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Our Kids. The American Dream In Crisis)
빈부격차는 미래세대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로버트 D. 퍼트넘 / Robert D. Putnam
2015년에 가장 크게 유행한 단어 중 하나가 '흙수저'입니다.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는계급격차를 자조하는 흙수저는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입니다. 세태를 반영해서인지 이번 총선에는 '흙수저당' 이라는 명칭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닫혀지고 좁아져가는 기회에 공감한다는 의미일겁니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드림으로 상징되는 미국은 어떨까? 신문과 미디어에서 맨손으로 기회를 쟁취하고 커다란 부를 얻은 성공한 사람들을 주목하지만 ( 이런 사례가 잘 팔리기 때문에) 미국 역시 수저(출생)에 의한 계급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게 이 책의 내용입니다. 아니 한국 보다 휠씬 수저에 의한 격차 정도가 휠씬 심합니다. 어느 정도인가. 가슴 아픈 사례가 있습니다.
한 노동자 계급의 아버지가 저자와 인터뷰에 어린 딸과 아들을 데려와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어린 소녀가 실제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만날 수 있다는 것, 단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본받을 만하고 진로와 장래를 멘토링을 해줄 사람이 주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p.311)
90년에 비교체험 극과 극 이란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최고와 최저를 두고 비교하고 차이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서는 높은 수준의 교육환경을 가진 아이들과 비참한 수준에 놓여진 아이들을 환경을 비교합니다. 환경으로 인해 그들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추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은수저를 들고 나오지.(Some folks are born silver spoon in hand.)"
50년대의 미국은 지금과는 달랐다. 지금과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대 미국의 이미지와 50년대의 미국은 전혀 달랐습니다. 따지고 보면, 흑인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것도 100년이 채 안됩니다. 저자의 고향인 포트클린턴은 지금처럼 계급에 의해서 주거지가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자녀와 전문직 계급의 자녀가 학교에 뒤섞여서 어울려 지내며 활동했습니다. 경제력, 가족 구조, 양육, 학교, 이웃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는 배경이 어떻든 간에 양친과 함께 부모가 소유한 집을 살았고 누구나 서로 이름을 알고 지내는 이웃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전후 번형의 혜택을 받았고, 소수의 가정만이 빈곤에 허덕였습니다. 마을에서 극소수인 부유한 배경을 가진 자녀들은 자신이 부유하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후 대부분이 은퇴한 지금에서는, 다들 놀랄만한 지위상승을 이루었습니다. 부모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해졌습니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 출신도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이 되었습니다. 인종에 의한 장벽마저 넘어서서 두 명의 흑인 학생은 대학원 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1950년대 학생들은 이상할 정도로 지위상승을 경험했습니다. 사회적 계급의 대물림은 없었고 계급이동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걸 알지 못했지" 과거 세대는 물질적으로 부족했을지 몰라도 부유한게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지원과 깊이. 오늘날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회적 네크워크도 자원이다.
높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그 시대의 삶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한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를 알았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내집과 남의 집이라는 구분이 없다는 듯 모두가 섞여서 사는데 드라마적인 과장이 다소 있다 하더라도 그 때는 그랬습니다.
미국 역시, 한 때는 그랬습니다. 마을은 백인 노동자 계급 주거지 였기에 모두가 이웃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거리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지켜주었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아이들을 알고 있었고 관심을 가져 주었으며, 공동의 육아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웃은 공장 노동자, 사무실 근무자, 변호사등이 한 블록에 안에 살았습니다. 이제는 변호사의 아이들은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과 같이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범죄와 마약의 증가되어 거리의 풍경이 변했습니다. 경찰은 총격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도보순찰을 하지 않습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넓고 깊은 사회 관계망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자본을 얻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네트워크는 가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많은 수의 친구와 지인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벌리는 요인이 됩니다. 가족과 친구와 같은 강한 유대 관계보다 인사만 하고 지낸다거나 친구와 친구같은 약한 유대관계가 일자리를 찿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앤드류는 직업을 찾으려 할 때 부모님이 지니고 있던 가게 주인과 지역 소방서장의 약한 유대 관계를 이용했다.
