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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와 문명 : 역사를 바꾼 유럽의 시계

네그나 2014. 2.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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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와 문명 / 카를로 m 치폴라


유럽의 팽창에 지대한 역할을 한 물건이 대포, 범선입니다. 시계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항해 도중 위도와 경도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습니다. 해시계와 모래 시계가 있었지만 흔들리는 배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습니다. 정확한 시계를 만들어 내는 위한 노력 기계, 진자,전기, 수정, 원자 시계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시간 측정은 문명과 야만을 갈라놓았고 측시의 발전은 문명의 발전입니다.


흥미롭게도 기계식 시계와 대포는 비슷한 시기에 출연했습니다. 시계와 대포 모두 금속공학의 괄목할만한 진전이었고 초창기 시계 제작자 다수가 대포 제작자였습니다. 대포와 기계식 시계의 동시 출현은 유럽식 발전의 특징을 증언하는 것이면서 앞으로 전개될 양상을 예고했습니다.


중세에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이 간신히 생존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가 적었고 수명도 짧았으며, 기술수준은 낮았고 일하는 사람 대부분 가난하고 무지한 농민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이 칙칙한 그림은 10세기 중반 이후에 호전되는 기미를 보였고 11세기 중반에는 더욱 뚜렸하게 호전되었습니다.


도시가 나머지 지역보다 크게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한 까닭은 시골의 경제적 상황이 나빠져서라기 보다는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도시에 경제적, 사회적 상승을 위한 더 나은 기회가 있으리라 믿고 농촌을 떠났습니다.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 상당수가 직업 기술을 배운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도시의 분위기는 낙관주의가 우세했고 개혁을 향한 열망과 상호 협동을 위한 욕구를 키웠습니다. 상호 협동욕구는 길드가 성장하게 만들었고 길드 위로는 더 큰 형태의 연합체(자치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연합체들은 기존의 제국이나
왕국, 봉건영주로부터 평화적인 방법 혹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법적인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도시의 성장에 따라 봉건 영주와 지주들은 도시에 살게 되었거나 도시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시는 신분와 수도사, 수녀로 넘쳐났지만 도시는 상인과 수공업자의 영역이었습니다.  상인과 전문직업인, 수공업자로 구성된 도시는  실용주의와 실리주의가 뿌리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숙련공의 이주가 경제의 흥망을 좌우하다.


시계의 발전 양상을 보면 사람들의 이주에 따라서 사회 분위기와 경제적인 번영이 달라졌습니다. 수공업자들은 오늘날의 프리랜서처럼 이리 저리 떠돌아 다녔습니다. 장인 집단은 정치적 혼란이나 전염병, 경제적 위기를 피해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로 이동 했습니다. 시계를 만드는데에는 재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시계 선진국의 기본 자산은 인적자본, 다수의 활동적인 상인과 솜씨가 좋은 수공업자들이었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내낸 통치자들과 관리자들은 수공업자들의 유출입과 유능한 숙련공의 공급에 대해서도 크게 염려했습니다.


숙련 노동력을 수입하던 나라들은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신앙도 채택했는데,  새로운 신앙의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 지상주의는 문자 해득을 장려함으로써 인적 자원의 질적 향상에 기여를 했습니다.상업의 성장이 정치사회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많은 이탈리아 기술자들이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오스만 제국으로 갔지만 오스만 경제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숙련공의 유출은 한 나라의 쇠퇴에 일조하면서 동시에 쇠퇴의 징후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수의 유능한 수공업자를 잃은 이탈리아는 역동적이고 고도로 수용적인 사회에서 16세기와 17세시에 걸쳐 정체되고 보수적인 사회로 변해갔습니다. 숙련 이주민들이 가져온 자극이 경제에 지속적인 효과를 낳으려면 수혜국은 새로운 사상과 기술에 문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조선은 세계 최초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을 만들어 내었지만 사회에 큰 파급효과는 없었습니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만 생산했고 소수 계층만이 그 기술을 누렸습니다. 금속활자를 통해서 지식의 유통과 보급이 촉진되고 책을 읽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지식을 독점했던 종교계가 같은 특권 계급이 사라졌습니다. 근대가 탄생한 배경에는 금속활자가 있지만 그 동기는 상업과 사상과 기술을 문을 여는 분위기입니다.









시계는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최초의 시계는 해시계였지만 해시계는 태양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었고 날씨가 좋지 않거나 야간에는 사용할 수가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해시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물을 이용한 물시계를 만들었습니다. 모래시계는 작은 구멍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것을 이용한 모래시계와 물질이 타는 속도로 측정하는 불시계가 등장했습니다.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계식 시계는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14세기 기계식 시계가 서서히 유럽 전역에 확산되엇고 곧 소리로 정시를 알리는 장치가 정착되었습니다. 시계는 공공 장소에 설치되었는데 시계가 비싼 물건일 뿐더러 특히 커다란 공공 시계는 매우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시계를 보수하는 일은 지역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시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는 특별히 임명된 관리장의 정기적인 임금까지 포함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시계를 설치할지 말지 길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의 공공 시계를 자랑스러워 하고 유용한 물건이라고 믿었습니다. 도시의 자부심, 실용성, 기계에 대한 관심이 결합되어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시계가 확산되었습니다. 더 많은 시계가 제작되었기 때문에 제작자들의 솜씨도 향상되었습니다.


