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가와 요헤이 長谷川陽平 1(한국식으로 양평이형)를 처음 본 것은 무한도전 가요제때입니다. 곱창전골로 활동하기도 했고 이를 뉴스에도 봤던것 장기하와 같이 출연해서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사람이 한국에 온 이유는 1995년 우연히 접한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에 매료돼 아무런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이 왔습니다. 별다른 계획도 없이 단지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온 남자입니다.
책은 그가 생각하는 한국 음악과 생활에 대한 인터뷰집이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껴집니다. 음반을 수집하러 청계천을 전전한 이야기라던가. 한국 록 음반을 소개한 모음 코너를 보면 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상현, 키보이스 등등. 음악적인 소양이 없어서 이 가수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대중적인 음악만 듣고 고전에는 관심이 없는터라. (사실 대중음악도 그리 잘 듣지 않지만.)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 교수의 글을 보면 한국인보다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는데 하세가와 요헤이도 한국 고전 대중 음악은 웬만한 한국인보다 잘 알듯 싶습니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한 분야를 깊숙이 파들어가는 일본 특유의 덕후 기질도 보입니다. 음악인이라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주이지만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일본인으로서 보는 한국과 문화에 대한 말이 관심이 더 갑니다.
양평이형이 청계천을 돌아다니면서 레코드를 헐갚에 사들였던 에피소드에서는 한국과 차이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유목민기질과 잘버림 두가지에 주목해 봅니다. 한국인이 유목민 기질이 있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물건을 잘 버리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레코드들이 주전자나 낡은 오디오 무더기 위에 얹어져 있는 거예요. 그런 레코드들이 청계천에 가져가서 가게들이 뿌리는 거죠.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사를 참 자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사할 때 대부분 레코드를 많이 버렸다고 해요.
Q. 이사를 자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한국은 대륙과 이어져 있으니까 유목민이나 대륙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국으로 이주해 가는 사람도 많은데, 대부분 이국에서도 잘 적응하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은 자국에 불만이 생겼을 때 “아아, 어디론가 이민을 가고 싶다”말을 하곤해요.
일본사람들은 잘 하지 않는 말이네요.
그렇지요?
이사를 자주 하다보니, 그만큼 물건에 대한 집착이 적은 걸까요? 쉽게 물건을 버린다고 할까?
글쎄요. 어떤 이유일까요? 레코드만 두고 보면 예전에는 수집가처럼 모으는 사람들이 적었던 것 같아요. 유흥을 위한 용도였다고 하면 맞을까요. 레코드는 그저 ‘지금 이 순간에 듣고 싶은 음악’을 듣기 위한것.(p.68)
일본인들은 이민을 가겠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반면 한국인은 이민을 가고 싶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합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썼던 글이 기억이 나는데, 주변이 알고 지내는 일본인들은 연고도 없는 미국에 계속 살고 싶어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은 여건만 되면 미국에 정착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삶의 터전을 옮기겠다는 사고와 자세는 유목민 기질이 있다고 봐도 될까요?
<맛으로 본 일본> 맛으로 본 일본 : 어떻게를 중시하는 일본의 식문화 저자는 일본의 버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기로 일본인들은 물건을 버리는데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이다' 그래서 전통문화와 건물을 잘 보존하고 수집을 활용한 문화나 박물관이 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단점이 있습니다. 버리는데 보수적이기다 보니 과거의 습관과 관행도 그래도 유지됩니다. 저자의 말대로 일본이 버리지 못했던 가장 큰 것은 근대화의 성공경험이었을 겁니다. 산업화시대에 통했던 성공경험이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잘 맞지는 않는 옷처럼 느껴집니다. 여기 가장 적합한 사례는 게임분야가 아닐까? 80,90년대 업계 한축으로 여겼졌던 일본게임이지만 그 위상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일본게임의 경쟁력 약화는 과거 경험을 버리지 못함에 있다고 봅니다.
반면 한국인은 잘 버립니다. 특히 과거의 경험을 잘 잊습니다. 그로 인해 세월호 같은 사고가 반복되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과거를 과감하게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모든게 그렇지만 특성은 양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것이 단점으로 나아가는냐 장점이 더 돋보이느냐 차이겠지요.
하세가와 요헤이의 인터뷰 대목으로 글을 마칩니다. 그의 말대로 인생에는 무계획이 최선의 계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기 계획따위는 세우지는 않는다. 어차피 틀릴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던 경영자가 떠오릅니다. 누가 되기, 어떤 사람이 되자는 열풍사회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좋은 자세입니다.
Q. 그래도 굳이 질문합니다만 그 시기의 하세가와 씨는 한국에 오는 결정적 계기였던 산울림과 함께 활동하고 영화 사운드트랙까지 제작했잖아요. 그때까지 동경했던 것을 모두 실현했으니 한국에서 할 일을 다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
음. 그러네요.... 그런데 그때 오히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어요.‘용케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되돌아보는 순간조차 없었고요. 애초에 한국에는 구체저인 목표가 있어서 온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목표가 없었기에 지금도 계속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해요.
목표나 구체적으로 세우면 현실과 차이 때문에 괴로워할 수 있잖아요. 저는 어떤 순간부터
‘나 자신은 어차피 이런 거다’라고 생각하며서 살아가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폴 매카트니나 밥 말리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해도 될 리가 없잖아요.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지요. (p.196)
- 1971년 11월 4일 생. 일명 양평이형.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기타 및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 참고로 부유한독신남. 일본인 유명인 중에 료헤이라는 이름이 많아서 료헤이라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요헤이가 맞다.[1] 양평이형이라는 호칭은 자유로 가요제와 무한도전 쓸·친·소 페스티벌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김양평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지인들 사이에서 부르며 사용해온 호칭이다.[2]한자로 읽으면 '장곡천양평' 인데 장양평이나 하양평이 아닌 이유는 김창완이 "내 형제같은 사람이니 김씨 아니겠냐"고 해서 김양평으로 정했다고 한다. 일본인임에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거의 없을정도로 한국어실력이 상당한 편이다. 한국어로 말할때는 다소 어눌하지만, 일본어로 유창하게 말할 때는 멋있다고 한다.당연하잖아! 곱창전골[3]을 이끌고 있는 사토 유키에라던가, 장사하자로 유명한 하찌와 TJ의 하찌[4] 등 한국에 넘어와 활동하는 일본 뮤지션들은 은근히 많은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 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편이다. 부모님 모두 일본에서 유명한 연예인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유명 배우 류 라이타(竜雷太)이며[5]이며, 어머니는 배우 나츠 케이코(夏圭子)인데, 양친은 이혼했다. 하세가와는 트위터로 자신의 프로필에 아버지 프로필이 연결된 것에 매우 신기해 했다. 트위터를 자주 하기 때문에 트위터를 통해서도 좋은 음악을 추천 받을 수 있다. 출처 : 나무위키 [본문으로]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에서 달만큼 날았던, 문버드 B95의 놀라운 비행 (0) | 2015.08.11 |
---|---|
맛으로 본 일본 : 어떻게를 중시하는 일본의 식문화 (2) | 2015.07.27 |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 뒤섞인 서울과 분리된 파리 (0) | 2015.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