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의 역설 : 반성을 시키면 범죄자가 된다
책은 ‘잘못한 사람에게 반성을 요구하지 마라’ 도발적인 주장으로 시작됩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반성을 요구하지 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다음에 반성하는 것은 세상의 상식인데 상식 밖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패턴은 이렇습니다. 잘못을 한다-> 사과하고 반성한다 -> 끝. 처음 한 두번은 실수라고 해도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말합니다.
잘못-반성 패턴으로는 누군가는 큰 범죄를 저질를 수 있고 반성만을 강요하면 그 사람은 언젠가 범죄자가 되고 만다는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반성만을 강요 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고 더 나아가 강요된 반성으로 더 큰 범죄를 저지른다고 주장합니다.
잘못과 반성을 반복하다가 범죄를 저지르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교도소에 수형된 수감자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수도 없이 혼을 나고 반성도 해왔습니다. '잘 못했습니다.' '두 번 다시 안 그러겠습니다.' 고 반성해도 결국에는 나쁜짓을 저질러 교도소에 옵니다.
교도소의 교육방법은 주로 반성하기입니다. 반성을 통해 교화를 하는게 목적입니다. 피해자 유가족이 고통을 호소하는 영상을 시청하고 감상문을 쓰는 방식입니다. (국내에서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경우) 저가가 수형자들 갱생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것은 '반성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대부분 어린시절부터 마음에 상처가 있고 어린 시절 부터 부모에게서 감정표현을 억압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른채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해야한다는 건가? 그들의 과거로 되돌아가 '억압된 감정 토해내기->자기 이해->내면 직시->문제 개선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반성을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반성이란 죄를 저지란 자가 자신의 죄를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한 결과 자연스레 나오는 죄의식이야말로 진정한 반성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대한 이해가 먼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했다고 반성과 개선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을 보고 생각난게 드라마
'유나의 거리'입니다.
유나는 왜 소매치기를 하는가?
최근에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JTBC에서 방영중인 <유나의 거리>입니다.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도둑의 딸>로 유명한 김운경 작가가 극본을 썼습니다. 막장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아서 인지 시청률이 좋지 않지만 혼자 보기 아깝다고 느낄 정도로 괜찮은 드라마입니다.
'강유나'라는 소매치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아주 특이하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생활속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재미가 있고 주연을 비롯해서 조연들에게도 골고루 초점을 맞춰주어 이야기도 풀어나가고 강한 캐릭터도 부여하는 점이 이 드라마의 매력입니다. 이희준,김옥빈,이문식을 제외하면 유명배우들이 등장하지 않지만 각자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주고 있습니다.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본 배우들이 많을 정도입니다. 연기를 괜찮게 하는 배우들이 많습니다. 단지 그들에게 기회가 없었을 뿐이겠죠.
여기서 유나의 거리를 왜 소개하느냐? 잘못- 반성 패턴으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유나(김옥빈 분)는 아버지가 전설적인 소매치기로 자신도 기술을 이어받았습니다. 유나는 이미 전과 3범의 전력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소매치기를 그만두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한평생 소매치로 살았던 유나의 아버지는 죽지 직전에야 진정한 반성을 한 것입니다. 유나는 아버지의 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매치기로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잘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반성을 하지 않는다.
홀연히 나타난 김창만(이희준 분)이 유나에게 반하고 맙니다. 창만은 소매치는 나쁜일이라며 하지 말라고 하지만 유나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며 무시합니다. 소매치기를 끊게 만들고 싶은 창만은 유나에게 근복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유나의 과거로 되돌아가 상처를 치유하는 것만이 손을 씻게 만드는 해결책이란 사실도 깨닫습니다.
유나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습니다. 소매치기 남편에 속아 결혼한 엄마는 집을 나갔고 유나는 혼자 남게 됩니다. 소매치기 딸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컷고 고독과 스트레스를 받은채 살아왔습니다. 유나에게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모습이 보여집니다. '지면 안된다.' '강하게 보여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강해보이려고 합니다. 유나는 약한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여자이지만 남자처럼 보이고 강한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멋있다고 인정받으면서 부족한 사랑을 채우려고 합니다.