오렌지 카운티의 클라라는 우연하게도 대학 교수와 학장인 두 친구에게 아들의 대학 지원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p.302)
대졸자를 생전 처음 본 다는 어린 소녀처럼 처럼, 가난한 부모는 네크워크 접근차체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 셀러 <아웃라이어>에서는 IQ 180에 이르는 천재, 크리스토퍼 랭건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묻힌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누군가 크리스토퍼를 알아보고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면 그의 인생은 분명히 달라졌을 겁니다. 크리스토퍼와 비교되는 사례를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반친구 흑인 여성 셰릴은 똑똑했고 친구들처럼 대학에 가려 려했으나 교육에 무지한 부모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집안 형편도 대학에 보낼만큼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손길이 받게 됩니다. 셰릴의 어머니가 집 청소를 해주던 백인여자가 셰릴의 우수한 학교 성적에 대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백인 여성은 아무도 셰릴에게 대학진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백인 여성은 포트 클린턴에서 가장 큰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남편으로 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셰릴의 대학 진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위해 모피코트를 걸치고 교장 사무실로 당당하게 돌진하던 그 숙녀분이 없었다면 나는 어느 곳에서도 갈 수 없을 거야. 그것도 두번 씩이나!
크리스토퍼의 한계는 약한 네트워크입니다. 노력만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만으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천재건 어떻건 단에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면 기회의 문을 두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이웃은 누구인가?
이웃이 어떤 사람들인가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웃의 영향은 유아기 떄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고 그 다음은 10대 후반에 다시 나타납니다. 이웃의 빈곤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사실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획득할 수 없는게 있습니다.
성격과 관계없이 부유한 마을에 살게되면 이웃을 더 많이 알게되고 신뢰하게 됩니다. 청소부나 아법률가 모두 부유한 이웃에 살게 된다면 그들은 이웃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신뢰하게 됩니다.가난한 아이들은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삶은 그들에게 아무리 조심을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총격을 가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무리는 아닐겁니다.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랑은 너를 상처받게 하고, 신뢰는 너를 살해당하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은 신뢰라는 믿음을 회득하지 못합니다.
전 사업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가족부터 시작해서,(IMF 때 많이 격였겠죠.) 주위 사례들이 온통 실패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공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실패가 다수입니다. 계속 실패만 본다면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바라볼까요? 방어적이고 수동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시각이 다르지 않을까. 부유한 네트워크에서는 상대적으로 성공 사례를 찾기가 쉬울겁니다. 물론 사업과 창업이라는게 반드시 부와 연결되지 않을겁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하기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넉넉하지 못하다고 성공하지 못하는 건 아니고 부유하다고 실패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와 기회, 성공에 대해서 바라보는 인식이 그가 속한 환경에 따라 다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저론은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저자는 미국의 격차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사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포트클린턴의 평범한 배경을 딛고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간과했던 것은 그에게 마침 행운은 따라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는 시기였으며, 공동체적이며 평등주의적인 시대배경과, 안정된 가정과 공동체, 공공기관 덕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운이 좋은 사람에게 기회 격차가 왜 문제가 되어야 할까? 가난한 아이들이 경제, 민주주의, 가치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정치와 민주주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영향을 끼칠 요인으로 기술진보와 빈부격차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둘은 따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알파고 대국 때문에 인공지능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입니다. 인공지능 기술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것이며 빈부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한으로 일하지 않아도 돈을 주는 기본소득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죠.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에 국가의 부는 20% 혹은 1%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80%는 일이 없어 기본소득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 성립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병역도 제공하고 세금도 내는 등 어떤식으로 공동체에 기여를 하지만 오직 받기만 한다면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주장할 수 없다는게 생각입니다.
빈부격차는 심한 사회에서는 극단적인 구호에 끌리기도 쉽습니다. 콘하우저는 <대중사회의 정치>에서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그리고 미국의 메카시즘과 같은 선동적인 대중 운동이 가장 취약한 시민들이 정확하게 "공동체에 공식적, 비공식 활동이 참여가 기회가 가장 적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지금, 어그로를 심하게 끄는 트럼프가 미 대선후보로 큰 지지를 얻는 걸 보면 됩니다. 저소득층의 박탈감과 분노가 사회를 어떤식으로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트럼프와 샌더슨의 등장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갑자기 든 생각. 어머니가 일하시던 가게에서 폐지를 주워가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손주와 손녀가 두명(세명 이었나?)을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부모 없이 할머니가 돌보는 건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폐지 모아서 팔고 생활 보조금 받아서 생활한다고 하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내 주위에서는 그런 사례를 못 보았으니까.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난은 주위에도 있었는데 인식을 하지 못햇습니다. 생계도 생계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밝지는 않을 겁니다. 냉정하게 보면 그들은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느 시대에 성장했는지 따라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학창시절, 친구나 주위, 학우를 보면 다 고만고만했습니다. 분명히 집마다 격차는 있었지만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살아가는 동안 가난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삶에서도 가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허나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사회를 바라보며 흙수저라고 자조하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희망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겁니다. 흙수저 단어는 계급격차, 빈부격차가 바꿀 미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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