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영화표를 몇장 구하게 되어서 앞으로 종종 영화를 봐야할 듯 합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보았습니다. 사실 본지는 좀 되었고 후기를 작성할려고 하다가 미루게 되어서 지금 올립니다. < 범죄와의 전쟁> 노태우 대통령이 1990년 10월 13일 특별선언을 통해 범죄와 폭력에 전쟁을 선포한 사건이다. 사회악인 범죄를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기성 세대라면 기억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저도 기억이 나는 듯 한데,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본 것을 기억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만들어진 기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조폭영화입니다. 조폭을 다루고 있고 이야기 전개는 아주 평범합니다. 특별한 내용이 없습니다.
이야기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흔히 봤던 왔던 내용이라서 지루할 것 같은데, 인상적인 캐릭터와 주연, 조연배우들의 열연으로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평범한 이야기의 범죄와의 전쟁은 이야기보다는 캐릭터를 봐야합니다. 이 영화는
캐릭터가 살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최익현(최민식)은 세관공무원 출신입니다. 세관공무원을 하면서 짭짤한 부가수익을 올리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최익현이 어떤 캐릭터인지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도 암시합니다. 우연한 사건으로 필로폰을 발견하게 되고 필로폰 판매를 위해 조직폭력배인 최형배(하정우)를 만나게 되면서 최익현은 본격적으로 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가족을 위해서, 원죄
최민식의 연기는 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 보는 내내 감탄
범죄와의 전쟁은 최익현의 연대기입니다. 최익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한국사회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최형배 (하정우)를 만나면서도 경주 최씨 충렬파라는 혈연 연결고리를 들이댑니다. 최익현은 누가 되었든 자신과의 공집합을 찿아내어서 ‘나는 당신사람이다.’같은 편이라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최익현이 사는 방식이고 한국사람이 사는 방식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의 감독인 윤종빈은 어린시절의 경험을 영화로 풀어내었다고 합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윤형빈은 어린시절 낮선 사람들에게서 호의적인 대우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전화를 통해서 '나는 누구의 몇촌 되는 사람인데..' ( 영화 내내 들리는 소리) 그게 바로 청탁이었다는 것을 나이를 들어서 알게 됩니다.
최익현은 주로 권력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줄을 만들려고 열심히 비벼대는데요. 그렇게 얻은 부당이득을 가지고 가족을 위해서, 자식의 출세를 위해서 애씁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못 할게 뭐냐? 더 한 것도 할 수 있다는 자세입니다. 윤형빈 감독이 아버지가 밖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 처럼, 최익현의 아들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잘 비벼서 얻은 돈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겠죠.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이며,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도 모를 겁니다.
최인현을 보면서 떠올랐던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 술 한잔 걸치고 3차로 노래방에 가게 되었는데요. ( 전 밤 늦게 까지 노는걸 아주 싫어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_-;) 노래방에 가면 꼭 도우미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도우미를 부르고 그 중 한명과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는데요.
그 도우미 말로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 번 돈으로 자식들 교육시킨다고 하더군요. 딸이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그거 하나 보고 산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그 딸은 당연히 어머니가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것을 모릅니다. 식당에 나가서 일을 하는걸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노래방 도우미라는 일이
죄는 아니지만 떳떳이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겠죠. 아이들 생활기록부에 당당하게 쓸 수는 없을테니까요.
딸은 어머니가 노래방 도우미를 했던 것은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을 왜 했어?’ 라면서 분노할까? 아니면 ‘ 나 키운다고 고생 많이 했지.’ 라면서 측은하게 생각할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렇게 어머니가 고생해서 번 돈으로 자신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공부를 하는데도
그냥 되는 게 아니죠. 돈이 필요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면 추잡스런 놈도 많을 테고, 더러운 꼴도 많이 보겠죠. 최익현도 더러운 꼴을 많이 당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돈으로 아이들 공부시킨 것과 비슷한 광경입니다.
최익현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상징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만 살면 돼. 라는 식입니다. 명분은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사실 다 그렇겠죠. 범죄, 부정, 비리 다 가족들을 위해서라고 포장을 할 겁니다. 나만 잘 살려고 한 것 아니다. 라고 말하겠죠.
가족들을 위해서 부정을 저지르고, 아이들을 위해서 청탁을 합니다. 모두가 이런게 행동할 때,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을 할 때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개판이 됩니다. 로비를 안하고 뇌물을 안 주는 사람이 결국 손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피해를 본 사람은 울분을 토하면서 다시 최익현으로 변하가겠죠. 한국 사회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는 바로
이들입니다. 하지만 마냥 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최익현이 바로 우리 아버지 라면요? 최익현이 우리 아버지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노래방
도우미가 우리 어머니 라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행동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국가 단위로 보자면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아버지, 할아버지를 착취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피와 땀을 착취했죠.
'당신들은 희생해라. 그렇게 하면 당신의 자식들은 편하게 살 것이다'(일단은 경제성장이 먼저다.)는 말을 들으면서 묵묵히 견뎌내었습니다. 예전 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겠지만, 이제는 그 상황도 이해는 갑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수긍을 하게 되죠. 하지만 아버지까지는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지금 세대에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겠죠. 이제는 아버지처럼 행동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고 서열은 힘에서 나온다.
