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 오노 히로유키
광기와 풍자의 이미지 전쟁
1. 채플린에 대한 의외의 사실.
채플린과 히틀러는 같은 1889년도에 태어났습니다. 같은 년도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친구로 삼는 한국과 달리 그들은 가장 사람 받는 남자와 미움 받는 남자. 각각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둘다 콧수염을 길렀고 예술가를 꿈꾸었다는 점를 제외하면 공통점이 별로 없습니다.
채플린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 옛날 무한도전 말투. 짜잔잔. 콩그레...) 놀랍습니다. 여태껏 유대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그 사실에 대해서 알리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채플린은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하지만 내 몸 어딘가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대답합니다.
채플린은 역사상 최초의 반전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어깨총(Shoulder Armas 1918) .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전쟁이 금기였지만 비극과 희극이 드라마의 겉과 속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전쟁을 코미디 소재로 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어깨총은 영화 사상 처음으로 참호전을 표현하고 전쟁터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유례없는 반전 메시지를 지닌 작품이 되었습니다.
채플린은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자신을 평화선동가(Peacemonger)라고 칭했습니다. 전쟁선동가를 풍자한 조어인데. 평화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았던 점이 흥미롭습니다.
2. 제 3제국의 영화와 이미지 통제. 어라 이거 어디서 봤는데?
유성영화를 통한 선전을 구사해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권력의 정점에 도달한 후 점점 더 미디어 통제를 강화합니다. 나치는 요제프 괴벨스를 초대 장관으로 하는 국민계몽선전부를 설립합니다. 나치의 영화통제는 영화평론과 연구에까지 미쳤습니다. 유대계 잡지 발행처가 전부 독일계 기업으로 바뀌고 유대인을 공직과 영화계에서 몰아내는 등 영화를 선전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미디어를 통치기반으로 삼은 나치는 채플린을 집중력으로 공격합니다. 세가지 이유 때문인데. 유대인이라고 믿었고, 평화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번째가 특이한데 콧수염 때문입니다. 채플린이 먼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유명해졌기 때문에 불평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희극배우로 인해 패러디 대상이 되어 버리니 정치적 권위가 흔들리게 되어 버립니다.
나치는 독일에서 채플린 이미지를 철저하게 금지시킵니다. 그 다음 전략은? 어라 이거 봤는데 싶을 겁니다. 채플린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전략에 돌입합니다. 채플린을 괴롭하기 위해서 표절로 몰아가고 소송을 제기하고 여론몰이를 시작합니다. 물론 억지 소송이었기 때문에 채플린은 표절 재판에서 승소합니다. 나치는 상영금지, 논평금지, 콧수염금지, 소송, 나아가서는 웃음까지 통제하는 이미지 전략은 국가 통치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3. 누가봐도 히틀러인 위대한 독재자. 쉽지 않았던 제작과정
나치가 세력을 무섭게 확장해 나가고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채플린은 "우리는 4년 동안 지속된 지옥과도 같은 제1차세계대전의 상흔을 그렇게도 빨리 잊을 수 있었을까?" 회상했습니다.
누가봐도 나치와 히틀러를 패러디 한 듯한 영화 < 위대한 독재자 >는 제작동기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1937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 프로듀서인 알렉산더 코르다가 히틀러와 방랑 신사 찰리 모두 똑같이 수염을 기르고 있으니 이 점을 모티브로 삼고 "히틀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한 설이 있고. 아들 찰스 주니어는 채플린의 영화 < 황금광 시대 >가 독일에서 상영금지 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최종적으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놀라운 점이 있는데. 미래에 일어날 나치의 강제 수용소 실태를 정확하게 예언했습니다. 채플린이 강제 수용소 메모 각본을 쓴 날로부터 3년이 지난 1942년 1월 반제회의에서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책이 논의 되었습니다. 나치는 1942년 절멸 수용소를 건설하고 유대인과 로마의 절멸 정책을 본격화 했습니다.
채플린은 "당시 내가 나치의 강제수용소가 어떤 곳인지 알았더라면 <위대한 독재자>는 만들지 모했을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나치의 살인을 어떻게 순진하게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겠는가"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독재자는 제작 단계부터 논란이 되었습니다. 영화를 완성하더라도 상영할 극장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히틀러 유화정책을 표방하던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상영이 금지될 공산이 컸습니다. 수입의 35%를 차지하는 영국 식민지에서 상여기회도 잃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나치는 <위대한 독재자>소식을 듣고 채플린을 거세게 공격했습니다.로스앤젤레스 주재 독일 영사인 게오르그 기슬링은 제작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압력을 넣는 등 여러 방면으로 제작과 상영을 막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과 독일은 동맹국인 상태라 반나치 영화는 전세계에서 상영이 금지될 판이었습니다. 이는 해외매출의 절반이 차지하는 헐리우드 영화에 심각한 타격이 될게 분명했습니다. 막상 자유주의 진영도 영화로 인해 일이 터지자 침묵했습니다.
