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서민의 기생충 열전 : 착한놈, 나쁜놈, 이상한놈

네그나 2013. 9. 26. 09:30


개인적으로 기생충에 흥미가 있습니다. 기생충, 이놈들은 생존방식이 특이합니다.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고 다른 생명체에 터전을 잡고 살아갑니다. '왜 밖에서 아둥바둥 사나? 들어가서 살면 된다.'이것은 혁신적인 방식입니다.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닐 일도 없고, 안전이 보장되고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넉넉히 먹지는 못할지라도 굶을 일이 없습니다.



‘기생충 같은 놈’ 경멸적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기생충은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놈들의 삶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삶이죠. 영화 신세계를 보면 경찰 출신인 이자성(이정재)가 신분을 숨긴 채로 범죄조직 골드문에 침투합니다. 이자성은 골드문 고위직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조직의 정보를 경찰에게 제공합니다. 이자성의 생존방식은 기생충과 다를 바 없습니다. 범죄조직과 숙주에 침투, 조직에서 무엇인가를 빼돌리고 (정보와 영양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생충과 첩자는 숙주와 조직을 망칩니다.



이자성은 자신의 정체가 언제 탈로 날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삶을 삽니다. 정체의 탄로는 곧 죽임입니다. 기생충의 삶은 생존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해야 하는 삶입니다. 항상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는 면역체계를 피해야 합니다. 상대국이 스텔스 전투기를 배치하면 따라가야 하는 것처럼 면역체계가 업그레이드를 하게되면 그에 맞춰 대응해야 합니다.영원히 끝나지 않을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 기생충도 뒤져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뛰어야합니다. 숙주가 효과적인 대처법을 개발한다면 한순간에 멸종의 길을 걸을지도 모릅니다.





기생충을 다룬 교양서가 몇 권 있는데, 칼 짐머가 쓴 < 기생충 제국 >, 기생충 학자가 쓴 <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가 읽어볼 만합니다. 단국대 교수인 서민이 쓴 < 기생충 열전 >은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된 글 묶은것입니다. 딱딱하지 않고 필자의 재치 있는 글 솜씨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 아! 나도 이 정도 글 솜씨가 있으면 좋겠다.)



기생충의 숙주를 차별합니다. 공공화장실을 더럽게 쓰는 사람도 자기 집 화장실은 깨끗하게 사용합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려도 집에 버리지는 않습니다. 기생충이 잠깐 머물렀다가 갈 숙주는 막 다른 수 있지만 죽는 날까지 살아야할 터전은 되도록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합니다. 집인 숙주를 망가뜨리면 숙주도 대책을 마련할 테고 결국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옵니다. 회충이나 요충처럼 인간과 오래 살아온 기생충들은 사람 몸에 기생해도 별다른 증상이 없습니다.



기생충과의 인류의 공존이 오래되다 보니 이런 현상도 일어납니다. 알레르기가 흔해지고 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알레르성 비염이 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눈에 띄게 환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을 알레르기 질환이라고 부릅니다. 신기한 것이 잘사는 나라에서 이 질환들의 빈도가 크게 늘었다는 점입니다. 과거보다 위생도 좋아졌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1989년 영국의 스트라칸 박사가 형제수가 많을수록 아토피 방별률이 낮아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를 통해서 가설이 일리가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알레르기는 병원균에 노출되어서 생기는데 형제자매가 많다보면 한두 명이 병원균을 묻힌 채 집에 들어오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구성원 전체가 병원균에 노출됨으로써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외동아들로 귀하게 자란 아이는 병원균에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아토피에 걸리기 쉽다는 게 위생 가설의 주요 내용입니다.



위생가설에 힌트를 얻어서 기생충과 알레르기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기생충이 박멸된 나라에서는 알레르기가 많은 반면 베네수엘라나 에콰도르처럼 기생충이 많은 나라에서는 알레르기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기생충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면연체는 기생충을 감시해왔는데 어느 날 기생충이 사라졌습니다.할 일 없는 놀고 먹게 된 면역세포들이 과민해져 비슷한 놈만 봐도 난리를 피우는 게 알레르기입니다. 호흡기라면 숨쉬기가 곤란해지는 천식이, 피부라면 가려움과 더불어 빨갛게 되는 아토피가 일어나고, 코 점막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알레르기성 비염이 일어나게 됩니다.



