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등장하는 세계관은 무협지처럼 일정한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도시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되고 사람들은 공포로 패닉에 빠집니다. 좀비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군에서 개발중인 신약이나 무기가 유출되었거나 다국적 기업이
배후로 지목됩니다. 좀비 바이러스는 공격무기 의도로 혹은 불치병 치료제로 개발했을 수도 있는데 어떤식으로 바이러스가 외부로 유출되어 ( 고의로 혹은 실수로 ) 재앙이 난다고 전개됩니다. 대재앙 속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좀비의 설정도 비슷합니다. 좀비는 다리를 끌며 느릿느릿 다가왔지만 업그레이드된 요즘 좀비는 미친듯이 달려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을 보면 달려들어 물려하고 좀비에게 물리면 그 인간도 결국 좀비로 변해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좀비는 지치지도 않고 쓰러지지 않아 상대하기 까다롭지만 유일한 약점은 머리입니다.
좀비 세계관이 게임에서 환영받는 것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종말적인 판타지 느낌을 주기에 좋기 때문일겁니다. RPG게임에서는 마을을 벗어나면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몬스터가 등장하지만 현대에는 그런 괴물이 없습니다. 현대는 인간의 발자국이 닫지 않은 공간이 없고 대부분 깃발을 꽂았습니다. 물론 오지로 가게 되면 곰이나 사자, 호랑이 같은 포식 동물이 있지만 이들은 멸종위기로 다가가는 중이라 인간을 위협할 처지가 못됩니다.
인간을 위협하는 그럴듯한 가상의 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대 문명 배경으로 악마가 등장하는것은 어색하지만 치료할 수 없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등장하고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설정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인간형은 좀비를 상대로 세밀한 폭력묘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를 날려버리면 과도한 폭력이지만 제거해야 할 괴물인 좀비는 양해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게임을이 좀비 세계관을 사용하고 있고 '라스트 오브 어스(Last of Us)' 같이 좋은 평가를 받고 게임도 있지만 '또 좀비야' 말이 나오게 할 정도로 식상한것도 사실입니다. 비슷한 스토리와 뻔한 구성으로 인해 그게 그것처럼 보여 지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익숙한 좀비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어떻게 차별화 시킬것인지가 개발사의 숙제입니다.
인디 게임 개발사인 데킬라 윅스(Tequila Works)가 데드 라이트(Deadlight)는 좀비가 등장하는 호러 서바이벌 게임입니다. 데드 라이트에서는 좀비라고 부르지 않고 그림자라고 부르는데 호칭은 다르지만 하는 역할은 같습니다. 스토리는 공식 그대로. 갑작스러운 재앙으로 홀로 남게된 랜달 웨인(Randall Wayn)은 실종된 가족을 찿기 위해서 그림자가 득실거리는 시애틀를 누빕니다. 하지만 그림자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있는데...
게임 배경은 80년대 후반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당연히 없고 휴대폰 조차도 없습니다. 삐삐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도 90년대이니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펜티엄 컴퓨터도 나오지 않았고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하던 시절입니다. ( 게임 로딩시 카세트 테이프가 돌아가는 연출이 나옵니다. ) 진행중에 수집하게 되는 품목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언급이 나와 냉전이 진행중인 시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우울한 도시와 빛이 묘하게 어울린다.
데드 라이트의 다른 게임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게임 방식입니다. 3D공간을 탐험하는 최근의 게임과 달리 앞,뒤, 위, 아래 2D로 진행이 됩니다. 2D로 진행되지만 배경은 3D로 묘사되었습니다. 데드라이트의 가장 힘을 준 부분이 배경으로 우울한 도시와 흐린 이미지입니다. 폐허가 되어 생명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잿빛 도시, 사진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암울한 도시 묘사는 굉장히 멋집니다. 황폐화된 도시가 멋지게 보인다고 말하는게 이상하지만 배경을 보는것만으로 즐겁습니다. 하지만 3D임에도 고정된 시점으로만 보는것은 아쉽습니다. 카메라 워크를 활용해서 다양한 연출을 가미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역광에서 사진을 찍은듯한 연출. 배경연출에 공을 많이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데드 라이트는 한 폭의 그림같은 배경을 보여준다.
주인공 랜달은 주된 액션은 점프하고 달리고 매달리기입니다. 좀비가 득실거리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인데 데드 라이트를 하다보면 생각나는 게임이 있을겁니다. 고전 게임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페르시아 왕자' 감탄사가 나올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명작 게임입니다. 왕자가 달리고 점프하고 매달리는 액션과 랜달이 비슷합니다. 메이킹 필림을 보게 되면 페르시아 왕자 현대적으로 구현하려 했다는걸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데드라이트는 페르시아 왕자 좀비 버전인 셈입니다.
게임 진행시 자주 사용하는 매달려서 가기
렌달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소방용 도끼와 권총, 산탄총이 주어집니다. 물론 무기를 처음부터 지급하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어야 합니다. 도끼는 무한정 휘두를 수 있지만 활력 게이지를 지나치게 소모하면 지치게 되어 적절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좀비에게 도끼를 휘둘러 봤자 잘 죽지 않아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가끔 발동되는 나이스샷이 좀비 머리통을 분리하지만 크게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도끼로 좀비를 완전히 끝장을 내려면 쓰러뜨린뒤 내리찍어야 합니다.
