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에서는 기업형 범죄조직 골드문에 경찰 이자성(이정재)이 신분을 감춘채 잠입합니다. 이자성은 골드문
서열 2위인 장청(황정민)의 오른팔이 됩니다. 신세계는 잠입경찰 이정재의 줄타기를 보는게 포인트입니다. 이자성은 골드문에 대한 정보를 속속 경찰에 넘겨줍니다. 조직원들은 정보가 새나가는 걸 의아해 하고 마침내...
신세계는 경찰과 범죄 조직간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스케일을 키우면 국가간에 일어나는 일이 됩니다. 전쟁과 냉전의 도래는 스파이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각국은 정보를 얻는데 혈안이 되었고 스파이를 포섭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스파이 활동 자체가 기밀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므로 보통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공적인 작전은 당사자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간혹, 작전 실패가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국정원의 실패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2월 16일. 국정원 요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머물던 롯데호털에 잠입해 노트북을 훔치다가 들켰습니다.(역시 실전은 영화와 다른가 보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기는 한데 국정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 공작을 하다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쓰고 보니 작전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깨알 작전들이군요.
영국하면 유명한게 많습니다. 특수부대인 SAS. 비밀정보 기관인 MI6. MI6는 007의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이기도 합니다. 유능하게 묘사된 영국의 정보기관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1951년 5월 25일. 영국의 방첩기관 MI5는 영국의 외무부 미국과 과장 도널드 맥클레인과 위싱턴 주재 영국대사관 일등 서기관 가이 버제스가 행방불명 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의 행방불명 이후에도 수사가 계속 진행되었고 귀족 4명을 포함한 명문 캠브리지 대학 출신 5명이 2차대전 전부터 냉전초기까지 17년동안 소련의 정보기관과 협력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골드문의 핵심에 다가간 이자성처럼 소련은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을 포섭해 영국의 중심부에 밀어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명문 캠브리지 출신, 4명은 귀족출신,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그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했을까? < 나의 캠브리지 동료들>은 영국 공작원들을 관리한 KGB 공작관의 회고록입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5인방(Cambridge Five)
해럴드 킴 필비, 도널드 맥클린, 가이 버제스, 엔서니 블랜트, 존 케른크로스. 모두 케임브리지 대학출신입니다. KGB(소련의 정보기관)은 눈부신 활약을 모인 이 5명을 케임브리지 5인방(Cambridge Five)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소련의 입장이고 영국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2차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세계정치 진영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케임브리지 5인방이 제공한 정보는 내용이 충실한 동시에 간결해 지도부는 '5인방'문서만 담당하는 번역가를 지정할 정도였습니다.KGB지도부는 영국인 5인방의 위대한 공로를 인정해 평생연금을 부여하기로 결정할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보였습니다.
해리 킴 필비는 영국 비밀 정보 기관 MI6의 9과 과장이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9과의 임부는 소련의 정보활동과 공산당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비밀기관이 소련공작원과 투쟁해야 하는 9과 과장으로 소련 공작원을 임명한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해리 킴 필비의 아버지도 아들과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해리 필비는 영국의 정보기관에서 얻은 첩보를 이븐 사우드 왕에게 제공했습니다.
킴 필비
가이 버제스는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소유자였습니다. 버제스의 날카로운 지성은 어떤 어려운 개념도 이해할 수 있어었습니다. 버제스의 의견은 항상 정확하고 독창적이며 남들과 달랐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1932년 버제스는 학업에 저념하지 않았는데도 역사 학위 과정 1학기 시험에서시험관이 기절할 정도의 지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버제스는 자신의 지식인, 귀족출신임에도 노동자를 깊이 동정했습니다. 노동자를 위한 권리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가이 버제스를 케임 브리지에서 가장 훌륭한 학생이었다고 증언합니다. 필자 역시 버제스의 생애를 뒤돌아 볼 때, 이토록 재주 있는 학생이 자기 앞에 열린 밝은 앞날을 희생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상류사회 출신에 외교관인 사람이 사람이 전 세계 혁명이라는 이상을 위해 일한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보상도 약속되지 않은 위험하고 감사하다는 말도 들을 수 없는 일을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가이 버제스
도널드 맥클린은 조용하고 감성적이며 비사교적인 아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장료교 교인이었으며 교육주 장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케이브리지 태학에 입학한 후 가이 버제스와 만나게 되었고 밤늦게까지 정치와 마르크스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맥클린은 자신이 죽는날까지 공산주의 신념에 충실했습니다.
