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러쉬(rush) - 경쟁을 멈추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

네그나 2012. 7. 5. 08:00





러쉬(RUSH - Why You need and Love the Rat Race)- 행복전도사들의 경쟁혐오론에 대한 반박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


 

이 책의 저자가 요가에 관한 에피소드를 말해줍니다. 저자가 친구보다 휠씬 몸이 더 유연하다는 이유로  친구가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심통이 난 이유는 요가를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배우기 시작한 사람보다 잘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사실. 저자는 요가는 아니지만 비슷한 동작을 이미 배웠던 적이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좌선도 남보다 잘해야 하는가?' 뉴욕타임스에 요가에 관한 글이 실렷습니다. 우리가 아는 요가가 아니라 급을 나누는 요가였습니다. 명품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의 타이츠를 입은 남녀가  자시들이 더 유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집어 넣을 수 있는지. 누가 혈압을 더 낮출 수 있는지 등. 요가가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얻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잘하기

위한 경쟁으로 변했습니다. 남들보다 더 잘한데 의의를 찿게 되었습니다.



스트리트 파리터 달심 요가

요가하면 스트리트 파이터의 달심.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서양인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아웃도어 열풍이 불었습니다.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높은 산이라봐야 복한산 정도라고 생각을 하는데.( 저도 북한산 올라가봤는데 별다른 등산장비 없이 청바지로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은 고가의 아웃도어를 구입합니다. 아웃도어 열풍이 왜 일어났을까? 역시 경쟁입니다. 다른 사람이 고가의 아웃도어를 입는 것을 보면 경쟁심을 느낍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 산을 오를텐데, 다른 사람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서 고가의 아웃도어를 구입합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도 역시 경쟁이 되었습니다.





요가에 대한 일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경쟁심과 바쁜 일상은 우리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에덴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사람들




책의 제목인 러쉬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스타크래프트입니다. 스타크래프트는 빠르게 러쉬해서 상대를 제압하는게 핵심입니다. ( 요즘에는 게임을 잘 안하지만 여태까지 워낙 게임을 많이 해왔서 어떻게든 게임으로 연결됩니다. ) rush의 뜻은  '급(속)히 움직이다, (너무 급히) 서두르다' 라는 뜻입니다.




흔히 나오는 행복에 대한 조언은 '경쟁을 하지 말고 내려놓자' 로 요약됩니다. 러쉬 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행복은 내려놓느게 아니라 바쁘게 경쟁을 해서 얻을 수 있다다고 주장합니다. 진보적 사람들이나 행복전도사들이

경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는 윈죄로 자리잡았다고 말합니다. 원죄로 인해서 인간이 에덴에서 쭃겨 낫듯이 자본주의로 인해서 에덴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습니다.  우리가 경쟁심과 성취욕을 밀어낼 수 있다면 고귀하고 평화로운 장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에덴에서는 부족한 것도 없고 뭔가를 얻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업습니다. 저자는 그런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을 에덴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에덴 동산, 루카스 크리나흐






행복을 전도하는 책들은 하나같이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적인 충동을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에서 얽매이지 말고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에덴주의자들은 우리 인간이 '쾌락의 런닝머신'위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신세라고 주장합니다. 경쟁에 속박되어서  우리는 더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판이 박힌

조언은 '씀씀이를 줄이면 된다' 입니다.



저자는 팽팽하게 날이 선 채, 긴장하고 앞 뒤 가리지 않은 경쟁이야 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서 경쟁이 행복을 야기하는 인관관계가 되고 열정이 붙는다고 말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자아를 찾자?




초기인류는 포식자로부터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포식자는 짐승이거나 다른 인간이거나, 눈폭풍.호우.기근이기도 했습니다. 인정사정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려면 다른 인간과 협력을 해야 했습니다. 즉 경쟁이 협력을
낳았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진정한 자아를 찿으라는 말 모두 평화의 낙원과 거리과 먼 얘기들 입니다. 우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음식을 준비해 주는 하인들이 있다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되 된다면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겁니다.



경쟁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1. 인간이 관련되 체제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더 오래 지속하는 체제는 경쟁하는 체제이다.
2. 우리는 결코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설사 에덴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동안 진화한 인간이 그와 같은 낙원에는 더 이상 걸맞기 않기 때문이다.
3. 인간이 쾌락의 런닝머신 위에 올라탄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해주며 일에서의 성공은 보람을 안겨주고, 자신의 유전자를 영속시킬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4.경쟁이 없었다면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지금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통제가 가능할 때 온다.