몬터규는 당시의 상황을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할리우드 놈들이 겁쟁이라는 사실이다"
할리우드가 겁쟁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헐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문제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형편없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 일련의 사고들이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다", "내가 들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했다"며 "당시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을 했더라면 나는 와인스타인과 함께 일하지 말아야 했을 것"
그 무리들에게 냉소를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업계에서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평소에 좋은말을 하며, 그럴듯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다 어디 갔을까요? 영화 메시지만 그럴 듯 하게 내보내면 뭐합니까? 실행을 안하는데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평소에도 카메라 앞에서만 키보드 앞에서만 잘난척하는 패션진보와 같은 행동은 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채플린에게 가장 놀랐던 사실은 바로 이점입니다. 그저 우스꽝스러운 광대인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협박과 만류를 뿌리치고, 측근들도 히틀러를 묘사하는 듯한 연설 때문에 흥행수입이 100만달러는 줄어들다고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채플린은 500만달러가 날아간다고 해도 상관없다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습니다.
채플린은 입으로만 떠드는 인간들과 비교하면 참 다르네요. 용기를 내라고 굳이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도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삽니다. 침묵하는 겁쟁이로 살면 됩니다. 단 잘난척 하지는 말아야겠죠. 안전한 지역에서 카메라만 보며 좋은 말 만하는 속이 텅텅빈 껍데기에 불과한 인간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전쟁 : 마지막에 남는 것은 진실이다.
채플린이 만든 <위대한 독재자>는 흥행에 성공했음은 물론 시간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독재자>의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찰리 채플린의 행동이 오히려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히틀러와 채플린은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최고로 만드는게 성공했습니다. 현실세계 뿐만 아니라 미디어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존귀한 이미지는 날이 갈 수록 힘을 잃어갔고 채플린의 이미지가 승리했습니다. 히틀러가 아무리 대중선동에 능하다 하더라도 진실을 영원이 가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채플린이 이미지가 히틀러의 이미지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계 사람들이 웃었기 때문입니다. 웃음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과 자극적인 선전이 진실을 순간적으로 압도하지만 우직함과 유머가 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제3국 제국의 미디어 통치는 박근혜 정부의 통치와 아주 비슷합니다. 미디어를 통제하면서 권력을 움켜지려고 했습니다. 유머와 풍자가 사라졌다는 점, SNL에서 어는 순간부터 정치 풍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희극배우들에게 재갈을 물렸다는 점 역시 비슷합니다. 찌질한 정부는 반대파를 탄압하는데 권력과 정보를 마음껏 이용했습니다.
영화 <변호인>이 박근혜 정부내내 TV에서 방영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영화 상영을 통제했던 나치의 선전부와 다를 바 없습디다.
가장 어이가 없는 건 국정원이 배우 문성근과 김여진의 합성사진을 뿌려서 유포한 사실입니다. 이 찌질한 짓거리를 정부기관에서 한다는 점. 북한에서 공작을 수행하다 실패한 것도 아니고 합성 사진이 실패사례로 올라가야 하나요? 원래 안 믿었지만 국정원에 대한 불신이 더더욱 커집니다. 애네들은 과연 밥값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뭘하고 다는지 아무도 모른데? 누가 그들을 감시하지.
반대로 찌질한 정권은 북한 정권이 매우 부러웠는지 추종자들에게 우상화 작업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언론의 형광등 아우라. 비속한 말이지만 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됩니다. "아주 X를 빠네" 그들은 몸을 파는게 아니라 자신의 정신을 팔았습니다. 몸 파는 인간들과 다를게 없습니다. 좋았겠어요. 헐도록 빨아대면서 칭찬받고 지갑을 채웠을테니. 아니 잘못을 자각조차 못하니까 더 최악입니다. 할수 있다면 솔방울로 폭탄을 만들고 모세처럼 바다를 가른다고 표현했을 겁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외부로 알린 사람이 영화 택시운전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입니다. 히틀러에게 선동되어 세계 전쟁을 일으키는데 동의한 독일국민. 그 후손이 아주 먼 한국으로 날아와 진상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재미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역사는 어떤식으로든 반복되게 되어있구나. 민주주의 시스템 하에서도 권력을 마음껏 희두르는 지도자가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 자유와 권리가 제약된 중국이나 러시아 제3세계는 이 보다 더할겁니다. 견제받지 않는 독재로 나아가는 시진핑과 미래 중국이 모습이 그려집니다. 중국 미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책을 읽고 평을 내리자면.
가장 위험한 사람은 웃음을 막으려는 자입니다. 웃음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을 믿지 마십시요.
채플린 삶과 우여곡절이 많았던 위대한 독재자의 제작 과정, 더 나아가서 지금 현실을 보면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플레이션의 시대 : 한 번은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0) | 2017.11.02 |
---|---|
전쟁에서 살아남기 : 두려움 없이 용기도 없다 (0) | 2017.10.08 |
아날로그의 반격 : 디지털 시대에는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 (0) | 2017.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