5인방에 마지작으로 합류한 사람은 존 케른크로스입니다. 케른크로스는 케임브리지 공작망의 5번째가 되었습니다. 케린크로스는 다른 공작원들과 다른 삶을 살아서 더 흥이롭습니다.1913년 글래스고의 중산층에서 하류계층에서 태어났습니다. 케른크로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현대언어학부에 입학했습니다. 입학초기 부터 하류 출신의 신분으로는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젊은 케른크로스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특권층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경쟁자들은 좋은 인맥을 있어 부끄럼 없이 이용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불공정성이 케른크로스는 공산주의자로 되도록 결심하지 않았나고 추측합니다.
케임브리지에서 학업을 마친 케른크로스는 외무부에 지원원서를 제출하는데 당시 관례와 달리 필수 시험도 보지 않고 통과되었습니다. 케른크로스는 여러과에서 경험을 쌓았지만 동료들 가운데 누구와도 친분을 쌓을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멸시했습니다. 케린크로스의 NKVD와의 협력은 동료들의 조롱이 가슴에 불러일으킨 증오심에서 유래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케른크로스는 2차대전중 중요한 정보를 소련에 많이 제공했습니다. 몇가지를 소개하면 독일의 새로운 신형탱크인 티거(Tiger)의 기술적 자료였습니다. 1942년 제작된 티거 탱크는 쿠르스크 전투에서 대규모로 투입되었습니다. 티거 탱크의 주요 특징은 소련이 가진 포탄으로 장갑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소련이 티거 탱크를 막을 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케른크로스가 보내준 문서들 덕분에 소련은 강철의 질과 장갑을 두께를 연구한 뒤, 티거를 무찌를 수 있는 포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1943년 7월 쿠르스크에서 벌어진 탱크전에서는 이틀동안 2000대의 탱크가 싸웠습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존 케른크로스 덕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독일의 전투계획이었습니다. 1943년 봄, 영국 정부는 소련 총참모부에 쿠르스크에 독일이 준비하고 있던
공격에 대해 통보했습니다. 독일이 이 지역의 모든 소련군 부대의 정확한 배치상황을 알고 있다고 통보했습니다.
케른크로스는 한 발 더 나가서 크레신에게 도청된 통신문을 전달했습니다. 이 통신문에는 소련의 부대들과 관련된 자료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통지를 받고 부대 사령관들은 마지막 순간에 진지를 재배치에 적을 속일 수 있었습니다. 이 보더 더 중요한 것은 독일 공군의 모든 비행중대 명단을 받은 덕분에 소련 사령부가 수십개의 지상 비행장에
대규모 집중공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500대의 비행기와 제공권을 잃었습니다. 독일이 쿠르스크를 공격하기 몆주전의 일입니다.
존 케른크로스는 두건의 놀라운 공적으로 소련으로부터 적기 공로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영국과 미국, 캐나다와 협력하여 핵프로그램을 연구중이라는 정보를 최초로 제공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나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련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소련 암호관의 사소한 실수로 이들의 존재가 드러나게 됩니다. 내부 반역자를 확인한 영국정부는 공포의 도가니에 몰렸습니다. 수백명의 공무원들이 사상 검증을 받았고 정보분야의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주목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영국의 비밀기관에서 반역자를 쫓아내려는 결의는 강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영국의 정보기관 직원들에게 견디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어서 자질이 뛰어난 많은 사람들이 MI5와 MI6를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정보기관에서 정보를 빼내고 조직을 와해시켰으니 소련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을 겁니다.
