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영화 1987 : 단 한번의 용기가 있을 때가 있겠지. 언제인지 모르지만

네그나 2018. 1. 17. 21:30


어? 조조인데도...


찜해 놓았던 영화 1987을 보고 왔습니다. 이런건 극장에서 한 번 봐줘야 하지 않나 싶어서 나 조조 시간대라서 마음을 놓고 갔습니다. 개봉된지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설마 자리가 없을려구. 예상과 달리 비어있는 좌석이 많지 않았습니다. 좌석수가 적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보려 온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더 늦게 왔으면 한두시간 기다려야 할 뻔..


영화의 완성도는 높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로 시작된 사건을 스릴러나 첩보영화 보는듯 전개해서 영화가 지루한 순간이 없었습니다. (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는 주제가 주는 무거움 때문에 몰입감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스타배우들이 출연한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공안부장 역인 하정우나 거대권력 기관의 상징인 박처장의 김윤식은 '역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1987은 스타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주연이 없고 굳이 주인공을 찾자면 보통사람을 대표하는 연희(김태리)일겁니다. 비중에 상관없이 출연하는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줘서 몰입하기 좋았고, 박처장 부하들이 기억에 남는군요.


영화 1987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



악역도 평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점도 좋았습니다. 박처장의 부하는 태연하게 고문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지만 가족앞에서 약해지고 무기력한 인간이 됩니다. 박처장이 보여주는 광기는 개인사에 얽힌 비극과 복수가 기반이 되었다는 점, 그가 위치가 바뀌어 새로운 비극을 만들어 내고, 그 때문에 오히려 무관심하던 보통사람들이 각성하게 되어 저항에 동참하게 되는 연결고리가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1987김윤식의 역시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단합니다. 거대 권력이 총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는데 그 작은 틈새가 붕괴를 일으켰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시대적 상황이 따라주기도 했습니다. 다음해 있을 예정이었던 88올림픽이 아니었다면 역사는 다른식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이도 아이러니 아닌가요? 분명 위정자들이 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했을 때 그 의도에는 정권의 유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비슷하게 지난 정권에서 많은 반대를 받았음에도 종편을 승인해주었던건 역시 같은 목적이었을 겁니다. 결과를 놓고 보니 정권에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거대 권력도 미래에 일어날 일만큼은 통제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영화 1987



시대를 잘못 만나서 사라져간 청준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저 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영화 마지막 부분은 눈시울이 붉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피를 먹고 자랄 수 밖에 없음을 절감했고. 지금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은 누군가가 피를 흘려가며 쌓은 길이고 그것을 우리를 당연한 듯 알며 살아갑니다.


이 영화가 주는 놀라운 장면은 상영이 끝나고 스탭롤이 올라감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가 주는 무거움에 모두 얼어붙는 모습은 생전 처음 느껴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비슷하게 느낀 무거움이 아니었을까?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무거운 공기.묘한 장면... 앞좌석의 여자 관객은 감정에 복받쳐 서럽게 울고 있었고 옆의 남자친구가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관계된 사람이 있을수 있고 감동 받아서 일수도 있겠지요.


영화를 보러 가기전만 해도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고 해서 좋게 평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나왔던 택시운전사는 별로 였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영화적으로 더 잘만들어야 합니다. 영화 1987는 역사적 사실을 대중영화에 맞도록 잘 만들었습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각색이 되었지만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연했고 대중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고민이 보였습니다.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 모두 잘해주었고 10점 만점에 9점 주면서 칭찬해 주겠습니다.




만약 ~~~~ 이었다면 달랐을까?

슬픔의 무게는 동일하지 않다.


감동은 됐고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1987이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후려치는 평을 보니 같은 영화를 보고 누구든 자기식으로 보는구나 싶습니다.


영화를 보러 가기전부터 생각한 의문. 한 가지 가정이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만약 ~~~이었다면 달라 졌을까? 인데. 그 내용은 박종철의 신분이 달랐다면 이라는 가정입니다.