원거리 공격 무기인 총은 도끼와 비교하면 편합니다. 조준을 하게 되면 자동으로 머리로 향하고 헤드샷! 거리만 적당하면 '원샷 원킬'이지만 장전에 신경을 써야 하고 조준하는 동작이 굼뜸니다. 사격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작이 굼뜬걸 감안하고 조작해야 합니다.
데드 라이트는 '어떻게 좀비 머리통을 날려버릴까?' 로 접근하기 보다는 '어떻게 좀비를 피해 다닐까?'로 생존과 회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무기가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2D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회피할 공간이 적습니다. 사다리에 올라가고 차위로 올라가고 난간에 매달리는 정도입니다. 휘바람으로 시선을 끌어 좀비를 유인하는 방식은 신선했는데 이를 활용한 퍼즐이 더 많아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할 수 있는 액션이 적다보니 평지에서 좀비가 몰려들면 압박입니다. 좀비에게 둘러 쌓이면 탈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횡스크롤 액션게임 예를 들면 파이날 파이트에서는 점프와 공격 버튼을 동시에 누리면 무적기가 발동하면서 적들에게 탈출할 수 있지만 데드라이트는 그런것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도끼로 밀쳐내는 정도인데 한계가 있습니다. 탈출을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는게 편합니다.
만화 진격의 거인이 생각나는 연출
데드 라이트의 가장 큰 단점은 게임 설계 부분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면 너무 자주 죽습니다. 개발자들이 고전 게임에 향수가 있어 보이던데 게임 방식마저 80년대 스타일 '일단 한 번 죽어봐라. 그러면 알게 될것이다' 을 따랐습니다. 이 시기의 게임은 삽집을 해가면서 주어진 관문을 돌파해야 했습니다. (그게 재미로 느껴진 시기도 있었지만) 데드 라이트는 뜬금없이 죽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갑자기 천정이 무너지고 빠지고 함정에 걸려 영문도 모른채 죽습니다. 세이브 포인트가 있어서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신이나 노래를 부르는데 마이크 뺏아가는 느낌이 들어 흥이 깨집니다.
배경묘사가 뛰어나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구분이 잘 되지 않는것도 단점입니다. 이용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번쩍이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시도 해보고 죽어봐서 '아! 안되는구나' 깨닫는 식입니다. 좀비들이 배경에서 플레이어의 공간으로 넘어오는 순간에도 분간이 잘 안됩니다. 독특한 표시를 해주는게 플레이어들에게 편하지 않았을까? 간간히 나오는 퍼즐은 쉬운 수준입니다. 액션이 한정되어 있고 같은 과정을 반복(점프, 매달리기, 달리기)해서 후반으로 접어들면 지루한 느낌을 줍니다.
이곳에서 벗어날려면 창문을 쏴야 한다. 몇 번 죽는 삽질 끝에 알아냄
데드 라이트는 짧은 게임 플레이 시간이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저는 워낙 많이 죽어서 6~7간 정도 플레이 한 것 같은데 숙련자라면 3시간 정도면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분량이 짧습니다. 짧은게 좋았습니다. 이제 게임 길게 하는거 좋아하지도 않고 여기서 더 늘어나 봤자 흥미가 생길 구성도 아닙니다. 엔딩을 보게 되면 악몽모드가 열리고 악몽모드로 클리어 하게 되면 다른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더 플레이 하는게 귀찮아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으로 다른 엔딩을 감상했습니다.
코믹스로 연출된 구성. 나쁘지는 않지만 3D를 활용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게임 진행시 얻을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 이런 게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략적인 연령대를 추정할 수 있다.
데드 라이트 처음 본 순간 '괜찮네.이 정도면 8점은 줘야 겠는걸' 생각하다가 플레이 흐름을 끊는 게임 방식 때문에 점수가 깍였습니다. 짧은 구성과 힘을 많이 준듯하지만 뒷심이 부족해 아쉬움이 남는 게임입니다. 이것보다 더 잘 나올 수 있었는데. 개발자들 아마 개발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겠죠. 마침표 찍고 난 뒤의 아쉬움.
최근에 보기힘든 2D 방식으로 좀비 세계를 구현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합니다. 어설픈 3D보다는 잘 구성된 2D가 좋을 수 있다는 걸
데드 라이트가 보여줍니다. 처녀작이 이 정도로 나왔는데 데킬라 웍스의 다음 작품의 기대해 봐도 좋겠습니다. 2D 게임 하나 더 내어 주었으면 합니다. 데드 라이트는 강력하게 추천할 수는 없지만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게임입니다. 데드 라이트 최종 점수는 7점입니다.현재 헙블번들에서 저렴한 구성으로 판매중이라 구입에도 부담이 없을 겁니다.
- 소련은 공식적으로 1991년 12월 25일 저녁 7시(모스크바 시간)에 붕괴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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