다음글의 묘사된 특징이 유나에게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나 과거 신세졌던 사람이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거절과 도망은 남자답지 못한 태도이므로 그런식으로 행동하면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독을 몹시 두려워해 끊임없이 기댈 곳을 찿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은 소속된 곳은 안식처가 아니라 단순한 '아지트'일 뿐이다. 안식처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편히 쉴 수 있는 곳, 마음놓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무리해서 강한 척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곳은 절대 마음 편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또 그들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 사실은 진심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만 솔직하게 사랑해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 번도 누군가에게 애정을 표현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부모(혹은 양육자)가 애정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일이 바빠 집을 자주 비우는 경우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P.148
눈물을 흘려도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아이는 아프더라도 우는 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로 인해 '강한 사람은 울지 않는다'는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파도 눈물을 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장하다고 칭찬을 해주고 울지 않아야 강한 사람이 생각이 더 확고해져서 '남자다워야' 한다는 가치관이 강하게 자리잡습니다.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는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드라마에서 유나가 울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남자라면 담패를 피우거나 싸움을 하는 방법으로 또는 몸에 문신을 그려넣어 자신의 강함을 어필합니다. 유나는 소매치기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매춘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 물론 극에 넣기에 과한 설정입니다.) 꽃뱀 역할이자 같이 사는 언니인 김미선(서유정 분)에게 특징이 보입니다.
유나는 거친 세상에서 아무런 보호도 없이 자라났기에 스스로가 만든 성안으로 숨어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니다. 그런 유나 옆에 김창만이 나타난 것은 행운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구체불능'이란 마침표를 찎고 관계를 종결하겠만 사랑에 눈이 먼 김창만은 유나의 히스테릭한 성격을 다 받아줍니다. 언제든지 자신에게 기대라고 말하며 유나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을 끄집어 내어 변화를 유도합니다.
흥미롭게도 유나와 만난 현정이(역시 소매치기)란 인물은 유나와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부모도 없이 살아가고 소매치기로 삶을 살아가는 소녀. 자신의 과거를 그대로 재생하는 듯 보입니다.유나는 관계도 없는 현정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풉니다. 김창만은 유나에게 사랑을 줍니다. 내색하지 않지만 유나에게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생겼습니다. 유나는 현정이게 사랑을 줍니다. 사랑을 받아온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유나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러니까 약한 모습을 처음으로 보이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합니다.
유나는 저자가 말했던 억압된 감정 토해내기->자기 이해->내면 직시->문제 개선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완결된 드라마가 아니니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모르지만 개선이 될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사람의 존재를 깨닫고 됩니다.사람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죄의식이 발현되면서 진정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늘 유쾌하고 긍정적인 창만에게는 과거의 상처가 없을까?
<유나의 거리>는 유나가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정말 궁금한 것은 창만의 모습입니다. 창만은 아주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유쾌하고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매사에 적극적입니다. 정도 많고 다른 사람의 일도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줍니다.
그런 창만도 씁쓸한 과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존재하지 않았고 믿고 따르던 외삼촌에게 도둑질 누명을 받고 집을 나와버립니다. 극에서는 창만의 자세한 과거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등장인물에 과거와 맞닥드리는데 창만 만큼은 이상하게 예외입니다. 창만은 오지랖이 넒다는 점을 빼면 별다른 결점도 보여지지 않습니다. 늘 좋기만 하지않고 인물의 부족한 모습을 그려내는 드라마인점을 감안하면 이상합니다.
유나는 과거의 상처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고 창만은 상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서 대비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것일지도 모릅니다. 창만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긍정적인 껍질을 둘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창만에게도 과거와 화해를 하는 모습이 나오고 유나에게 기대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주는 모습이 나와준다면 좋겠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책은 반성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진정한 반성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기는데 먼저다고 말합니다. <유나의 거리>에서는 결점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전과 3범의 소매치기. 건달,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사람, 꽃뱀 등 현실에서라면 같이 있기도 싫은 사람이 나옵니다.
주인공 버프를 받아서 그렇지 누가 유나같은 사람을 좋아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도 이해와 존중을 구하면 변화될 수 있고 진정한 반성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거라는 점에서 결점이 많은 존재인 인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성의 역설>은 재소자. 문제아들을 사례로 들고 있지만 보통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일은 누구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저자의 견해와 달리 엄벌주의를 지지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바라바고 이해를 해야 한다는데에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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