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영화 더 문(The Moon) : 우리는 사람이라고 알겠어?

네그나 2016. 2. 19. 21:00

언젠가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던 영화 더 문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검색을 하기가 조그 귀찮았습니다. 포털에서 문이라고 입력하면 (門)이 표시됩니다. 영화 문이라고 하나 2007년작 중국영화가 나옵니다. 영화 더 문이라고 입력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옵니다.그렇다는 겁니다. 2009년에 개봉한 저예산 SF영화로 수작입니다.



더 문의 배경은 근미래에 달에서 나온 자원을 통해서 지구에서 필요한 에너지 70%를 조달합니다. 루나 인더스트리 소속의 셈밸은 달기지에서 3년동안 홀로 일하며 지구로 귀환할 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지구로 귀환을 2주 앞둔 샘에게는 자꾸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데, 낮선 여자의 환영을 보고 자신과 같은 사람의 영상을 보기도 합니다. 자원채취 기계 고장을 수리하기 위해서 기지밖으로 나갔다 샘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눈을 뜨자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맞닥드리게 되는데...



더 문은 둘러대지 않고 곧바로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사실, 샘 벨은 복제인간이었고 사랑 (SARANG)기지는 복제 인간들의 작업공간이자 인큐베이터라는 사실입니다. 루나 인더스트리가 짠돌이 처럼 굴었던 이유, 외딴 기지에서 한 사람만 거주하고 작업하게 만들었던(사실상 형벌) 이유는 복제인간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알고보니 내가 복제인간이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보아 이제는 평범해 보이지만 더 문은 조금 다르게 풀어나갑니다.




대표적인게 인간성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와 조금 다릅니다. 인간은 비인간적으로 묘사됩니다. 사용후 폐기할 수 있는 복제인간을 꺼리낌없이 사용하고 무엇이 이득이 되는지 계산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거티는 로봇팔에 행동도 부자연스럽고 이모티콘을 감정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동족이며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보다 전기적 신호로 작동하는 로봇에 유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것들의 저항 :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



보통 SF영화에서는 인간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관리에 저항하는 인간과 대립 혹은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이들은 인간이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더 문 등장하는 로봇 커티는 샘 벨은 관리하지만 강압적으로 통제하지는 않습니다.



루나 인더스트리 입장에서는 절대 바라지 않는 일이었겠지만 거티는 샘이 진실에 다가가 도록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내가 정말 복제인간이야?"라는 질문에 둘러대지않고 곧바로 순순히 사실을 알려주고 샘이 비밀자료에 접근하지 못하자 방긋 웃는 이모티콘을 한채로 다가와 패스워드까지 눌러줍니다. 또 기록된 영상을 삭제하고 떠나야 들키지 않는다며 친철하게 방법까지 알려줍니다.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 인상적인 말 중 하나가.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가 인간의 명령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지 모른다입니다. '인간을 웃게 만들어라' 고 명령했을 때, 기계는 얼굴을 전극을 꽂아서 계속 웃게 만들수 있고,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기계는 인간을 정신병원에 영원히 가두어 놓을지도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기계가 생각하는 문제해결의 접근과 인간의 접근법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 자신을 돕느냐는 샘의 질문에 거티의 답은 '샘을 돕는게 자기 일'이라고 말합니다. 거티는 관리도 해야했겠지만 샘 벨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루나 인더스트리 입장에서 보면 복제인간을 관리하기 위해서 자율성이 부여된 로봇은 반드시 필요했을 겁니다. (따지고 들면 복제인간을 만들 필요도 없이 인공지능 로봇을 달기지에 놔두면 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 고립되어 있으면면 미쳐버리므로 정신적인 도움을 주기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거티에게 부여된 자율성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효율을 위해서 자율성을 주입했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아니 의외라기 보다는 필연입니다.




케빈 겔리의 저서 <통제 불능>에서는 우리가 인공적으로 생명의 힘을 불어 넣을 때 마주하게 되는 문제를 말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힘을 창조된 기계에게 불어 넣으면 우리는 기계를 제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계들은 야생성을 획득하고 또한 야성에 수반되는 의외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이다. 즉 신들은 그들이 만든 최상의 창조물을 지배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화두가 되었듯 인공지능의 발전은 단기적으로 인간의 대량 실업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인간보다 더 싸고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면 사람을 고용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기술의 발전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장기적으로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기계를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루나 인더스트리는 3년동안 복제인간을 쓰고 폐기처분을 하기를 반복하고 거티는 이 과정을 잘 수행하기를 원했겠지만 자율성이 있는 그들은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현대판 아담과 이브라고 해야할까. 샘이 사랑 기지를 떠나며 거티에게 말합니다.


"우린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야. 사람이라고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남겨진 문제



영화는 루나 인더스트리 관련자들이 기소되고 주가가 폭락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남겨졌습니다. 사랑 기지 지하에는 예비 샘 벨이 아주 많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인가?



완성되지 않은 복제인간에게 어떤 단어를 써야할지도 애매합니다. 어떻게 규정하는냐 따라서 단어가 달라지는데. 보관? 폐기? 살처분? 소각? 만약 깨어나지 않은 복제인간을 없애 버린다면 그건 사람을 죽이는게 되는가? 아니면 예비 샘을 하나의 사람으로 보고 깨어나게 만들어야 할까? 그 많은 샘을 복귀시킨다면 사회는 혼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유전자가 갖고 외모까지 같은 이들은 사회는에서는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놓습니다.



영화 더 문.희망을 주기위해 의도적으로 주입된 가족에 대한 기억. 현실을 어려움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효과적인 전략.



더 문은 소스코드를 만들었던 감독 던칸 존슨작이었습니다. 영화 소스코드도 존재의 분리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는데 영화 더 문의 연장선상에 있군요. 그가 록커 데이빗 보위의 아들이란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한 사람이 두 명의 샘 벨을 연기하는데 어색함이 전혀 없습니다. 저예산 티가 나지만  이 정도로 뽑아 냈다는데 감탄하며 감상했습니다. 보기를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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