돼지편충돼지편충은 좋은놈이 될까




위생 가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생충이 사라져 알레르기가 증가한다면 반대로 알레르기를 완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장을 침범하는 크롬씨병의 경우 사람에게 두 달 정도 살다가 금방 빠져나가는 돼지편충을 이용해 증상을 호전시킨 사례가 있고 당뇨병의 경우에도 주혈흡충의 알을 이용해서 쥐에게서 당뇨병이 생기는 것을 막았습니다. 독을 독으로 제압하는 느낌이랄까?



책에서는 다양한 기생충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림프사상충입니다. 방송이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워 시청률을 올리는 것처럼 림프사상충의 증상도 자극적입니다. 림프사상충에 걸리게 되면 다리나 팔, 가슴이나, 고환이 붓게 됩니다. 피부가 두꺼워지는 게 마치 코끼리 피부 같다고 해서 상피증(elephantisis)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림프사상충은 수컷이 4센티미터, 암컷이 6~10센티미터로 크게 위협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숙주와도 우호적이라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일이 없습니다. 일이 터지는 것은 림프사상충의 수명이 끝나는 5~8년입니다. 사상충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단백질이 혈액 속으로 나오면서 격렬한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열이 나고 림프절과 림프관에 심한 염증이 생깁니다. 림프관 염증은 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림프가 제대로 운반되지 보니 림프가 고여서 팔이나 다리가 붓게 됩니다.



림프사상충 증상림프사상충증에 걸려 두 다리가 부은 필리핀 환자 <출처: CDC>


이 때 붓는 것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부종으로 여기서 치료하면 원래 팔, 다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진단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 병변은 계속됩니다. 세균들이 마구 모여들고 염증이 있다가 낫는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섬유질이 두껍게 쌓이게 됩니다. 이 때 부종은 섬유질이 축적된 결과인지라 손가락으로 아무로 눌러도 들어가지 않고 환자는 두꺼워진 팔이나 다리를 가지고 여생을 살아야 됩니다.



영구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림프사상충은 정말 나쁜 기생충입니다. 림프사상충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감염원인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 걸릴 일이 희박하고 적도 근처에서 유행입니다. 다리가 붓기 전에 진단이 되면 디에틸카바이진 이라는 약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림프사상충은 메디나충과 함께 반드시 박멸시켜야 할 기생충입니다.



영화의 소재로도 사용된 연가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가시는 10cm~ 1m의 크기로( 2m가 넘는 것도 발견된 적이 있음) 사마귀에 기생합니다. 연가시는 숙주를 조종, 물에 빠져 죽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숙주를 조종해서 죽게 만들기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마귀는 이래저래 수난입니다. 사마귀 수컷은 짝짓기 후에 암컷에 먹혀 죽고, 연가시에 감염되면 물에 빠져 죽습니다. ( 영원히 고통 받는 사마귀?)


연가시사마귀에서 나오는 연가시. 실제로 봤으면 좋겠다.


사마귀가 물에 들어가면 연가시는 사마귀 배에서 빠져나옵니다. 연가시가 유명해진 이후로는 사마귀 배속에는 항상 연가시가 있는 걸로 생각하는데 찾기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 사마귀를 좀 죽여 보았는데 배를 뚫고 나오는 연가시를 본적이 없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마귀는 연가시에 감염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연가시는 1급수에서만 살 수 있어 도시 하천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EBS 다큐 프라임팀도 연가시를 촬영하기 위해 전국을 뒤져보다가 겨우 발견해서 촬영에 성공 했습니다. 연가시는 생각 만큼 흔하지 않습니다.



연가시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연가시가 사람에게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연가시에게 맞는 종숙주가 아니기 때문에 성충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모르고 연가시, 유충을 삼킨다 하더라도 죽어서 대변으로 나오게 됩니다.



영화처럼 변종 연가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려면 우리가 최소한 1백년 이상 사마귀나 귀뚜라미 같은 곤충을 날로 먹는 식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자라다만 연가시가 들어와 사람 속에서 자랄 수 있고 사람 몸이 마음에 든 연가시가 변이를 일으켜 변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설사 변종이 일어나더라도 구충제 한 방이면 굿바이 할테니 상관없을 겁니다. 정말 무서운 놈들은 말라리아 같이 작은 놈들이지 연가시는 아니겠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