자전거를 타고 잇는 열살 아이가 엄마를 향해서 이렇게 외친다. "엄마 보세요. 손을 뗏어요." 이 아이는 부모의 도움 없이 자전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이는 손잡이를 잡지 않고 서도 이 알루미늄 괴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기에게 볼 수 있듯이, 인간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태어나지만 곧이어서 통제광이 됩니다. 남은 인생에서 통제권력을 취할지 놓을지를 결정하며 보냅니다.  우리 삶을 통제할 수록 자신감은 더 굳건해집니다. 로또가 왜 인기를 끌까요?

자신이 번호를 선택하면 우리가 게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행복전도사들이 하나같이 범하는 실수는 이런 것입니다. 통제권력이 주는 기쁨을 간과합니다. 통제권력은 초인과 같은 권력이 아니라, 유용성으로서의 권력입니다. 유용성이란 아이가 우유잔을 쏟지 않고 쥐는 법과 신발끈을 묵을 때 배우는 것입니다.



어려서는 세발자전거, 자전거이겠지만 나이를 먹은 후 어른이 돠면 자동차 입니다. 자동차가 통제가 안될때, 그러니까 운전이 미숙할 때는 말을 지독스럽게 안듣는 야생마입니다. 자동차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불안하고 답답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운전이 익숙해지면) 차는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충실한 애마가 됩니다. 차가 강력한 이유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무인자동차가 잘 안먹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손을 놓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차를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번호를 선택하는 로또와 마찬가지죠.




페라리





사람들이 왜 비디오 게임, 온라인 게임을 할까요? 게임이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게임 속 상황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현실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게임속에서는 고수라고 불리면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있고 존중받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이 강력한 이유는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 느낌을 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력을 해서 무언가 성취해야 합니다. 가슴 뿌듯한 자부심은 아무런 성과도 없는 자존감 키우기 훈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성취하는데서 얻습니다. 몇년동안 자존감 키우기 훈련을 받고 자기조력 주문을 외우게 한 외싱턴DC학생들은 자존감 평가나에서는 일등을 했지만,  평범한 수학시험을 치르게 하자 겨우 낙제를 면했습니다. 권력은 자기확신으로만 규정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혼란으로부터 질서를 창출하는데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면 권력을 통해서 행복을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삶이 행복하다는 말하는 사람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사람, 성공한 경영자 역시 성공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운명을 만들 수 있다고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불행한 사람들은 운명이 자신을 통제한다고 믿습니다.





부자들이 왜 더 많이 일하는가? 패리스 힐튼은 왜 뉴스에 오르내리는가?

 

돈이 많은 사람들이 왜 더 많이 일을 할까요? 그들이야 말로 더 많은 휴가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답이
그들은 과시를 하기 위해서 더 맣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풀장이 딸린 별장에서 어슬렁거리는게 더 많은 과시를 하느게 아닐까요? 둘째로 많은 돈을 받는 대신, 고용주를 위해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일하는 이유가 나으리에게 굽시거리기 위해서라면 기업대표와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왜 더 많이 일을 할까요?


왜 부유한 사람들과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일을 할까? 왜냐하면 일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하는데 필요한 자기 제어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성공에 수반되는 심리적 성취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거을 잘 알고 있습니다.



패리스 힐튼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패리스 힐튼이 무슨짓을 하든 관심이 없다.


패리스 힐튼 역시 돈이 많으니까 놀고 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TV에 나오기 위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냥 받을 수 얻습니다. ( 현대사회에서 관심은 아주 값 비싼 자원입니다.)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패리스 힐튼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겁니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 즉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 몰입과 집중을 한다.




심리학자인 미하이 첵센트 마이는 우리가 어떤 이을 하면서 거기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 새기는 정신적 상태를 가리키기 위해서 몰입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놀랍게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집에 있을 때 보다 일터에 있을 때 더 많은 몰입을 경험합니다. 오락실에서 빈둥대거나, 우표나 모형기차 혹은 비디오 게임등의 놀거리를 가지고 노는 일이 오랫동안 해온 평범한 일보다 더 큰 몰입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에데주의자들의 장황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은 많이 하는 것은 탐욕 때문에, 시기 때문에도 아닙니다. 일을 하면

새로운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며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기업인들이 사업을 하게 된 동기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돈은 매우 중요하지만 돈 만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빌게이츠는 세상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가 한 대씩 올려져 있는 것을 보겠다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모든이의 손에 아이폰이 있는 것을 상상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애플에 복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애플에 복귀해서 일은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을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살아있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일은 성취감을 가져다 주고 존재의의를 가져다 줍니다.




