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광고로 읽는 미술사 : 그들은 벌거벚은 자를 임금으로 만들었다

네그나 2017. 5. 2. 17:00


광고로 읽는 미술사 : 정잔진


CF나 지면광고에 유명한 미술작품을 이용하거나 패러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SK이노베이션 신문광고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를 모방한 듯 보였습니다. 사진을 보려고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갔지만 자료가 없군요. 이럴거면 홈페이지 운영을 왜 하는지 원.


상업활동의 최전선인 광고는 순수예술인 미술과 어울리지 않는다 싶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것도 없어 보입니다. 광고에 깔려 있는 미술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다르게 보면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는 척' 하기 좋을 거 같습니다.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영화  <ET> 포스터에 나온 손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는 걸 알았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고 있겠지만 저같은 미알못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광고로 읽는 미술사인공지능은 이미지를 외설로 판단할까 궁금해진다.



모나라자의 미소는 정말 신비한가? 그렇게 느껴지나요?


미알못들에게 잘려진 레나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모나리지는 광고뿐만 아니라 영화, 코미디, 시사, 뉴스, 만평등 워낙 많이 가져다 쓰다 보니 식상한 느낌마저 듭니다. 저자는 무심하게 모나리자의 관련된 에피소드를 지나칩니다. 


모나라지는 리자 부인을 뜻하는 말, 그림이 캔버스가 아니라 나무위에 그려졌다는 사실, 1911년에 도둑을 맞았고 2년 뒤에 다시 찾은 일화. 그림이 없어진 2년 동안 작품이 아니라 작품이 사라진 공간을 감상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들었던 일. 앞에 말했던 알겠죠. 저런 깨알지식으로 남들에게 자랑하기 좋다는 거.


모나리자에 대해서 항상 가졌던 의구심이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를 보면 많인 사람들이 실망한다고 합니다. 일단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고 박물관 관람객으로 넘쳐나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방탄유리 때문에 미소는 커녕 액자도 볼 수 없습니다. <상식의 배반> 책의 저자도 모나리자 그림을 직접 보고 실망했다고 말한게 기억에 남습니다.

모나리자 루브르 박물관위키피디아에 올려진 모나리자 앞 군중. 이렇다고 합니다...

어떤 풍경이나 그림을 감상할 때, 마음가짐과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운전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노을이 져가는 그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지만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빨리 일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려면 내 마음부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관광명소인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시장통 같은 분위기라 그 자세를 잡는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나리자 광고

모나리자 레고


미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이 모나리자 신비하다고 하고, 19세기 이후로 대중매체에서 반복해서 사용되면서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명작은 그런식으로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하는데 다르게 말하면 거품이 있다고 표현해되 될까요? 삐딱하게 바라봐서 이런식으로 느겨지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저 유명함에 대한 반감일지도요.



광고에 사용된 미술작품을 소개하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문화는 살아 있는 생물. 그 예측 불가능


19세기 후반, 20세기  프랑스 유럽전역에서 japonisme이 유행합니다. 유럽에 끼친 일본 미술은 우리가 잘 아는 마네, 모네, 고흐, 고갱, 클램프, 드가, 루느아느, 보나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모네와 고흐는 우키요예 수백점을 수집했고 읽을 줄도 모르는 우키요에 테두리에 적힌 한자까지 필사했다고 합니다.


카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에도 시대 서민계층을 기반으로 발달한 풍속화를 우키요에라고 합니다. 부박한 세상, 속세를 뜻하는 말로 기녀나 광대를 대상으로 그려진 목판화입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연예인, 걸그룹 화보정도. 가장 유명한 우키요에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카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일본을 상징하는 이미지이다 보니 광고로도 사용됩니다. 이 그림은 대한항공 광고로 사용되어씃ㅂ니다.


일본의 대중을 상대로 한 작품 (상품이라고 해야 할까?) 서구인들에게는 목판화의 한계로 인해 형성된 명쾌한 색과 조각도의 단순 명쾌한 선이 자아내는 표현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겁니다. 우키요에는 네덜란드 등지로 떠나는 일본 화물선에서 물건들이 부서지지 않도록 구겨 놓은 목판화와 폐지가 눈에 띄기 시작해서 알려졌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보면 택배 보낼때 신문지를 넣은 격입니다. 그같은 사소한 일이 사회적인 유행의 시작이라는 게 재미있습니다.


