.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큰 다면? 더 이상 쓸모가 없을테니 아마도 버릴겁니다.




모든 변화는 대가를 요구한다



설국 열차는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특히 주요 등장 인물이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커티스를 따리는 에드가( 제이미 벨)은 언젠가 죽을걸로 예상했습니다. 이런 캐릭터는 죽기가 쉽습니다. 머리칸 경비들과 싸울 때, 에드가가 잡히는 것을 커티스가 목격합니다. 고개를 돌리니 메이슨이 쓰려져 기어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커티스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에드가를 구할까? 메이슨 총리를 잡을까 ? 커티스는 대의를 달성하기 위해서 메이슨 총리를 잡는 선택을 하고 에드가는 결국 죽습니다. 커티스는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릅니다. 길리엄은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혁명은 피를 요구합니다. 머리칸으로 나갈 때 마다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설국열차 에드가에드가 역의 제이미 벨. 죽을 걸로 예상했지만 빠른 퇴장을 할줄은 몰랐다.


윌포드 문앞에서 커티스는 남궁민수에게 고백을 합니다. 배고픔을 달랠길이 없는 꼬리칸에서 식인사태가 일어났고, 자신이 한 아이를 먹기 위해서 붙잡았다. 한 노인이 나와서 자신을 팔을 잘라주어 아이가 살 수 있었다. 윌리엄과의 대화에서  커티스는 팔이 멀쩡한 나는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말이겠죠. 커티스가 엔진 내부에 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결국 팔을 잃습니다. 커티스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대가를치릅니다.



문이 폭발하고 영원히 멈추지 않을것 같았던 열차는 멈춥니다. 살아남은 사람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지만 그 대가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 사람들의 인식의 바꾸는 것 설국 열차에서는 행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합니다. 모든 변화는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고 큰 변화일 수록 큰 대가를 요구합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동굴 밖 세상을 실제로 본 적이 있나?



커티스는 열차의 머리까지 가서 윌포드를 만나려 하지만 정작 낭궁민수는 문을 열지 않습니다. 남궁민수가 열려고 하는건 윌포드가 있는 문이 아니라 기차 밖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영화 내내 큰 비중이 없어 보였던 남궁민수가 마지막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커티스는 윌포드를 끌어 내릴려고만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열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커티스, 윌리엄, 윌포드 모두 같습니다. 이들은  열차안, 시스템 내에서 해결할려고 합니다. 나가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왜 나가지 못할까?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있습니다. 지하 동굴에 있는 죄수들은 쇠사슬에 묶여있어 벽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묶인 죄수들이 볼 수 있는 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입니다. 죄수는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실제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사물의 그림자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열차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보는 것이라곤 창밖의 풍경입니다. 열차가 세계일주를 하는동안 사람들은 얼어붙은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창 밖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바깥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굳힙니다. '열차를 떠나면 안된다.' 하지만 가상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기차내에 가두어 놓고  사람들에게 배경만 바뀌어 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죄수들이 동굴에 비친 그림자만 보는 것처럼 열차안의 사람들은 얼어붙은 풍경만 봅니다.



물론 완전히 거짓은 아닙니다. 형벌로 팔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에스키모 여자를 포함한 7인이 얼어붙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열차 밖은 생명이 없는 얼어붙은 땅에 불과할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추울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라기 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입니다.



낭궁민수만이 열차 밖으로 나가서 창문으로 비쳐지는 풍경이 아닌 실제 땅을 밟을려고 합니다. 남궁민수만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는 괴물의 배를 가를려고 합니다. 이것은 미친짓입니다. 만약 그가 틀렸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겁니다.남궁민수는 관찰을 통해서 근거를 제시합니다. '꺼꾸로 처박힌 비행기에 쌓였던 눈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세계는 변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지만 남궁민수가 무언가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깥세상이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일겁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남궁민수의 생각을 순순히 따르지 않을겁니다.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를 믿는 죄수처럼 ,열차밖은 죽음이라는 공식에 새겨진 사람들에게 이 말은 헛소리로 들렸을겁니다. 기존 시스템을 수호하는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직접 보여주는 수 밖에는.



괴물의 심장은 정지했고 배를 가르고 나왔습니다. 단 두명 만이. 낭궁민수의 딸 요나와 흑인 아이입니다. 말로든 듣던 땅이 아닌 실제 땅을 밟았습니다. 북극곰이 보이는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는 했습니다. ( 대가를 치렀습니다.)



바깥 세상은 지옥과 같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 생명이 없을 줄 알았지만 북극곰이 살아있다는 것. 북극곰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북극곰이 먹을만한 먹이도 살아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굴 밖 세상은 단순히 얼어붙은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추위에서도 생명은 이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살아남았다면 다른 생존자들 있지 않을까? 다른 인간이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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