신념으로 뭉친 돈키호테들
케임브리지 5인방은 KGB가 전력을 다해서 구축한 것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소련은 그들의 업적을 치하하고자 연금을 지급하려고 했습니다. 소련의 결정에 감사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은 반파시즘 투쟁과 세계혁명을 위한 일일뿐 돈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작은 액수의 돈이라고 할지도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일을 모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이상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케임브리지 출신의 젊은 수재들은 그 시대의 사회적인 모순을 보았습니다. 빈곤과 실업, 사치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재학 시절, 빈곤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자는 사회적인 흐름에 참여했습니다. 정의 대한 갈망과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 그들의 행동지침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운동에 합류했지만 조국을 배신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들인 내린 결론은 세계혁명이었고 소련에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길을 걷습니다. 케임브리지 5인방의 능력은 더할나위 없이 뛰어났기에 중심부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회고하듯이. 지금 돌이켜 보면 이들은 풍차와 전투에 인생을 건 돈키호테였습니다. 역사 또한 이들의 이상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세계혁명은 오지 않았고 신기루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보면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소련붕괴가 일어나자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죠. 소련이 무너질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정부기관들. 반대로 사회주의를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최근까지 믿은 사람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더 했을겁니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은 좋기만 할까?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일종의 각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식을 얻게 되면 더 많이 알고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걸 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진실의 눈을 뜹니다. 진신을 알고 난 뒤에는 인정하기 싫은 괴로운 현실에 눈을 떠야합니다. 지식은 일종의 빨간약입니다. 알면 알 수록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래서 괴로울 수 있습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죠.
어디에 침투했을까?
간첩협의로 붙잡힌 사람이 간혹 뉴스에 등장합니다. 탈북자로 가장을 하던가 북한이 포섭한 사람들이 있겠죠. 간첩이라고 하면 북한만 생각하기 쉽지만 다른 국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 국내에 심어놓은 사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전 공군참모총장이 군사 기밀유출로 집행 유예 판결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문제인데 병은 휴대폰 사용했다고 영창가는데 기밀 제공한 장성을 집행유예로 판결합니다.)
목적은 다르겠지만 케임브리지 5인방처럼 자발적으로 미국에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겁니다. 그들 스스로 국가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합리화 할수도 있지만 그 대부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함이겠죠. 지금은 이념의 시대는 아니니까요.
간첩하면 항상 당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반대로 상대편에 심어놓은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간첩을 침투시킨다면 남한은 손놓고 있을까요? 포섭하는건 우리가 더 유리할 겁니다. 체제에 불만이 있는 고위층은 북한이 더 많을테고 가장 중요한 건 남한은 돈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본 인상적인 이야기를 소개해보면, 기억이 희미해서 정확하게 적을 수는 없습니다. 북한 X 군단을 남한이 포섭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남북한간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 군단은 후방에서 평양을 공격한다는 작전이었습니다. 이 계획이 정치부에게 걸려서 관련자가 처형당했다는걸로 끝을 맺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북한 소식은 믿기 힘든 이야기가 많죠.) 권력투쟁으로 인한 모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도 북한쪽에 심어놓은 사람이 아주 많을 겁니다. 이자성이나 캠브리지 5인방처럼 핵심에 깊숙이 침투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 진실이 밝혀지게 될 때 놀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 나임 케임브리지 동료들 > 소련측 시선으로 봐서인지 케임 브리지 5인방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영국입장에서는분통이 터지는 일이겠고 소련 입장에서는 애국자로 보였겠죠.( 소련은 킴 필비를 기념해서 우표도 발행합니다.)
이념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이들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서 활동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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