저자는 4시간<The 4-hor Workweek>에 열광하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남는 시간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러나 은퇴를 하게 되면 건강을  잘 관리하더라도 인지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나타납니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은퇴 후에도 봉사활동이나 직업을 가지라고,  집에 있지 말고 외부활동을 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즉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경쟁이 신뢰를 낳는다.




논란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경쟁을 들어내면 우리 인간이 서로 믿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천성적으로 남을 믿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뢰는 후천적으로 학습됩니다.




의심할 나위없이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테투리 안에서는 협력합니다. 무기력한 존재로 태어나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가족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아기를 위해서 병뚜껑을 따줘야 한다.  가족안에서는 인간은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나와의 관계가 멀어지면 인간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족과 아닌 사람과 협력할 것인가? 협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호모사피엔스가 같이 떠날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매머드 사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연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와 처음 경쟁을 벌인 존재는 인류에게 쉽게 잡히는 않는 가축 떼 였습니다. 그 다음 경쟁자는 사냥감을 쫓는 다른 부족이었습니다. 인류가 엔덴에서 쫓겨난 뒤, 경쟁을 통해서 서로 다투는 관계가 되기 보다 서로 돕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예로, 미국 원주민들이 버팔로를 사냥하는 법은 이렇습니다. 가장 기운이 좋고 민첩한 젊은이 가운데 한명 뽑아서 버팔로 가죽으로 변장을 시키고, 그 젊은이는 베팔로 떼와 절벽사이로 움직입니다. 그런 다음 원주민들이 버팔로 몰이를 하면 미끼 역할을 한 사람이 절벽으로 뛰는 겁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 미끼 역할을 한 젊은이는 구덩이로 몸을 숨기고 혼비백산한 버팔로는 그대로 떨어집니다.

버팔로



버팔로 유인을 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집단은 위험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잘해주었을 겁니다. 즉 보상을 해주었을 겁니다. 물질적이든 명예든 간에요. 예전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을 기억을 하려면 뇌용량이 커야 합니다. 인류에게는 그런 뇌가 있었고 덕분에 인류는 큰 사회집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뇌용량이 커지고 많은 단백질을 쉽취하려는 식성때문에 인류는 어던 이웃이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눈이 생긴 까닭에 뛰어난 사냥꾼과 무임승차자를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과 교역을 많이 하는 문명일 수록 더 정직하고, 관대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유토피아는 잊어라. 인생에서 좋은 것들은 스테레스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사회를 사는데 분명히 치러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맞벌이 부부는 자들이 적은 보수를 받고 일은 많다고 여깁니다. 바깥세상은 밀림과 같습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헤쳐 나올 떄와는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도로를 경계해야 하고 옆에 있는 동료와 경쟁합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과거의 밀림으로 은둔하는 것이 낭만적인 환상을 자극할 수 있을 지언정 진정한 대안이 될 수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끌어들어 당기는 힘을 가진 명상과 온천욕, 지나친 과세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또 우리뇌와 신체가 살아 있다는 느낌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스트레스와 경쟁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신과의 경쟁이 되었든, 타인과의 경쟁이 되었든 우리는 피곤하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경쟁을 한다고 해서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막무가내의 무한경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가장 좋은 경쟁은 개인적인 목표를 세워서 자신과의 경쟁,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탈리어를 배워서 미켈란젤로 다비드 상을 보기 위해 돈을 모아 피렌체 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는 것은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경쟁입니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인 요기베라가 말했듯이 " 세상이  아무리 완벽하다 한들, 그런 세상은 없을거야" 말했습디다. 우리는 선불교에서 말한 고요가 아닌, 야심만만한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과의 경쟁에서 좋은 점은 승자를 질시할 일이 없다는 것 입니다.