조폭이나 갱들 영화를 보면 양복 입은 원숭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다른 동물들이 가진 본능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수컷들은 자신의 영역에 오줌을 갈겨가면서 '여기는 내 구역이야, 들어오지마' 라고 표시를 합니다. 조폭들도 비슷하죠. '여기는 내 구역이야 어딜 넘봐.' 수컷들은 끊임 없이 서열에 목숨을 겁니다. 가재는 누가 키가 큰 가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박치를 하는 산양이 있고, 더 커다란 뿔을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최익현이 최형배와 합류를 하게 되면서 서열이 애매해집니다. 특히 최익현은 건달이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반달인 상태라서 더욱 더 애매 합니다. 영화에서 최익현은 우연히 얻은 총을 계속 만지작 거립니다. 총알이 없는 빈총을 계속 만지작 거리는 것은 더 높은 서열, 권력을 얻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형배는 잔혹함과 폭력으로 군기를 잡고 최익현의 기를 죽입니다. 최익현은 빈총을 만지막 거리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었으면 그런 힘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보여줍니다.
양복입은 원숭이들, 서열과 영역싸움에 집착한다.
총만 있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죠. 한국은 총기소유를 불허하므로 조폭싸움도 근접전(?) 위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근접전은 결국 눈빛의 살기나 그 사람이 내뿜는 포스가 빛을 발하죠. 하지만 총이 있다면 간단합니다. 근육에서 나오는 힘은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방아쇠만 당기면 되니까요. 이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스탈린 그라드에서 소련군 저격수가 빛을 발했죠. 소련 교관이 한 스나이퍼에 대해서 묘사한 것을 보면 '이 어린 남자는 손으로 벌레 하나 못 죽일 정도로 왜소해 보이지만 상당수의 사람을 저격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총은 있게 되면 원거리에서 혹은 등뒤에서 조용히 죽일 수 있으니 더욱 유리하죠.
빈총을 만지막 거리는 최익현을 보면 < 반지의 제왕 > 의 스미골이 오버랩 되네요. 스미골도 '마이 프레져' 하면서
절대반지를 탐을 내죠. 절대반지에 집착하는 스미골과 권력을 탐하는 최익현이 비슷한 모습입니다.
80년대 코스프레, 인상적인 캐릭터들
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 범죄와의 전쟁> 은 당시 상황을 재현을 잘 했습니다. 지금 보면 촌스러운 헤어스탈이나
어디서 구했는지 소품도 신경을 잘 썻습니다. 부산이라서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영화 친구도 부산을 배경으로 사투를 썼죠. " 아버지 뭐 하시노" ,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라는 대사는 아주 유명해져서 많이 패러디 되었습니다. 겡스 오브 부산 인지. 부산 사투리가 조폭이미지와 어울리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항구도시 출신의 험악함이 더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최형배의 오른팔인 박창우, 영화보고 나서 이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촌스러운 2 대 8가르마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나쁜 남자 같아 보이는 하정우, 여자들이 꽤 좋아할듯. 남자들이 서열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높은 서열에 있으면 더 좋은 암컷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겠죠. 암컷이나 여자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니까요.
최형배(하정우) 연기 잘 합니다. 황해 때도 그랬지만 하정우는 먹는 연기는 정말 잘합니다. 보고 있으면 나도 먹고
싶어지니..^-^; 멜로 영화도 곧 개봉하던데 너무 많이 나와서 식상한 느낌도 듭니다.
옛날 검사는 진짜 이렇게 했을 것 같다.
"내가 깡패라면 그냥 깡패야" 라는 대사가 인상적인 검사 조범석(곽도원). 진짜 권력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곽도원의 연기 역시 인상적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황해에서는 하정우가 죽이러 가는 대상이었는데,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조폭들 잡으로 다닙니다.
최익현이 “아이고, 검사님. 어깨 마~~이 딱딱해지셨네예.” 라면서 어깨를 만지자. “이 새끼가.” 하면서 확실한 서열을 알려주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서열 정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쩍벌녀 포스.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여사장(김혜은). 쩍벌녀임을 보이면서 역시 서열싸움과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기상캐스터를 하다가 이런 역할을 할려고 하니 힘들었다고 합니다. 음란한 눈빛과 자세를 배웠다는
남편이 영화출연하는 것을 후회했다고 인터뷰하기도 하더군요. 담배만 피우면 음란한 생각이 나서 스스로도 놀랐다고 합니다.
참 신기한게 자세만 바꾸고 껄렁한 태도만 가지면 정신이 바뀝니다.
하정우도 온 몸에 문신을 하니 저절로 조폭같은 자세가 나오더라고 인터뷰하기도 하더군요. 자세가 바르면 정신이
바르고, 자세가 흐트리지면 정신도 흐트리진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최형배의 라이벌인 김판호(조진웅). 불씨를 제공하는 인물. 역시 서열싸움 대상. 범죄와의 전쟁은 서열에 죽고 사는 군상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대표하는 말은 '살아있네' 이겠지만, 보고 있으면 넘버3의 유명한 대사 "누가 '넘버3'래 내가 넘버2야'가 떠오릅니다.
< 범좌의 전쟁 >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투자자를 찿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시나리오만 보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이니까요. 흔한 조폭이야기를 적당한 시대상, 사회상도 섞어가면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재미있 었습니다. 구성도 좋고 연출도 음악도 좋습니다. 주연, 조연 배우들의 열연도 좋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괜찮고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대중은 역시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겠군요. 성공할 것 같은 영화는
실패하기도 하고, 큰 기대 안한 영화가 성공하는 이상한 동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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