14 세기말이 되자 정시뿐만 아니라 15분 간격으로 치는 시계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해를 하면 안되는 것이 초창기 시계의 정확성은 낮았습니다. 16세기가 될 때까지 가장 좋은 시계라 하더라도 시간이 대충 맞을 뿐이었고 한 번씩 해시계에 맞춰 바늘을 다시 조정해줘야 했습니다. 시계는 기술적이 발전을 거듭했고 누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새로운 기술이 막 등장한 시점에서는  그리 대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현대에서도 비슷한데, LCD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CRT에 못미친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이 내려감에 따라서 LCD는 CRT를 밀어내었습니다. OLED도 아마 LCD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겁니다. 기존의 기술보다 떨어지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이 내려가다 보면 우위에 점하게 될겁니다.







왜 중국은 실패했는가?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과학에서 서양의 우위를 당연하게 여겨 동양에서 내놓은 원자재와 상품이 많았던 반면 서양은 아시아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상품을 거의 내놓지 못한 상황을 쉽게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16세기와 17세기,18세기에 걸쳐 지배적인 양상이었습니다.


유럽 제품 대부분이 아시아 민족의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동양이 만든 유사한 제품과 경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으니 기계식 시계가 그 중 하나였습니다.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은 중국의 상류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 시계를 바쳤습니다. 중국인들의  스스로 울리는 종에 대한 애착은 사라지지 않아 17세기와 18세기 내내 시계와 자동장치 비슷한 장치들이 끊임없이 베이징 황궁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강희제는 황궁에 크고 작은 시계를 만드는 제작소를 차리기까지 했습니다.


시계를 대하는 관점이 달랐습니다.유럽인들이 렌즈를 가지고 현미경과 망원경, 안경을 만들어 내는 동안 중국인들은 렌즈를 장난감으로만 사용했습니다. 시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렌즈와 시계는 유럽사회가 느끼는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개발되었고 그 필요는 다시 유럽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기계 장치들이 난데없이 나타났고 중국인들은 그것을 그저 재미나고 특이한 물건으로만 대했습니다. 


시계는 왜 중국에서 등장하지 않았는가?  중국인들은 시계를 만들 역량은 있었습니다.


17세기 지롤라모 브루소니는 "중국의 수공업자들은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고 상아와 흑단, 호박으로 작업하는데 매우 뛰어나다.(...) 수학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유럽인보다 떨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기계식 탁상시계를 만들줄 알며
우리 수공업자들만큼 돈을 받는다면 소형 시계도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다수의 농민으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시계는 유용하고 실용적인 장치로 활약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중국의 관료 정치 및 관료제적 구조가 중국 수공업자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방해했다고 볼 근거가 있습니다.


리치 신부는 "중국 수공업자들이 완벽한 기량을 발휘하려고 항상 애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햇습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적인 작업보다 더 낮은 보수로 일을 시키는 지방관리들 아래에서 일할 때 특히 눈이 띈다."


권력을 이용해 수공업자들에게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물건을 만들라고 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물건을 제작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명대 중국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체계는 수공업자를 억압하고 응용과학과 과학기술의 진보를 방해했습니다. 권력자가 만들라고 지시하는 것은 쉽지만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 중국은 시계와 대포를 만들어내지 못했나? 중국은 산업화로 나가지 못했는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호하고 부정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겟지만 지금 극장가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이 왜 흥행하는가?' 와 비슷합니다. 제기 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호하고 부정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록펠러 재단의 이시가 한 말을 빌려서 결론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16세기와 17세기, 18세기에 걸쳐 중국이 유럽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는가라고 묻는 것은 다소 예의 없을 뿐 아니라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어쨋든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계와 문명






시계와 대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물리적인 기계인 시계를 만들어 내었다면 현대는 보이지는 않는 지식 상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했을 때 ( 최근 구글은 모토로라를 레노버에게 팔았습니다.) 한국형 운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우리는 운영체제를 만들지 못할까? 물론 미국처럼 질서를 규정하는 위치가 아니라는 현실을 제외하더라도 창의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관료제와 수공업자의 억제하는 가치체계 기술발전을 뒤쳐지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시계 제작 기술 발전도 늦어졌습니다. 물론 과거보다는 좋아졌겠지만  현대에도 크게 다를바 없어 보입니다. 과거와 달라진것은 상품입니다. 과거에는 서양은 동양에 시계를 내다 팔았지만 이제는 지적상품인 소프트웨어, 특허와 이미지를 팔고 있습니다. 이미지와 같은 허구의 상품도 아주 잘 먹히는데, 유럽의 장인 이미지와 왕실 이미지는 특히 동양에서 잘 먹히는 듯 보입니다. 부유한 이미지는 서구인들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 광고를 잘 생각해 보세요. 백인이 나오는 광고는 부유한 이미지입니다. 동양인이 나오는 광고를 서구에 팔 수 있을까? )


도시가 발전하고 수공업자들이 등장함에 따라서 시계와 같은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계를 만든 이유?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시계 제작가가 대포 제작을 겸했으니 금속공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대포 제작기술도 발전했을 겁니다. 발전된 시계와 대포는 유럽이 제국으로 나가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고요. 시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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