서울대생이 아닌 다른 학교 학생이었더라도 사건이 동일하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다시 말해 명문대가 아닌 지방대생이라도 같았을까?  서울대생 아들이 죽었는데 시신 확인도 하지 않는다고.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서울대생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파급력이 커졌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문은 나만 가지고 있는건가?' 검색을 해보니까. 1987 영화에 대한 글은 아니지만 블로그 글 2개와 아이들을 가르키는데 박종철의 학력에 관심을 갖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발췌해 복사하면


"언젠가 부모님이 말씀하셨어요. 데모를 해도 'SKY'에 다니는 대학생이 해야 뉴스에도 나오고, 사람들이 인정도 해준다고. 지방대 다니는 얘들이 어쭙잖게 데모해봐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이 불평만 늘어놓는다며 손가락질한다고 하셨어요. 그게 세상인심이라고. 그러니 딴 생각 아예 말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엘 가야 한다고."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게시하더라도 명문대생이 주목받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학벌입니다. 학벌이 주는 관심은 반대로도 작용하기도 합니다. 명문대생이 성추행같은 불미스러운 범죄를 저지르면 꼭 학교 출신이나 명문대임을 밝힙니다. 기사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대생임에도 이런 범죄를 저지르다니...'


'민주화 운동을 한' 다음 단어로 넣을 때


서울대생(명문대생)의 죽음

지방대생의 죽음

전문대생의 죽음

공장노동자의 죽음

김모씨의 죽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했을 때, 사건이 동일하게 전개 되었을까요. 이 의문에 확신이 서질 않는군요.  유명한 이한열 열사 사진에서 부축한 학생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 많은 사건과 비극이 있었겠지만 슬픔의 무게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다면 미디어의 관심도 다르고요. 다른 사람이 동일한 비극을 겪었을 때 세상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슬픔을 보일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세상을 더 현실적으로 보고 나이를 먹었음을 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번의 용기가 있을 때가 있겠지. 언제인지 모르지만


영화는 편집된 구간만 다루기 때문에 뒷이야기를 보면 흥미롭습니다. 노태우의 당선이라던가.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의 변절이라던가...


박종철 열사의 화장을 막음으로써 진실을 밝힌 최환 검사는 공안검사이고, 교도소 보안계장도 대공수사처 간부들의 조작을 폭로하는데 역할을 했지만 미화가 되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정우의 사무실에서 공안부장이라는 명패를 보았을 때 그런 의문을 가졌을 겁니다. 저 사람은 마냥 의로울까?


그래서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와 올바름을 실천했다는 사실이요. 그게 보통사람이니까요. 이 사건에 관계된 사람은 모두가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 모두가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였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전쟁에 관련된 실제 사실과 미디어에 보여주는 장면은 괴리가 있습니다. <살인의 심리학> 책을 보면 영화처럼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은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용기는 어떤 사람들이 보여줄까요? 전우를 대신 살리고 희생하는 사람은 어떨것 같나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밀러 대장(톰 행크스)같은 용감한 사람. 우리가 생각하는 평소 이미지는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하겠지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아니기도 합니다. 고문관으로 평가받던 군인이 결정적인 순간에 용감한 행위를 하는 것. 전우를 대신해 희생한 군인도 그랬답니다. 찾아 보면 전쟁터에서 이런 사례들이 많이 보인답니다. 평소에 용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용기있는 행위를 할 때가. 이는 그 사람 인생에 두 번 있을 행동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같은 상황을 부딪히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했다는 것.


용기 있는 행위는 반드시 용기를 가진 사람한 하는가? 입니다. 아닐수도 있습니다. 비슷하게 옳은 을은 옳은 신념과 생각을 가진 사람만 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는 성인(聖人) 대우를 받고 존경을 받을겁니다.


강동원이 말하죠. 그만두라는 연희의 말에.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마음이 아파서...' 강철같은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도 있을테고 다른 목적도 있을겁니다. 인간적인 감정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전쟁터의 군인이 거대한 대의명분 떄문에 싸우는게 아닌 옆의 전우 때문에 전장을 이탈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사소해 보이는 감정이 동력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화에 공헌(?) 을 한 선데이 서울. 선데이 서울은 삼류. 말 그대로 싸구려인데. 가장 하찮은 게 대의를 이루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평범함의 상징처럼 보여서  흥미로웠음>


현실과 이상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그 사이에서 용기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떠밀려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 그 선택만큼은 존중받을만 합니다. 과거가 어떻고 미래에 신념을 버리고 생각을 바뀐다고 할지라도요. 반대로 옳은 일을 한 사람이 이더라도 다음번에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고 자신이 가졌던 생각과 신념도 따라서 변하니까요.


1987은 이런점이 보이는 영화라서 좋았습니다. 그들도 보통사람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여지가 보여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만큼은 올바른 선택을 했고, 그 바른 선택이 모여서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단 한 번만이라도요.


유시민이 이렇게 말했군요. 제 생각과 비슷합니다.


“일정 시기에 옳은 일을 못하고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시기에 옳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한 시기에서 옳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옳은 삶을 산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옛날곡이지만 영화를 보고 떠오른 Rage Against the Machine - Wake Up ( 매트릭스에서 삽입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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