과거는 화물선에 보낸 우키요에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냈다면 현대는 뭐라고 해고 디지털과 인터넷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싸이입니다. 유튜브에서 시작된 관심이 열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열풍이란 언제가 식기 마련이라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놀라운 일입니다.


문화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말합니다. ( 대선시즌인 지금 정치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점은. 문화에서는 무엇이 크게 뜰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음식, 문화, 예술을 소개를 할 때, 자신들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럴듯하게 여기는 것 흥미가 없습니다.


우키요에는 풍속화입니다. 천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새로운 유행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싸이가 크게 떠서 그렇지. 그전에 관심이 두었습니까? 한국을 알리는데 싸이 같은 사람을 기용해 보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겁니다.


무엇 하나만 성공했다고 그거만 붙잡고 있으면 또 안됩니다. 한국에 필요한 건 다양성입니다. 다양성 확보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성급함입니다. 끈질기게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며서 닥달을 하고, 정부는 그에 맞춰 하는 척을 합니다. 한국 사회를 크게 이끌었던 원동력인 속도가 지금 시대에는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

그들은 벌거벚은 자를 임금으로 만들었다


앤디워홀은 마릴린 먼로 사진을 단순하게 색깔을 입힌 형태로 만들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이 그림도 매우 유명해서 한계려에서는 노무현의 색깔 이란 주제로, 주간동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표현했습니다. 저자. 언제가 박근혜 대통령도 주간지 표지에 장식되지 않을까 라고 예상합니다. 탄핵이란 사건이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겠지만.

앤디워홀 마를린 먼로

앤디워홀 마오쩌둥



우리가 마를린 먼로에 대해서 아는 건 없습니다. 금발에 글래머, 입가에 있는 점. 환풍구에서 치마를 부여잡고 있는 이미지. 마를린 먼로를 피상적인 이미지로만 알 뿐 아무것도 모릅니다. 앞에서 말한 모나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지만 알지 왜 유명한지는 모릅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현대 시대에 살고 있는 대중스타는 옛날 신화 속 캐릭터를 대신합니다. 마를린 먼로는 신화속에서만, TV라는 작은 액자 속에서만 그 생명을 유지합니다. 인간 노무현, 인간 이명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리가 듣고 보고 아는 건 오직 대량생산 되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 결정판이 박근혜라고 생각합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탄핵. 이 모든게 큰 사건이지만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가려진 이미지를 만든자들입니다. 일부 언론과 방송인,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실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일부는 묵인했을 테고, 일부는 박근혜에게 보이지 않는 옷을 입혔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것벗은 임금>은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지와 매스 미디어의 공세를 통한다면. 벌거벗은 자가 구국의 영웅으로 보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옷을 입혔습니다. 박정희 아우라 뒤, 미디어속에 신화속 캐릭터처럼 살다가 현실로 오니 추락하는 건 필연입니다.


박근혜가 추락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새누리당이 미디어법을 통과시키고 종편을 통해 방송진출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언론장악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의적인 환경에 조성하기를 바랬을 겁니다. MBC에 있던 손석희가 JTBC 보도부분 사장으로 가게 되었을 때 진보에서는 호의적인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종편 탄생 초기만 해도 종편은 안본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종편이 탄핵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으니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세상은 자기가 의도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박근혜만 그럴까요? 이와 반대되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오바바 전 미국 대통령은 청소부와 하이파이브 하는 모습이라던가 소통이 잘 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한국이 불통의 시대에 살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오바마가 호감이 가기도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대중에게 공개되는 대통령의 이미지와 사진은 철저히 선별되어 편집되고 연출이 됩니다. 오바마가 소통이 잘 되는 사람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만들어진 이미지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위안부 합의 문제를 비롯해 오바마가 한국에게 영향을 끼친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막연하게 호감을 보일 수 없습니다. 오바마의 소탈한 태도는 보수층이 이미지를 보고 박근혜에 기대는 것과 별 차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급이 다는 사람이란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지가 잘 못 될 가능성도 있고 속을 수 밖에 없는 현실도 있습니다. 이미지에 지나치에 의존하며 위험하다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겠지만 인식은 해야겠습니다. 만들어진 이미지란 사실을. 박근혜의 실체는 밝혀졌지만 보이지 않는 옷을 입힌 재단사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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