개인적 자신과의 경쟁활동 꼽으라면 블로그를 하는 것입니다.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운영하는데 재미가 있어서 입니다.하지만 블로그를 하는 것은 컨텐츠 생산 활동이라서 귀찮고 성가십니다. 블로그 하기 싫을 때, 언제든지 그만둬도 됩니다. 게다가 블로그 그만 둔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지만 소박한 목표가 있다면 블로그를

오래 해보고 싶습니다. 블로그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경쟁이 되겠죠. 내 안의 내가 '돈도 안되는데 귀찮게 뭐하러 블로그 하냐? 그만해' 라고 말하는 것을 물리치고 해야하니까요. 





블로그를 하다 보면 성취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글을 잘 읽었다고 칭친해주는 댓글에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로 성취해보겠다고 한다면 블로그 한번 해보세요.  힘들지만 보람도 있을 겁니다. 힘든 만큼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러쉬(rush)




우리는 경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경쟁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우파는 경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좌파는 부정적인 시선이  강합니다.

러쉬의 저자인 죽은 토드 부크홀츠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Economist》경제학자입니다. 경제학자이자 우파적인 관점에서 책을 썻습니다.



저자가 원래는 경쟁에 관해서 말할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경쟁이 주는 해로움, 물질주의 대한 비판, 사람들의 지나친 과소비에 대한 비판에 대한 글을 쓰다가 경쟁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을 바뀌 러쉬를 썻습니다. 책 후반부에서라도 경쟁이 가져다 주는 문제점을 소개했다면 좋았을 텐데, 주제의 일관성을 위해서 넣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자는 주장을 요약하면 에덴주의자들 말처럼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경쟁을 내려놓는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경쟁이 성취감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찿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경쟁이 주는 장점이 많습니다. 경쟁을 하지 않게 되면 발전이 없습니다. 시장에서 경쟁이 있기에 변화가 생깁니다.

승자가 영원히 승자로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승자는 되는 이유는 경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패자에게도 기회가 있는 이유, 신분상승이 가능한 이유는 경쟁이 있기 떄문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성토하지만 그 이전에는 어땠나요? 어린아이에게 꿈을 물을 수 없습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한번 농노는 계속 농노고 노비는 계속 노비입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나서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 물론 정지적인 변화 역시 이유입니다.)





경쟁이 주는 장점을 생각하다가 군대가 생각났습니다. 군대에서는 이수지역이라는게 있습니다. 이수지역은 일정 구역 이상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수지역이 있는 이유는 전시상황을 고려한 조치이지만 군부대 주변의 지역경제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을 제한해 놓으니 단점도 생깁니다. 지역상인들이 군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웁니다. 어차피 니들이 여기를 벗어날 수 없잖아.비싸도 사. 라는 태도입니다. 군부대 주변에 바가지에 대한 원성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골목상권에 진출하는 대기업을 비판합니다. 대기업이 소상공인의 골목까지 빼았을 거냐?고 비판합니다. 대기업 마트를 제한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필요성을 일정 부분 동감합니다. 하지만 대기업, 재벌만 탐욕스러운거 아닙니다. 그들만이 이기적인게 아닙니다. 힘이 없다고 탐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한국군 계급장




이수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군인들을 등치는 상인들도 대기업처럼 탐욕스럽고 이기적입니다. 이 문제를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경쟁을 시키는 겁니다. 이수지역을 풀면 됩니다. 실제로 시범적으로 풀어보았더니 지역경제가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다시 청원에 의해서 부활했다고 하지만 한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죠.  경쟁을 시키지 않으면 썩은 물이 된다는 겁니다.





지나친 경쟁에 대한 부작용도 잘 알려져 있고, 특히나 한국, 한국사회는 경쟁과열 입니다. 탐욕과 이기심은 적당히

사용하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서브프라임과 같은 재앙을 부릅니다. 경쟁 역시 마찬가지죠. 지나치면 자기파괴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될 겁니다. 경쟁을 내려놓는다고 행복이 저절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러쉬가 경쟁에 대해서 찬미한다고 하길래 읽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진보적인 책을 주로 많이 읽어보았는데 지금은 한쪽 주장만 듣게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경쟁에 대한 부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보았다면 반대 주장도 들어볼려고 합니다. 다음번에는  승자독식 같은 경쟁이 주는 해악에 대해서 읽어 볼 생각입니다. 경쟁이 어떻게 우리를 이롭게 하는가에 질문에 대한 답을 찿는다면 러쉬를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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