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은 왜 시끄러운가?
동이 서생 오기사의 대륙탐방기 / 오영욱
건축 전공자인 글쓴이가 중국을 마음내키는데로 여행을 하면서 쓴 감상기입니다. 건축이라고 해서 큰 주제가 있는건 아니고 가벼운 감상기 정도로 보면 될듯합니다. 중국어를 잘 모른다면서 이런식으로 홀로 여행도 가능하군요. 제 주위에는 나롤로 여행 얘기만 해도 정색을 하던데.
"어떻게 혼자서 여행을 가?"
청두의 콴자이샹즈 거리 일대는 우리의 인사동길 같은 장소라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대목은
아마도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 콴자이즈샹즈 거리 일대는 이 도시에서 가장 개발이 늦은 저소득층 동네였을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 차별과 소외가 역사도시의 기억을 살린 셈이다. 개방화 이후 기와집과 좁은 골목이 돈이 된다는 것을 먼저 경험한 세력이 가난한 이들에게 푼돈을 쥐어주며 쫓아냈을테다. 자본이 이곳을 점령했다. 이미 거리는 세련된 가게와 문화시설로 바뀌어 주거지였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렵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현대의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것은 오해다. 도시의 역사는 늘 강한자들에 의해 약한 이들이 쫓겨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힘의 주체가 권력이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역할을 돈이 맡고 있을 뿐이다. 낙후된 거리에서 쫓겨난 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단지를 짓기 위해 쫓겨났던 원주민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감천문화 마을에 갔다 오고 나서 비슷한 감상을 썼습니다. 사진가나 감수성이 있는 이들이 골목길의 아름다움, 사람냄새가 나는 풍경을 예찬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그곳에 살려는 마음가짐은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지하주차장도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 한참 걸어가야 하는 곳은 살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풍경이 사라짐에 대해서 안타까움이야 표현할 수 있겠지만 자신들이 환상을 위해 보존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이 자체 환상입니다. 골목길에는 사람냄새가 날꺼야 라는 환상은 원시 자연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티 없이 맑고 순수할꺼야라는 환상. 그 환상을 SBS '정글의 법칙'이 보여주려다 된통 당한적이 있었습니다. 김병만의 남긴 명짤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
요즘 같은 시대에 문명의 이기가 침투하지 않은 지대는 없습니다. 전세계인 누구나 다 휴대폰 사용하고요. 휴대폰이 너무 많아서 그냥 버리는 세상인데. 그들도 자신의 자식들이 더 잘살기 바라는 마음에 대학 보내기를 원하는 모습마저 우리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미디어는 환상을 팝니다. 티 없는 공간이 있다고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과 지역이 있다면서...
공간에 대해서 보자면. 내가 자고 눕고 앉는 집이 다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을 수도 있고,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없더라도 그곳이 '집' 이었던 동물과 식물은 인간의 대규모 개발에 조그만 항의조차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민원을 내거나 시위를 할 수 있었다면 한국을 비롯해 전지구가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을 겁니다.
제가 살고 옆 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여름만 되면 개구리 울어대는 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시끄럽기도 했지만 운치와 정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 대신, 자동차가 들락거리는 소음과 아이들이 뛰어다는 모습, 아파트를 밝히는 환한 불빛만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거주하고 있는 집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을 겁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이 빼내는 역사의 반복. 강자가 약자를 자리를 뺏는 과정.
어떻게 보면 나란 존재가 다른 대상을 밀어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거시기하게 표현하자면 이런겁니다. "나는 다른 존재들에게 '개새끼'일까?"
한,중,일 비교. 그럴싸 한데.
글쓴이가 한,중,일 세 도시와 나라를 다녀오면서 성급하게 일반화(?)를 보고 재미있었던게.
- 서울에는 안경을 쓴 남자가 많고 베이징에는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가 많다. 도쿄에는 젊은 남자가 없다.
- 서울의 2호선, 도쿄의 야마노테선, 베이징의 10호선은 모두 번잡하고 사람들이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 도쿄는 쓰레기통이 많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베이징에는 쓰레기통이 많지만 자유롭게 버린다. 서울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 일본인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무시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 중국은 한국인과 일본인을 싫어하지만 사실 크게 관심은 없다.
- 한국인은 중국인을 무시하고 일본인을 싫어하는 걸 겉으로 드러내면서 관심받는 걸 즐긴다
현대 중국 도시들은 매력이 없다. 그 이유로 도시에 낭만과 질서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주변에도 중국에 출장, 사업차, 관광으로 갔다온 사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가볼만 하냐고 물어 보면 '글쎄'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꼭 가봐라'고 추천한 사람이 기억에 없습니다.
살고 싶지 않은 그다지 매력이 없어 보이는 이유로.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 즉 무지라고 말합니다. 일본도 그랬고, 우리도 한 때는 그랬으니 중국도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 외국인 기자가 쓴 글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은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원했지만 지금의 서울은 살고 싶은 도시로 변했다."
소득수준이 더 높아지고 현대 도시 생활에 대한 매너와 예의를 중국인들이 학습하게 된다면 지금의 시각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중국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중국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그게 또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겁니다. 중국은 그 자체 이미지(마데...)로 디스카운트를 당하는데 매력까지 가져 간다면 위기로 작용하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넛크래커 위기'가 될지도요. 아직은 멀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뭔가 애매한 말입니다. 올수도 있고 안올 수도 있다.
제목에 버젓히 써놓은 '중국인들이 시끄러운 이유'에 대해서 '이거다'라는 대답은 없습니다. 한,중,일 사람들의 시끄러움 정도는 강중약 순으로 보자면 중,한,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가 보는 외국인들은 여행으로 만나게 되니 더 시끄러운 존재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여행지에서는 국적과 나이에 상관없이 시끄러워 지니까. 여행지에서 조용하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요.
책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하거나 거주했다면 무슨 제목을 쓸까요?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놀랐던 건. 일본인들이 마스크를 상당히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날이 탁하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아니었음에도 출입국 사무소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왜 그리 많이 사용하는거지. 마스크 성애자들도 아니고.
'왜 그럴까?' 여기서 사람간에 차이나 납니다. 진지하게 파고 들어 연구를 해 그럴싸한 해석을 내놓는 사람과 저 처럼 그저 의문만 남기고 지나가는 사람들.
어쨋든 한국인에 대한 의문은 제3의 시각으로 보면 대략 이런게 아닐까요
한국인들은 왜 그리 김치를 권하는가
한국인들은 왜 뿔테 안경을 쓰는가
한국인들 왜 그토록 유행에 민감한가 (최근 유행을 선도하는 핫 아이템. 롱패딩처럼)
사실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하면서 좋아하는게 아닐까?
한국인들은 부유하면서도 애써 아니라고 하는가?
책을 보고 또 생각합니다. '나도 스케치를 잘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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